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승리 위해 호남 민심 코드 읽는 방법…"위기 극복 첫 단추는 호남 민심 복원"

'호남 승리 없으면 야권에 대권 없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층 통합'

'정당 이념 재확립' '유력 주자들의 지지율 회복' '이념보다 민생 이슈' 필요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칼럼] 무고한 생명을 무참히 앗아간 파리 테러 참사에 대한 충격이 적지 않다. 13일의 금요일에 일어난 테러 집단의 도발에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지구인들 모두의 트라우마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프랑스 특히 파리지앵의 상실감과 분노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파리는 프랑스의 상징에 그치지 않고 유럽의 상징이다. 에펠탑이 그렇고 프랑스를 상징하는 계몽주의 정신 즉 ‘톨레랑스'(관용)가 그러하다. 영웅은 위기에 탄생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테러에서 최고의 영웅은 파리 시민들이었다. 지난 1월 만평잡지인 ‘샤를리 애브도’ 테러 때도 그랬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테러로 명명되는 이번 일을 당한 현장에서 보여준 프랑스 시민들의 침착함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올랑드 대통령을 비롯해 수만명이 운집한 축구경기장에서 혼비백산한 무질서를 보였다면 상상하기 힘든 희생자가 나왔을지 모를 일이다. 성숙한 프랑스 시민들의 정신은 큰일을 당했지만 빛나는 영웅의 면모였다.

프랑스의 위기는 600여년 전에도 있었다. 영국과 일전을 겨루었던 백년전쟁이다. 말이 백년이지 지겹고 지겨운 전쟁이었다. 대부분 프랑스의 영토에서 일어난 전쟁이어서 프랑스 경제는 마비 일보직전이었다. 프랑스의 지도자 샤를 6세는 통치능력을 상실했다. 이때 우뚝 일어선 오를레앙의 성녀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잔 다르크였다. 역사가들의 다양한 분석이 있겠지만 백년 전쟁을 반전시킨 잔 다르크의 무기는 용기였다. 남자도 감히 엄두내지 못하는 용기로 오를레앙에서 영국군을 격퇴한 잔 다르크의 존재는 영국군에게 두려움 그 자체였다. 잔 다르크는 조국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결정은 프랑스 백성을 수호하기 위해 나선 병사들과의 약속으로 함께 했다. 말 그대로 무적의 잔 다르크 군이었다.

'호남의 잔 다르크' 만들기 위한 5가지 민심 코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지지율은 새누리당 절반에 그치고 텃밭인 호남의 민심은 폭발 일보직전 상황이다. 노무현정부에서 문재인 대표와 함께 했던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은 둥지를 떠났고, 박주선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 쓴소리를 내뱉으며 등을 졌다. 호남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아성 중 아성이다. 호남 없이는 총선 승리도 정권교체도 힘들어진다. 호남을 잡기 위해 반드시 미리 알아야 할 5가지 민심 코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과거 진보 정권의 탄생에는 대선을 앞둔 선거에서 비록 작은 진통은 있었을지라도 호남에서 철석같이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호남의 결집이 모든 필승의 첫 단추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 세력은 힘을 합해야 한다. 호남 선거 영향력을 위해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등은 대선 후보 지지율을 높여야 한다. 정치 활동을 시작조차하지 않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지지율에서 계속 밀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선거 영향력이 무력화될 소지가 크다. 호남 민심 복원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의 정치적 성향과 당의 이념적 성격을 최대한 동조화시켜야 한다. 지난 대선처럼 ‘묻지마 투표’는 더 이상 광주에서는 일반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역 유망주를 발굴해야 한다. 호남 지역을 미래에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유망주를 키워내지 못한다면 정치적 관심은 이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대선 직전 호남 선거에서 결집 보여야 대권으로 연결

