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차 핵실험으로 박근혜 대신 이명박 부상… 4차 핵실험 총선 파장 주목

여당에 호재되고 안철수신당에 악재될까?… 반기문 총장 주목도 높아질 가능성

'블랙홀' 북핵 이슈로 위안부, 경제 활성화 등 주요 현안 뒷전으로 몰릴 수도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칼럼] 한반도에 핵의 공포가 드리워지고 있다. 남북한 간에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던 새해 벽두에 북한은 온 국민과 세계인이 경악할 제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일반적인 핵실험이 아니라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수소폭탄’을 만드는 과정에 있는 실험이므로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총 4차례 진행된 핵실험은 국제사회에 커다란 공포를 가져온 것뿐 아니라 한반도의 정치와 경제 질서 그리고 동북아의 안보 상황마저 뒤흔들어놓고 있다. 지난해 목함지뢰도발로 온 국민을 분노케 만들었던 북한 김정은 체제가 다시금 한반도에 평화보다는 긴장 관계를 조성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북한 핵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심정은 매우 엄중하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분석하더라도 남북관계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 과제이다. 단순히 국지적 도발 차원을 넘어서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려는 북한의 계략에 우리 국민들은 치를 떨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핵실험이 단순히 국제사회의 예민한 반응과 제재 조치를 불러오는데 그치지 않고 직·간접적으로 한국 정치에 치명적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2006년 1차 핵실험은 대선 판세 바꿔… 올해 총선에는?

2006년 10월 9일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단행한 제1차 핵실험은 한국 정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당시 국내 정치의 최대 관심은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내 치열한 경선전이었다. 지금은 대통령이 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의 한판 승부였다. 2006년 여름까지는 박 대표가 근소하게 앞서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에게 회심의 승부수는 국내 정치도 경제 이슈도 아니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9월)와 제1차 핵실험으로 전세(戰勢)는 완전 역전되었다. 국가 위기 사태와 국군 최고 통수권자는 남성이라야 한다는 암묵적인 여론이 형성되면서 이 전 시장은 가파른 지지율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추석을 관통하는 민심으로 북한의 위협이 떠오르면서 올라간 상승세는 그 이후 단 한번도 꺾이지 않고 본선까지 내달리는 동력이 되었다. 2003년 북한이 핵무기 확산방지 조약(NPT)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난 이후 출구 없이 진행된 북한의 핵 도발 야욕이 가시화되자 대통령후보의 명암까지 엇갈리게 한 경우이다.

이처럼 북한 핵실험은 2016년 한국 정치 특히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핵실험이 아니라 단순히 김정은 위원장의 독특한 통치 이벤트의 경우 큰 두려움으로 여겨지진 않았을 터이다. 미국의 한 영화사가 김 위원장의 우스꽝스런 영화를 제작하자 사이버테러를 시도한 점이나 데니스 로드만을 요청해 초호화 요트 파티를 진행한 점 그리고 북한의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전자악기 공연단을 직접 지도하는 행동 등은 이해하기 힘든 기행(奇行)정도로 치부하면 될 일이지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의 안위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진 않는다.

북핵이 김정은보다 무서운 몇 가지 이유는?

그래서 북핵이 김정은보다 더 무서운 이유인데 사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우선 국내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전국적인 선거를 앞두고 국제사회와 유엔이 집중적인 비판을 쏟아낼 정도의 이슈인 만큼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유권자의 이념적 성향에 영향을 준다. 다음으로 침체된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로 생각해온 ‘통일 대박론’의 부침(浮沈)이다. 국민들이 넓혀온 통일 의지와 통일에 대한 관심이 일순간에 날아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의 이슈 전환이 일어난다. 북한을 겨냥한 군사적·비군사적 대응을 위해 한국,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은 상호 협력해야만 한다. 이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의 시선을 붙들어온 한일관계의 민감한 사안 즉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문제는 뒷전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더 커졌다. 북핵 이슈는 모든 다른 이슈를 집어삼키는 ‘이슈 블랙홀'(Issue Black Hole)이 될 공산이 크다.

