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AI기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세상 변화"

"대한민국 AI기술개발 사령탑이 정부기관 내에 꼭 필요하며, 서둘러야 AI후발주자 면한다"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연방정부기관들에 AI기술 및 상용화를 적극 지원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조치는 AI기술발전을 위해 정부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들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연구개발의 우선 순위를 AI에 집중하고, 미래인력개발에 집중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의 AI기술개발 역사는 60년이 넘는다. 이미 세계 최강의 AI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특별한 행정조치를 내린 것은 중국의 AI기술 수준이 위협적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더 중요한 시사점은 AI기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미래 경제력과 국방력이 AI기술력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이란 점을 트럼프가 인정하게 됐다고 본다. 집권 초기만 해도 트럼프는 전임 오바마 정권이 작성한 3건의 AI기술 전략보고서들을 모두 무시했다. 심지어 과학기술정책 보좌관도 임명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구시대 경제인 러스트 밸트 중심의 제조업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수립했고 특히 중국을 상대로 관세와 무역전쟁을 벌여 왔다.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경쟁력을 꺾을 수 있는 수단들을 동원하는 사이에 중국은 미국을 능가할 수 있는 미래기술들을 집중적으로 축적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은 사실을 깨닫고는 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미국이 중국을 꺾는 길은 무역 전쟁이 아니라 첨단기술력에 기반을 둔 기술패권이며 이를 높이는 강력한 도구가 AI기술임을 확인했다는 애기다.

중국 지도부는 21세기가 과학기술혁명의 시대이며, 지능화 시대로 세계가 빠른 속도로 빨려들어갈 것임을 간파했다. 오바마 정권이 발간한 AI정책보고서들은 중국정부의 훌륭한 참고서가 됐다. 중국학자들은 미국의 AI정책보고서를 충실히 분석한 후 곧 바로 중국판 AI기술개발전략을 수립했다.

중국의 역량이 비록 미국에 크게 뒤처져 있지만 지능화시대를 앞서 나갈 AI기술력을 확보한다면 미국을 능가할 수 있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AI기술과 첨단기술력을 강조했다. 중국 국무원은 ‘중국제조 2025’를 보완하는 국가전략으로 ‘차세대 인공지능개발 계획’을 2017년 7월에 공표하기도 했다.

이 정책은 3단계 목표로 이뤄져 있는데 2030년까지 세계 최정상의 인공지능 국가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다. 1단계는 2020년까지 대용량 데이터 지능, 자율 지능 시스템, 매체 간 지능교환, 군집 지능, 하이브리드 강화 지능 등 AI 기본 이론 발전에 중점을 둔다. 2단계는 2025년까지 의료, 도시시설물, 제조업, 농업, 국방, 건설, AI법률 및 규제, 안보평가 등의 AI기술 적용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3단계는 2030년까지 AI에 기반을 둔 사회통치, 국방건설, 산업 가치사슬을 완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중국정부는 AI기술개발을 위한 자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AI기술은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다른 기술들과 달리 AI기술이 사회적 변화에 미치는 범위, 속도는 물론이고 본질적 사회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블루킹스 연구소의 죤 알렌 등이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AI는 세계 경제 및 노동력, 금융 및 의료시스템, 국가 안보, 형사 사법, 교통 및 도시운영 방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공산이 크다. AI기술이 몰고 올 모든 변화는 사회구성을 바꾸고, 부(富)를 재편하고, 기존 시스템을 바꾸며, 국가안보에 직결된 사이버 위협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AI 기술경쟁은 새로운 무기경쟁과 마찬가지라고 평한다. AI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정부의 정책결정, 외교력, 경제력 그리고 군사력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흔히 군사력을 무기경쟁으로 비교하지만, 그 근간은 경제력에 있으며,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자국의 한 강연에서 ‘AI기술을 선도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AI 개발은 경제력은 물론이고 국사력과 직결된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2030년까지 AI기술의 세계적 선도국가가 되겠다는 중국의 포부는 미국의 패권을 넘어선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막강한 연구개발 자금을 AI기술에 쏟아 붓는 동안에도 기초과학과 AI기술개발에 관련된 연구개발 자금을 크게 삭감하는 역(逆)방향 조치를 취해왔다. 미국의 각 분야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미국의 패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경고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중국의 AI전략은 민간기업과 공동으로 추진하는 민군합동 메가프로젝트로 ‘인공지능 2.0’을 추진 중이다. AI기술로 첨단 과학기술과 핵심 산업기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중국 인민 해방군 (PLA)의 지능정보 역량을 높이겠다는 야심찬 전략이다. PLA는 AI기술이 가져올 군사기술혁명을 대비해 AI기술을 군사 응용프로그램, 작전 스타일, 군사장비 시스템, 전투발전 모델 등에 적용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지능화전쟁 단계에서 어느 시점부턴 AI가 인간의 판단능력을 초월하는 경지에 도달한다고 본다.