우선 대선 직전 선거에서 호남 지역 필승 카드가 유지되어야 한다.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96년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는 호남 총 37석 중에서 36석을 싹쓸이했다. 전북에서 단 1곳만 내주고는 완벽한 지역 결집 능력을 보여주었다. 2002년 연말 대선을 앞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같은해 6월 13일 실시된 지방선거 결과는 매우 중요했다. 일찌감치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가 된 노 전 대통령의 대선 파괴력을 사전 검증하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새천년민주당(집권여당)의 참패였다. 월드컵 개최로 투표율(48.9%)이 채 50%가 되지 않았지만 변명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후 과정은 고난이었고 후보 단일화로까지 연결된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호남만 놓고 보면 사정은 다르다. 광주·전북·전남 등 호남권은 물론 심지어는 제주까지 새천년민주당의 싹쓸이였다. 적어도 호남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통령은 결국 노무현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참패한 정동영 전 고문에게 2006년 지방선거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이벤트였다. 열린우리당의 완패였고, 호남에서 참패였다. 호남 승리 없는 후보를 향해 대선은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가장 관심이 가는 선거는 2012년이다. 문재인 대표는 바로 지난 대선 당시 후보였다. 안철수 후보의 중도 사퇴,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사퇴로 대선 당일은 사실상 야권 단일후보였었다. 아주 완전한 결집이라기엔 2012년 선거 결과는 적지 않은 물음표를 던져준다. 지금 내홍의 불씨는 2012년 총선때부터 잉태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당을 탈당한 박주선 의원은 당시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30% 득표가 넘는 무소속 후보가 지역구에서 두 명이나 되었지만 민주통합당은 단일화로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지역구 공천을 내주었다. 4·29 재보선(광주서구을)에서 천정배 의원과 맞섰던 조영택 전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광주서구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3위에 머물렀다. 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 정용화 후보(무소속)에게조차 밀렸다. 지난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의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는 석패했지만 40%에 가까운 득표를 올리도록 민주통합당은 속수무책이었다. 전북에서도 정읍 선거에서 과반에 가까운 득표로 당선된 후보는 공천을 받지 못한 유성엽 후보였다(당시 무소속, 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 야권 단일화의 결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호남 30석 중에서 5석(16.7%)은 민주통합당이 아니었다. 대통령 선거라는 지지층 최대 결집의 무대에서 호남 5석의 의미는 작아 보이지 않는다. 결과를 알고 과정을 되돌아봄은 부질없는 넋두리에 그친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표는 호남으로부터 90%라는 절대적인 득표를 받았다. 호남 민심이 지금 어느때보다 더 서운해 하고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문 대표에게 호남은 없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층의 유기적 통합 필요

호남 민심을 잡는 두 번째 코드는 통합이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통합이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합을 의미한다. 즉 두 전직 대통령을 성원하는 지지층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뭉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지난 전당대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가진 문 대표와 일합을 겨루었다. 승부는 치열했다. 결과는 간발의 차이였다. 승자는 패자를 다독이고 패자는 승자를 축하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국민들이 그리고 지지층들이 볼 수 있었던 장면은 통합과 화합보다는 분열과 갈등의 순간이 더 많았던 것이 문제였다. 두 전직 대통령의 세력 통합 없이 호남 민심의 복원은 없다. 어느 한쪽만 취해도 충분하지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없는 노 전 대통령 탄생을 생각할 수 있는가. 노 전 대통령 탄생의 일등공신들인 김원기, 이해찬, 권노갑 전 의원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했던 사람들 아닌가.

리서치앤리서치가 데일리한국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12월 20~22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어느 대통령이 임기 중에 가장 많은 업적을 남겼는지’ 물어본 결과, 광주·전라 지역에서 ‘내 마음 속의 대통령’ 1위는 김대중 전 대통령(39.6%)였다. 10명 중 4명은 아직도 김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자신을 핍박하며 정치적 수난을 안겼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마저 관용(톨레랑스)을 보여준 김 전 대통령은 곱씹어 보아도 호남 정치의 상징이다. 2위는 노무현 전 대통령(27.1%)이다(그림1). 두 전직 대통령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면 호남 유권자들의 10명 중 7명의 지지는 기본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에 머무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호남 지지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준으로 하는 통합 없이 호남 민심은 없다.