우선 북핵 이슈는 총선을 90여일 앞둔 시점에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준다. 몇 차례의 핵실험이 있었지만 모두 국내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주진 않았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이후 북한의 불안정과 불예측성은 우리 국민들이 보기에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 이번에 감행된 북한의 핵실험이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와 감시 속에서도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점이다. 심지어 우리 정보 당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의 감시 시스템에서도 북한의 핵실험이 사전에 제대로 포착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수소폭탄이라고 북한이 주장하는 바를 곧이곧대로 듣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새로운 폭탄 실험은 분명한 만큼 현존하는 위협으로 국민들을 겁박(劫迫)하기에 충분하다. 군사 안보 문제가 당분간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국민들은 안보 이슈에서 보다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신당의 등장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주로 야권 쪽에 가있었다면 안보 문제는 다시 정부와 여당 쪽으로 국민들의 시선을 돌려 놓게 된다. 어떤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지만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단호하고 원칙적이며 국민들이 공감할 대책을 내놓는다면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승할 여지가 크다. 지난해 8월 초 발생한 DMZ 목함지뢰 도발 이후 30%대로 추락했던 대통령 지지율은 극적 해결로 50%대 이상으로 상승한 바 있었다. 안보 이슈에서 보수층 결집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총선을 앞둔 새누리당은 일정한 반사이익을 얻게 되는 셈이다.

북핵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보면 향후 지지율 변화에 대한 방향은 더욱 명확해진다. 리서치앤리서치가 동아일보의 의뢰로 지난달 26~28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북핵과 관련한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대해 물어보았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는 것에 대해 물어본 결과 ‘북핵 문제 해결 가능성이 없다면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55.8%였다.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무조건 만나야 한다’는 응답은 38.1%였다. 북한의 핵실험이 일어나기 전의 설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북핵에 대해 매우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한 2030세대에서 북핵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었다. 수도권 유권자들의 인식 또한 북핵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정당 지지층별로는 새누리당과 안철수 신당 지치층이 매우 부정적이고, 이념 성향별로는 보수층과 중도층이 같은 입장으로 나타났다(그림1).

북핵 이슈는 여당에 호재? 안철수 신당에 부담?

북핵 이슈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어떨지 몰라도 단기적으로는 새누리당에게 호재가 되고, 중도개혁 정당을 표방한 안철수 신당으로서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보수 및 중도 성향과는 다른 대북 인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지지율에 직접적으로 큰 타격은 가지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고 북핵 실험 또는 북한 관련 이슈가 반드시 선거에서 보수 정당에 유리하게만 작동하지는 않았다. 북한은 지난 2009년 5월 25일 길주군 근처에서 2차 지하 핵 실험을 단행했다. 이후 추가적으로 여러 발의 시험 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해 긴장관계를 고조시켰다. 일반적인 해석이라면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 유리한 이슈라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10월에 있었던 재보궐 선거에서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의 이찬열 후보(당시 민주당)를 비롯해 수도권(총 2곳)과 충청(1곳)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승리했다. 한나라당은 텃밭 성격이 강한 강원도와 경남에서만 당선자를 배출했다. 2010년 천안함 사태로 온 국민이 떠들썩할 때만 해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을 점친 분석이 많았지만 선거의 주인공은 ‘대북 이슈’가 아니라 ‘무상급식’이었다. 북한 이슈 그리고 북핵 이슈로 단기적으로 보수층 결집이 가능할진 몰라도 선거의 절대 변수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김정은보다 북핵 이슈가 더 무서운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통일 의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이산가족 상봉과 같이 온 국민들의 관심을 모이는 이슈가 전해지면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과 의지는 동시에 커지게 된다. 특히 지난해 8월 25일 남북 고위급 합의문이 발표된 시점에 국민들의 통일 의지는 다른 때와 비교해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 대북 담당 비서인 김양건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올해 남북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듯 했는데 매머드급 충격 사건으로 북한의 핵실험 뉴스가 날아든 꼴이다. 신년 여론조사에도 통일에 대한 의지가 점차 낮아져가는 추세임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의 신년 여론조사에서 ‘남북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물어본 결과 ‘통일은 필요하지만 서두를 필요 없다’는 의견이 10명 중 7명 수준인 69.2%로 압도적이었다. ‘굳이 통일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12.5%였고 ‘가급적 빨리 통일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적극적 통일론은 10명 중 채 2명도 되지 않았다(그림2). 박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지만 4차 북핵 실험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성은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북한과의 긴장관계가 단기적으로 대통령 지지율을 올리고 보수층을 결집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되고 만다. 그래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에 영향을 주는 남북관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점차 확대될 수밖에는 없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평가와 함께 ‘통일 대박론’ 인식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북핵 문제 해결 이슈가 집중 부각되면서 차기 대선후보들 중에 누가 상존하는 위협인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초점이 맞추어지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안보 위기 관리 능력’이 대통령의 중요한 자질로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신년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로 각광을 받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경우 이 돌발 이슈로 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여지가 커졌다. 핵실험 여파로 반 총장의 방북 성사 가능성은 줄었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반 총장에 대한 주목도는 높아질 수 있다.

