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는 민주화·산업화의 역사… 3김과 박정희의 빛과 그림자

요즘 여야 지도자들, 3김 리더십에 크게 못 미쳐… 계파 투쟁에 주력

'3각 내전' 시리아 난민 사태 교훈… 새 리더십은 '통합'과 '비전 경쟁'

김영삼(왼쪽부터)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김광덕 뉴스본부장 칼럼] '한국 민주화의 두 거목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양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구나.' 22일 새벽,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서거한 데 이어 22일 새벽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양김 시대’는 완전히 마무리됐다. ‘3김’으로 불리던 거물 중 김종필(JP) 전 총리만이 이제 남아 근현대 정치사를 정리하게 됐다.

민주화·산업화 과정… 양김,박정희·김종필의 빛과 그림자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역사는 민주화와 산업화 두 수레바퀴의 역사였다. 민주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피와 땀을 흘렸다. 시민사회·경제계 지도자들의 헌신과 노고도 빼놓을 수 없다. 두 갈래 길에서 중심에 서서 국민들을 결집시키고 이끌어가는 역할은 ‘정치 거목’들의 몫이었다. 민주화 지도자는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었고, 산업화 지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였다.

이들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수많은 기록들을 남겼다.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스토리들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가령 김영삼 전 대통령은 최연소(25세) 국회의원, 헌정 사상 최초 의원직 제명(1979년), 한때 최장기(23일) 기록 단식 투쟁, 최다선 국회의원(김종필 총재 등과 함께 9선) 등의 신기록을 갖고 있다.

YS는 또 대통령 재임 중에 하나회 척결을 통한 군부통치 종식, 금융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등의 업적을 이뤘으나 외환 위기 초래 등의 과오도 남겼다. YS뿐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 DJ, JP 등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큰 족적을 남겼으나 그들이 남긴 잘못된 유산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3김 시대는 민주화·산업화를 진전시킨 시기였으나, 극심한 지역주의 정치와 계파 정치의 문제점을 보여준 기간이기도 하다. 3김과 박 전 대통령은 모두 한국 정치사에 빛과 그림자를 남겼다.

'3김' 취재의 추억… 요즘 여야 지도자, 3김 리더십에 못 미쳐

필자는 1992년부터 20여년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3김씨 모두를 전담 취재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대선이 있던 1992년에는 YS와 DJ 관련 뉴스를 커버했었다. 그 해 봄과 여름에는 매일 아침 YS의 상도동 집을 찾아가곤 했다. 같은 해 가을 이후에는 DJ의 동교동 집을 찾거나 DJ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취재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1995년 JP가 신한국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할 때에는 JP를 전담 취재했었다.

YS 서거 소식을 들으면서 1992년 당시 여당의 대통령후보였던 YS를 가까이서 취재했던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당시 YS는 매일 새벽 상도동 자택 인근 ‘아차산’에서 동네 주민 50여명과 조깅을 하곤 했다. 조깅 코스는 당초 생각과 달리 불과 100여 m에 불과해 좀 의아했었다. YS는 자택에서 나와 5분여 걸어서 조깅 코스에 도착한 뒤 기다리고 있던 동네 주민들과 30여분 동안 100m코스를 수십 번 왕복하며 뛴 뒤 바로 옆에 설치된 야외 운동기구들을 이용해 몇 분 간 더 운동했었다. 당시 내가 조깅 코스가 짧은 것 아니냐고 얘기하자 YS가 ‘함께 뛴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던 일이 기억난다.

어쨌든 3김을 취재하면서 YS는 통 크고 결단력과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지도자란 느낌을 받았다. 또 DJ는 풍부한 지식과 깊은 논리를 갖추고 있었고, 일 처리 과정에서 늘 신중하고 치밀했다. YS와 DJ 모두 신념과 목적의식이 강했으나 그것을 이루는 방식에선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YS는 목표를 가급적 단기간에 완수하기 위해 빠르게 결정하고 직설적으로 말하곤 했다. 반면 DJ는 여론을 의식하면서 목표 설정과 추진 방법에서 명분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 듯 시간이 걸리더라도 논리를 다듬기 위해 노력했다. 줄곧 2인자 자리에 머물러야 했던 JP는 박학다식했고, 멋과 낭만을 아는 정치인이었다. JP는 국정운영 및 국내외 방문·독서 등의 다양한 경험을 곁들여 얘기함으로써 실감나게 했다.

'양김'이 정치 무대에서 내려온 뒤에도 양김 시대를 이어갈 수많은 거물 정치인을 만나면서 취재했다. 하지만 양김처럼 큰 기개와 비전·신념을 가진 정치인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양김은 정권을 상대로 투쟁하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 여야 지도자들은 대치와 대결의 정치를 계속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요즘 여야 지도부는 당내 세력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통 큰 타협을 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으나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요즘 여야는 민생 문제 해법을 내놓지 못하면서 당내 계파 투쟁에 혈안이 돼 있다. 여당에선 친박과 비박이, 야당에서는 친노와 비노가 공천권과 자리를 둘러싸고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반면 경제와 복지, 안보·통일 분야의 최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비전을 보여주는 큰 정치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선 자꾸 ‘분열’ 코드가 힘을 발휘하고 갈등과 대치를 해소하려는 ‘통합’ 코드는 왜소해지고 있다. 정치인들은 갈등 현안을 해결하기는커녕 이같은 대립 상황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남남 갈등이 확산되고, 여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3각 내전' 시리아의 난민 사태 교훈… 분열 막아야

최근 시리아 난민 사태를 보면서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리아 국민 2,300만명 중 절반 이상이 난민이 된 것은 시리아가 3개 세력 이상이 서로 총을 겨누면서 무정부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정부군·반군·극단적 무장 이슬람 단체인 IS 등이 무력 대치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의지할 곳 없이 목숨을 잃고 있다. “우리는 종교 갈등이 벌어진 시리아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이념과 노선, 지역주의, 정치적 이해 등 다차원으로 분열된 우리나라의 상황을 그리 가볍게 넘겨버려선 안 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이다.

따라서 여야의 정치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당내 정치뿐 아니라 여야 관계, 남북 관계 등에서 분열과 갈등 보다는 국민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과제인 정치개혁, 경제 성장과 복지 정책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안보를 튼튼히 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리더십은 '통합'과 '비전 경쟁'의 정치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여야 모두 YS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덕담을 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각각 YS에 대해 '민주화운동의 큰 별' '민주주의 거목'이라고 평가했다. 상도동계 출신인 김무성 대표는 'YS의 정치적 아들'임을 자처했고,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민주화 역사를 만든 큰 별'이라며 YS의 민주주의 정신 계승을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대통령'이라고 말했고, YS와 애증 관계를 지닌 JP는 빈소를 찾아 '신념의 지도자'라고 추켜세웠다.

YS 생전에 대립했던 여러 갈래의 여야 정치세력들이 고인 앞에서 서로 덕담을 나누는 모습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선 안된다. 앞으로 여야의 정치 지도자들이 갈 길은 분명하다. '통합의 정치'와 '비전 경쟁의 정치'이다. 내년 4월 총선과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국민들은 이같은 기준으로 정치 세력을 평가하고 심판해야 한다. 그게 우리들이 함께 살아남는 길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