호남의 정치 성향 '진보'만은 아니다…정당 이념 재확립해야

다음은 이념이다. 흔히들 짝이 되려면 궁합이 맞아야 된다고 설명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오랜 기간 호남 지역은 야당 즉 민주당의 역사와 함께했다. 정치적 성향은 민주화였고, 기득권 타파와 지역적 불균형 해소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두 번의 정권을 맛보았다. 호남 또한 이제는 행정구역의 한 명칭이지, 무조건 특정 정당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함께 가지 않는다. 가장 많은 고민은 더 이상 특수한 정치 상황에 대한 입장 표명이 아니라 먹고사는 민생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나이가 들면 보수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정치적 이슈보다는 정부의 농산물 수매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농촌 지역이 아직도 많은 호남이다.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순천·곡성)의 승리는 유권자의 눈높이를 철저하게 맞춘 덕분이다. 그 선거에 이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달라진 호남의 이념적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있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정당 지지층별과 지역별로 정치적 이념 성향을 분석(가장 진보적인 경우를 0으로 하고 가장 보수적인 단계를 10으로 하는 11점 척도)한 내용에 따르면 유권자 이념성향 평균은 5점대 중반 정도로 나타났다. 가장 중간보다 보수 쪽으로 조금 더 가있는 한국 사회 이념성향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념적 성격에 대해서는 4점대 초반으로 보았다. 6점대 중반 수준인 새누리당과는 2점 이상 차이가 있다. 주목할 결과는 호남이었다. 광주·전라 지역은 5점대 초반으로 새정치민주연합과 거의 1점 정도의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연령별로 40대 이상부터는 5점대였고 50대는 5점대 후반에 이를 정도였다. 지난 4·29 재보궐선거에서 40대 이상 그리고 50대 이상의 투표율이 높았다는 점에서 광주 서구을 선거 결과(천정배 완승)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한 50대 이상의 유권자들이 투표자들의 대부분이었다면 승부는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심장인 호남은 더 이상 진보적 이념의 집결지가 아니다. 5·18 민주화 운동의 숭고한 정신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까지 미치고 있지만 그 ‘광주 정신’이 더 이상 ‘진보 정신’만을 의미하진 않는 데 주목해야 한다. 당 일각에서 터져나오는 ‘중원 전략'(당의 정책 노선을 중도층 또는 정치적 무당층에 초점을 맞춤)이 훨씬 더 설득력있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념적 지표의 중원 지대로 이동하지 않으면 호남 민심은 붙들기 매우 힘들다. 물론 총선 승리도 힘들어진다.

문재인 등 야권 유력 주자들의 호남 지지율 회복시켜야

호남 민심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는 인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재는 구심력 부재의 시대로 만들어버렸다. 호남의 이익을, 호남의 정신을 대변할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다. 야권의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치고 호남 출신은 사실상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대표, 안철수 전 대표는 모두 부산·경남(PK)출신이다. 그리고 안희정 충남지사도 지역 단체장을 맡고 있어서 호남의 지역적 이익을 직접 대변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전국적인 정치력을 지닌 인물이 없다. 가까운 미래에 집중 부각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전북과 전남의 정치적 바구니가 따로 작동하는 경우도 있고 지역의 공천 문제로 통합적인 구심력을 토해내지 못하고 있다. 광주에서 학교를 졸업한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인천에 정치적 둥지를 틀면서 ‘호남 대망론’의 발판이 만들어지는 듯 했지만 최근 광주 복귀설에 대해서는 지역 민심마저 싸늘해진 신세가 되어버렸다.

가장 호남 민심을 붙들기 좋은 시나리오는 문 대표의 호남 영향력이 회복되고 이른 시일내 지역 내 차세대 주자가 키워져야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직전 대선후보이자 호남이 사랑했던 노 전 대통령의 유산을 가진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 몰락 충격이 크다. 지난 대선에서 호남은 90%의 화력을 문 대표에게 일방적으로 몰아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이후 호남 민심과 소원해지면서 최근 지지율은 여당의 후보보다 못한 국면까지 추락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0~12일 실시한 조사(전국 1012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광주·전라(표본수103명)지역의 지지율 1위는 박원순 서울시장(26%)이었다. 강력한 야권의 차기 대선후보이긴 하지만 서울시 수장인 박 시장을 호남에서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비슷한 시기의 다른 조사기관 지역 결과는 다른 경우가 있음 www.realmeter.net). 문재인 대표는 5%로 안철수 의원보다 낮았다. 충격적인 것은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9%)보다 낮았다. 다른 조사기관의 결과는 이와 달랐다고 하지만 추세적으로 문 대표의 호남 지역 지지율은 올해 초 당 대표 선출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왔다(그림2).

지난 대선에서 90% 가까운 몰표를 몰아준 호남 민심은 온데간데없다. 개인적인 지지율이 가지는 의미도 크지만 더 큰 걱정은 당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문 대표 체제가 당의 지지율 하락을 막지 못하는 데 있다. 전국적인 지지율은 20% 초반에 그치고 텃밭인 호남의 지지율은 35%의 초라한 성적표다. 대표 자리가 흔들리고 혁신위의 진의가 전달되지 않으며 두 번의 재보선에서 패배한 일차적 원인은 ‘낮은 지지율’에 있다. ‘문재인-안철수-박원순’ 희망 스크럼 논의가 터져 나오는 가장 큰 원인도 총선을 앞두고 정체된 지지율에 있다. 희망 스크럼은 통합을 의미한다. 지표상으로야 문재인-안철수-박원순 세 사람이 뭉치면 33%(한국갤럽 조사 기준)로 단번에 30%대 중반 지지율로 올라선다. 갤럽 조사에서 39%까지 내려간 새누리당과 불과 6%P 차이에 불과하다. 민주당이 좋은 선거 성적을 받아든 2010년 지방선거 때의 두 정당 지지율 격차와 비슷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유기적인 스크럼이 제대로 짜여질지 여부이다. 호남에선 5%의 문 대표 지지율에다 두 사람(안철수, 박원순)의 지지율을 합해야 45%로 과반에 가까워진다. 호남에서의 새정치민주연합 영량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문 대표의 호남 민심 회복은 절실하다. 문 대표의 지지율이 올라야 선거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탈당·분당·신당 흐름이 주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호남의 핵심 이슈 알아야…진보적 이념보다 민생 코드