'블랙홀' 북핵으로 위안부 등 주요 현안들 뒷전으로 몰릴 수도

마지막으로 북핵 이슈가 김정은보다 더 무서운 이슈가 되는 까닭은 국제 관계를 비롯해 모든 이슈가 전환되기 때문이다. 경기 활성화를 비롯해 2016년 새해를 여는 길목에 많은 중요한 이슈들이 있지만 자취를 감춰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이슈가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그만큼이나 중요한 생존 관련 이슈들이 있다. 국내적으로는 경제 활성화, 선거구 획정, 노동 등 4대 개혁, 보육 예산, 정치 개혁, 방산 비리 관련 추가적 감사 추진 등 산적한 과제들이 놓여 있다. 나라 바깥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내수 경기 침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간 합의와 관련해 사회의 다양한 시각이 제시되고 있는 것은 더욱 민감한 이슈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자가당착(自家撞着)적 협정 해석에 대해 국제사회의 이해를 구하고 대응하는 방안도 촌음을 다투는 일이다. 이같은 이슈들이 모두 블랙홀인 북핵 문제로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리거나 뒷전으로 내몰릴 수 있다.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가 실시한 신년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들은 남북관계 이외의 많은 시급한 현안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서민 생활 안정’이 30%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은 ‘경제 활성화(21.9%)’였다. 그 다음으로 ‘국민 생활 안전’, ‘노동 개혁’ 순이었다. 조사에서 ‘북핵 및 남북관계 개선’은 5.0%에 전체 5순위에 불과했었다.(그림3). 북핵 실험으로 안보 위협이 커졌다는 데에는 그 누구도 반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이 최우선 과제로 지목한 중요한 현안들이 누락되지는 말아야 한다. 북핵 이슈가 우리 국민들의 현안 이슈에까지 변화를 주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 평화에 커다란 암덩어리가 되고 있다. 핵 문제의 불가역적인 해결 없이는 통일 대박론도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마치 한일관계에서 민감한 과거사 이슈가 불거지면 아무리 좋던 관계도 악화일로(惡化一路)에 빠지듯이 북핵 이슈가 남북관계의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최고 권좌에 올라 측근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뉴스를 들으며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조차도 공포심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그런데 현존하는 위협으로 급부상한 북핵은 그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더 무섭게 느껴진다. 북한이 무섭다. 아니 김정은의 북한보다 북핵이 더 무섭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길리서치 팀장-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이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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