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인 명의의 글…北 반응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다"

조선직업총동맹 제8차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강습이 지난 29일 진행됐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북한이 한미정상회담 이후 9일만에 관영 매체를 통해 첫 반응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공식 성명이나 담화가 아닌 개인 명의의 논평을 내놓은 데 대해 수위 조절 조치로 해석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북제재 완화 등이 논의되지 않은 만큼, 대화 재개를 위해 한·미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31일 김명철 국제문제평론가 명의의 ‘무엇을 노린 미사일 지침 종료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처사는 고의적인 적대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미사일 지침을 해제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800㎞인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제한이 사라지면 북한뿐 아니라 중국 등 동북아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통신은 “이미 여러 차례 미사일 지침의 개정을 승인해 탄두중량제한을 해제한 것도 모자라 사거리 제한 문턱까지 없애도록 한 미국의 처사는 고의적인 적대행위"라며 "미국이 매달리고 있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인 동시에 파렴치한 이중적인 행태를 스스로 드러내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바이든표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통신은 "지금 많은 나라는 바이든 행정부가 고안해낸 '실용적 접근법'이니, '최대 유연성'이니 하는 대조선(북)정책 기조들이 한갓 권모술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을 향해서는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 지침 종료 사실을 전한다’고 설레발을 치면서 지역 나라들의 조준경 안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민 남조선 당국자의 행동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을 저질러놓고는 죄의식에 싸여 이쪽저쪽의 반응이 어떠한지 촉각을 세우고 엿보고 있는 그 비루한 꼴이 실로 역겹다”고 비난했다.

문재인(왼쪽)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크랩케이크로 오찬을 하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그동안 북한은 한미에 대해 김여정 당 부부장이나 외무성 당국자 명의의 담화를 통해 입장을 밝혀왔다. 한미정상회담이 이뤄진 뒤 9일만에 개인 명의의 논평을 낸 것은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식은 북한이 자주 활용해 왔다. 북한은 2017년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이 이뤄지자 노동신문에 개인 명의의 논평을 싣고 “친미사대”와 “대미 굴종”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해 9월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논의가 이뤄졌을 때도 개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감탕속의 하늘의 룡이 되어보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경태 국립통일교육원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를 사용한 점, 기존 남북·북미 합의 내용을 인정한 점, 남북한의 대화·관여·협력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율성을 부여한 점 등 북한이 긍정적으로 고려할 만한 요소가 있어 판을 완전히 깨고 싶어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미정상회담의 일부 메시지가 긍정적인 것과 별개로 북한의 입장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조치는 포함되지 않아 국제문제평론가 명의의 논평을 통해 낮은 수위에서 불만을 표시하면서 ‘한·미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지원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한미공동성명에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포함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미국에 요구, 바이든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며 “미국이 임명한 성김 대북특별대표가 제 역할을 해 주고, 양국이 이에 상응하는 대응에 나선다면 바이든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 나설 수 있는 전초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정부는 이번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와 관련해 신중한 기조를 유지했다.

통일부 이종주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해당 글은) 특별히 어떤 공식 직위나 직함에 따라서 발표된 글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며 “개인 명의의 글인 만큼 정부가 직접 논평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반응을 신중한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한의) 공식적인 논평은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국가원수에 대해 예의 없는 언행에 대해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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