즉, 인간 지능이 기계전쟁 시대의 새로운 작동 템포와 보조를 맞추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기계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에 무기 체계의 선택이나 의사 결정의 특정 단계에 인간의 개입 필요성을 따지게 된다. 기계의 자율 판단에 인간이 개입하도록 설계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기계의 판단을 인간이 승인했다는 책임을 부과하기 위함이다. 실제론 기계를 통제하고 명령하는 역할이 인공지능의 몫이 된다. 이때 AI에 대한 인간의 의미 있는 통제력이 어떤 방식으로 언제 작동하면 좋을 지를 효율적으로 결정하는 힘이 바로 경쟁력이며 기술력이 될 것이다.

무인군대(Army of None)란 저서를 낸 신미국안보센터(NASC)의 폴 샤러(Paul Scharre) 선임연구원은 AI기술은 미래전쟁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AI 기술은 국가 안보역량에 직결되며, 국가 간 간첩 행위 방식이나 훔치고자 하는 비밀의 내용도 바꿀 것이라는 얘기다.

예전엔 다루지 못했던 대용량 데이터 세트에 대한 지능적 분석에서부터, 오디오 및 비디오 자료의 위조, 사이버 전쟁을 기반으로 한 정보 외교력, 나아가서 무인 전쟁에 이르기까지 AI기술은 국가의 위력을 결정하게 된다. AI기술의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군사 우위, 외교 우위, 정보 우위, 경제 우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되며 국가안보가 위태롭다고 서술하고 있다. AI기술은 마치 2차 세계대전에서 핵무기가 도입되던 효과와 견줄 만큼 국가안보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게 되며 미래전쟁과 첩보활동에서 AI를 배제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AI 행정명령에 동의하기까지 미국의 경제계 및 국방전문가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바탕에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민간기업의 전문가는 물론이고 학계 그리고 정부 관료에 이르기 까지 각종 보고서와 협의체를 통해 국가적 AI개발전략의 필요성을 꾸준히 역설해 왔다. 미국의 짐 마티스 전(前) 국방장관은 지난해 트럼프에게 미국은 다른 국가들 특히 중국에 비해 야심찬 AI전략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에 AI기술력에서 밀리게 되면 국가안보 측면에서 패권을 중국에 내주게 될 것이란 우려를 역설한 것이다.

미 행정부는 2019년도 전체 연구개발 예산을 전년대비 2.8% 증액시키면서 다른 부문의 예산은 오히려 줄이고, 국방연구개발 예산은 31%이상 증액된 563억달러를 배정했다. AI를 국방부문에 적극 활용하여 정밀타격무기, 실시간 전군 동태탐지, 통신무력화, 원활한 전쟁 수행기술 등을 강화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미 정부예산에 AI기술기반을 강화하는 의도를 담았지만 트럼프의 선언적 ‘AI 행정명령’은 미국 정부가 앞장서서 AI기술을 개발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한 셈이다. 백악관은 후속조치로 6개월 이내에 AI 규정, 연구 개발, 인력 교육, 연방 정부 데이터 세트 공유 및 국제 경쟁력에 관한 지침을 마련한다고 한다. 이 같은 미·중 간 AI기술경쟁은 앞으로도 연구개발 예산경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AI기술이 전쟁에 활용된다는 의미는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는 힘이 자율무기에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이나 중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들도 지금 비밀스럽게 이 같은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폴 샤르는 진단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주체가 바뀔 수도 있다는 우려를 읽을 수 있다.

러시아 고위 군사간부는 가까운 미래에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완전한 로봇부대가 창설될 것ㅇ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미 국방성 관리는 완전자율무기의 적용은 국제간 협상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식시장에서 AI가 번개같은 거래로 주가붕괴를 일으킬 수 있듯이 인공지능이 관장하는 전쟁도 번개같이 전쟁을 일으키고 마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어쩌면 인간이 의식하기도 전에 끔찍한 전쟁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이것은 아마 원자탄 보다 훨씬 더 무서울 수도 있다.

세상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이나 사회지도층은 21세기 변혁을 의식이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AI기술이 촉발할 외교력,경제력,군사력 균형의 변화가 대한민국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누군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처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더 불안하다.

물론 AI기술개발 전략이 있긴 하지만 실망스러울 만큼 지엽말단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교육과 경제는 물론이고 외교, 국방, 안보까지도 포괄하는 종합적인 미래비전을 설계하고 세밀하게 추진해 갈 AI기술개발 사령탑이 정부기관 내에 꼭 필요하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에만 그친다면 'AI후발주자' 딱지를 주홍글자처럼 달고 살아야할 지 모른다.

■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 미래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이 뛰어나 '미래탐험가'로 불린다.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 객원교수, 포항공과대학 겸직교수. 포항산업기술연구원 연구위원, 지식경제부 기술지원(금속부문)단장 등을 역임했다. 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요즘은 미래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과학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