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1955년작 ‘이유 없는 반항’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중산층 가정의 자녀인 짐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술을 마셔 경찰서까지 가게 된다. 그런 짐에게 교내 불량배였던 버즈는 치킨런 게임을 제안한다. 자동차를 타고 절벽을 향해 달리다가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두 십대 소년은 아이들의 환호성 속에서 절벽을 향한 질주를 시작한다.

이 작품은 니콜라스 레이의 뛰어난 연출력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영화의 빛나는 아이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주인공 짐을 연기한 제임스 딘이다. 극중 블루진에 빨간 가죽재킷을 입고 등장한 제임스 딘은 이 작품을 통해 청춘의 우상으로 영원히 자리매김하게 되지만 유작이 된 ‘자이언트’가 채 개봉하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숨을 거둔다. 불과 24세의 나이였다.

그러나 제임스 딘은 사후에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불멸의 스타가 되었다. 우수에 찬 제임스 딘의 이미지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전세계 청년들의 선망이 대상이 되었고, 그의 인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2000년께 우리나라에서 제임스 딘이라는 상표의 속옷 브랜드가 론칭됐다. 이를 두고 당시 제임스 딘의 퍼블리시티권 등을 양도받은 원고가 해당 속옷 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제임스 딘이라는 상표 사용을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무단으로 제임스 딘의 성명을 상업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제임스 딘의 성명권, 즉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인물의 성명, 초상이나 기타 특징적인 동일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의미한다. 성명, 초상 등에 대한 인격권적 보호와 구분되는 재산권적 보호다. 고유의 명성, 사회적 평가, 지명도 등을 획득한 유명인의 성명이나 초상 등이 상품에 부착될 경우 그 상품의 판매가 촉진되는 효과가 있는데, 이러한 유명인의 성명, 초상 등이 갖는 고객흡인력은 그 자체가 경제적 이익 내지 가치로 취급되어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측면을 고려한 것이다.

제임스 딘이라는 상호를 쓴 속옷 회사 역시 배우 제임스 딘의 유명세에서 후광을 얻으려는 목적이 전혀 없었다고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시 항소심 법원은 성문법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법률의 근거 없이 필요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물권과 유사한 독점적 재산권인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아 원고 패소의 판결을 내렸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도 퍼블리시티권에 관한 법률적 근거가 도입됐다. 올해 4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에서는 최초로 퍼블리시티권의 개념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신설된 법 제2조 제1호 타목에서는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서명 등 그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 즉 퍼블리시티권 침해행위를 부정경쟁방지법상 부정경쟁행위로 정의한다.

이로써 우리나라에도 마침내 퍼블리시티권 침해행위를 금지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앞으로는 BTS와 같은 K팝 스타들에게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퍼블리시티권 침해가 있을 경우에도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그 한편으로는 제임스 딘 상표 소송 당시와는 달리 이제는 우리나라 역시 해외 유명인들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하는 일이 법적으로 금지된다는 사실도 아울러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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