지병으로 오랜 병상생활…6·29선언 통해 민주화·직선제 개헌 수용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88년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향년 89세.

1932년생인 노 전 대통령은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이어오다 최근 병세가 악화돼 서울대병원에 입원, 의료진의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전직 대통령 가운데 생존자는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등 3명으로 줄었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4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용리(현 대구 동구 신용동)에서 면 서기였던 아버지 노병수와 어머니 김태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경복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보안사령관과 체육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를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인 1987년 6·29선언을 통해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였고,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김대중, 김영삼 두 야당 후보의 분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사진은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 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그는 재임 기간(1988년~1993년) 서방과 공산 진영 국가 대다수가 참가한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특히 소련, 중국 등 공산국가와 수교하면서 북방외교의 기틀을 다지는 동시에 국제적인 입지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도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열어 북한과 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도 성사시키면서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토대로 마련했다. 재임기간 경제 성장률도 연평균 8.7%를 기록하며 호황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재임 시절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신군부인 ‘하나회’의 핵심 세력으로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12일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당시 5공 비리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열기도 했지만,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이 ‘만년 2인자’, ‘소심한 성격’ 등 다양한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유다.

사진은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퇴임 후 그는 쿠데타 주도,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진압, 수천억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다. 노 전 대통령은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여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97년 12월 특별사면을 받았다. 추징금은 2013년 9월에야 완납했다.

유족으로는 부인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 아들 재헌이 있다. 사위는 소영씨와 이혼 소송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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