마지막으로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챙겨야 할 코드는 호남의 핵심 이슈를 제대로 아는 데 있다. 5.18의 성지이고 한국 민주화 운동의 본산이라고 해서 아주 진보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다고만 판단하면 오산이다. 민주화는 민주화이고 민생 이슈는 민생이기 때문이다. 과거 두 정권 탄생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호남은 적어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관련 이슈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었다. 남북 정상회담에는 환호했고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시련에는 함께 울었다. 이제는 아니다. 재보선 당시 순천·곡성 고향에서 당선된 이정현 후보의 유권자 선택에 진보적 이슈는 없었다. 오로지 민생과 예산을 외친 새누리당 후보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여준 결과였다. 호남 민심의 섬김을 받기보단 먼저 유권자들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한 성과였다. 깃발만 꽂으면 우리 당과 후보자들을 무조건 지지하는 투표 태도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같은 역사적 이슈에 대해서는 다른 여느 지역과 비교할 때 진보적이고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이것이 지역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진 않는다. 한국갤럽이 지난 3~5일 실시한 조사(전국1004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국정 교과서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물어본 결과 호남 지역에서는 반대가 68%로 압도적이었다. 검정 교과서에 대한 선호가 뚜렷한 지역이 광주·전라 지역이었다. 그렇지만 같은 조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호남 지지율은 32%로 ‘교과서 반대’ 여론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호남에서 교과서 반대 여론과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율은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있다.

호남 유권자들의 숙원 사업은 실상 다른 데 있다. 리서치앤리서치가 KBS의 의뢰를 받아 지난 8월 10~11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이 무엇인지’ 물어본 결과 다른 어떤 지역보다 민생 현안에 대한 요구가 강렬했다. 20대에서는 ‘일자리 창출로 취업난 완화’, ‘비정규직 처우 개선’, ‘학력 위주 채용 관행 타파’였다. 30대는 ‘육아 부담 경감’이었고 40대는 ‘고용 보장’, ‘자녀 사교육비 부담 경감’이었다. 결코 정치적인 이슈에 답이 있지 않다. 호남 또한 생활고로 신음하고 있다. 이들을 위로해줄 그리고 위로해주는 정당이 사랑받게 되는 구조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은 우리의 영웅이다. 전란의 위기에 놓인 조선을 끝내 왜적의 침탈로부터 지켜낸 우리 모두의 영웅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1593년 7월 친구인 사헌부 현덕승에게 보내는 글에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적고 호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왜란이 발발하자 파죽지세로 북상한 일본군이 감히 호남으로 넘어오지는 못했다. 바다로는 이순신이 있었고 땅으로는 진주성과 곽재우가 있었다. 군량미 병참기지로서 군병력 송출기지로서 호남의 중요성은 임진왜란 당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특정 지역에 대한 의도적인 부각이라기보다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위태로운 운명에 놓인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호남은 국난 극복에 너무도 중요한 곳임을 의미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처지가 당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이 무너진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롯이 서지 못한다.

호남 민심을 붙들기 위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5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호남 승리 없이 대권은 없다는 분석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산을 받은 세력 간의 유기적 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달라진 호남의 정치적 성향을 반영한 정당의 이념적 재확립이 필요하고 유력 주자들의 차기 대선후보 경쟁력이 회복되어야 한다. 민주화의 성지로서만 광주와 호남을 바라보지 말고 민생과 생활의 핵심 코드를 읽어내야 한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는 막강한 현직 대통령이자 공화당 후보인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맞붙어 낙승했다. 정치 풋내기에 불과했던 클린턴 후보였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는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던 셈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전국에 걸쳐 있는 호남 민심을 하나로 엮어내지 못했다면 청와대 입성이 가능했었을까. 호남 민심의 압도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48%의 역대 2위에 해당하는 득표를 올릴 수 있었을까. 새정치민주연합 위기 극복의 핵심은 통합이고, 첫 단추는 호남 민심 복원이다. 야권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생적 문제 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을 곱씹어볼 때가 되었다. 누가 새정치민주연합을 구할 ‘용기 있는’ 잔 다르크가 될 것인가.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길리서치 팀장-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이사, 현)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