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칼럼=장서희 변호사]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 여고생 미츠하는 동경에 사는 남학생 타키와 몸이 바뀐 상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처음으로 블랙컨슈머를 응대하게 된다. 마지막 남은 피자 조각에서 이쑤시개를 발견했다면서 항의하는 고객에게 미츠하는 그저 자신의 상식에 비추어 이탈리안 요리에서 이쑤시개가 나올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고객이 미츠하의 응대에 더욱 거칠게 항의하자 선배 직원이 급히 대신 나선다. 상황이 종료된 뒤 선배는 그 손님은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매뉴얼에 따라 음식값을 받지 않고 사과를 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 블랙컨슈머는 자신을 응대하는 직원의 옷에 칼집을 내는 방법으로 직원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가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악성 민원을 동원해 업주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자신을 응대하는 상대방에 정신적 손해를 가하는 소비자를 가리켜 블랙컨슈머라고 한다.

블랙컨슈머들을 상대해야 하는 직원들은 그들의 부당한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들어주지 않는 이상 대개 고객의 폭언과 횡포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다. 이와 같이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이른바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까지 마련된 상황이다.

지난 2018년 10월 18일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고객 응대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자의 건강장해에 대한 사업주의 예방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는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문구 게시 또는 음성을 안내하고, 고객과의 문제 상황 발생 시 대처방법 등을 포함하는 고객응대업무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근로자에게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휴게시간의 연장,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관련 치료 및 상담 등을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제정된 것은 기업의 이익 추구를 위해 소비자의 요구가 정당한 수준 이상까지도 용인되는 환경에서 이들을 직접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직원들의 정신적 피해가 심각한 수위에 이른 데 대한 사회적 인식 덕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정 직군 근로자를 보호하는 개별법만으로는 블랙컨슈머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개인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 한 음식점의 점주가 블랙컨슈머의 횡포에 시달리던 중에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져 끝내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이 일었다. 당시 소비자는 새우튀김 3개 중 1개의 색깔이 이상하다고 주장하며 전체 음식의 환불 요구를 했고 이 과정에서 점주에게 ‘세상 그 따위로 살지 말라'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느냐' 등의 폭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배달앱 쿠팡이츠 고객센터는 사실 규명이나 점주 보호는 뒷전으로 한 채 오로지 음식점에 사과와 환불 요구를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점주가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쿠팡이츠가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 없이 일방적으로 소비자 측을 대변해 점주에게 사과와 전액 환불을 독촉한 부분이 문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배달앱 소비자들의 허위나 악성 리뷰에 점주가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는 현행 리뷰 시스템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또한 '판매자의 상품이나 고객서비스 품질에 대한 고객의 평가가 현저히 낮다고 회사(배달앱)가 판단하는 경우' '거래한 고객으로부터 민원이 빈발해 판매자로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에 회사가 계약해지 조치까지 할 수 있다고 규정한 배달앱과 가맹점 간 서비스 이용 약관이 불공정하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현행법으로는 규율되지 않는 갖가지 불공정의 총화라는 인상마저 든다.

블랙컨슈머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허위사실 유포나 협박을 통해 기업이나 점포의 업무를 방해한다면 이는 형법 314조상의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블랙컨슈머로 인해 누군가에게 재산적, 정신적 손해까지 발생할 경우 이는 민법 제750조상의 불법행위로 민사상의 손해배상책임까지 물을 수 있다.

‘소비자는 언제나 옳다’라는 말이 있지만 블랙컨슈머, 너의 이름만큼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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