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 해결의 최대 장애물은 '부채 탕감' 요구… 성공 사례 드물어

잘못된 진단과 처방… 그리스 사태 본질은 재정위기 아닌 외환위기

국제수지 개선부터… 노동자 중 4분의1 이르는 공무원도 줄여야

최용식 정치경제평론가
[데일리한국=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 경제 리포트] 그리스 경제 위기는 2010년 5월에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통화기금(IMF)이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표면화됐다. 그리스 국민은 벌써 5년째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셈이다. 경제난이 이처럼 장기간 지속되자 기업들의 경영수지가 이미 심각한 수준까지 악화되었고, 투자와 고용은 실종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제는 생산활동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 역시 경영수지 악화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그리스 경제는 도대체 언제쯤 살아날 수 있을까? 그리스 국민은 언제쯤 지금과 같은 경제난의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행히 지난 7월11일에는 국제채권단이 요구하는 재정긴축에 근접한 그리스 정부의 재정 개혁안이 압도적인 표 차로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3차 구제금융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럽연합(EU) 각국의 주요 정상이 그리스의 개혁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그 성사 가능성을 높인다. 그렇다면 그리스 사태는 이제 해결의 길로 들어설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긍정적일 수가 없을 것 같다. 벌써 구제금융을 두 차례 받았지만, 그리스 경제 위기는 해소되지 못했지 않은가.

이번 3차 구제금융 역시 다른 두 차례의 구제금융처럼 결국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리스 정부가 채권단에 부채 탕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실패의 가능성을 높인다. 부채 탕감을 위한 채무 조정 협상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수개월 혹은 수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에 그리스 경제는 악순환을 지속할 것이다. 경제에서 악순환이 발생하면 그 속도를 점점 높이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사실도 그리스 경제 위기가 해소되지 못하고 장기화할 가능성을 높인다. 이런 사례는 역사에서 이미 벌어진 바 있다.

사태 해결의 최대 장애물은 부채 탕감 요구

1980년대에 금융 위기에 처한 중남미 각국은 채권단에 부채 탕감을 요구하고 나섰다. 독재정권이 들여온 채무에 대해서는 국민이 부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은 이 요구가 국제채권단에 받아들여져 나라에 따라서 크게는 약 70%, 작게는 30% 넘게 원금과 이자를 탕감 받은 바 있다. 언뜻 보기에 이것은 획기적인 결과처럼 보였다. 그만큼의 국민 부담이 줄었으므로 경제난 극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경제난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등 그 결과는 너무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물가상승률이 한때 8천%에 달했고, 브라질도 한 때 5천%에 달하기도 했다. 이런 '초(超) 인플레이션'이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 약화를 부름으로써 경제난을 더욱 심화시켰다. 국민이 겪은 초인플레이션의 경제적 고통은 다른 어느 것보다 더 심각했다. 소득은 정체되어 있는데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 경제 생활은 극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왜 이같은 불행한 일이 벌어졌을까? 경제란 한번 악순환을 시작하면 그 속도를 계속 높여가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가 터져 악순환이 진행되는 동안 각국 정부는 부채 탕감을 위한 협상에 매달려 있었다. IMF 등의 구제금융이 이뤄져야 경제가 정상화될 수 있는데, 협상이 지루하게 진행되는 동안 경제 상황은 마냥 악화되기만 했다. 경제난 악화는 ‘IMF와의 동반 침몰’ 등을 외치는 국민들의 시위 소리만 키웠다. 지금 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그때도 벌어졌던 것이다.

부정확한 진단은 적절치 못한 처방을 부른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점은 그리스 경제 위기에 대한 진단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원인은 물론이고 전개 과정에 대한 진단조차 정확하지 못하다. 이처럼 진단이 정확하지 못하면 처방도 적절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처방이 적절하지 못하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게 빤하다. 그리스는 이미 두 차례나 구제금융을 받음으로써 그동안의 처방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세계 최고의 경제전문가들이 모여서 진단을 했는데, 왜 그것이 정확하지 못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용어의 미분화 때문이다. 영어권에서는 그리스 사태를 흔히 Financial Crisis라고 부른다(다른 언어권도 마찬가지이다). 이 용어는 재정 위기는 물론이고 금융 위기와 외환 위기에도 쓰인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위기는 원인과 전개 과정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분리하여 부르는 게 마땅하다. 재정 위기는 Fiscal Crisis로, 금융 위기는 Financial Crisis로, 외환 위기는 Currency Crisis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 경제 위기는 이미 2008년부터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경상수지 적자가 2008년에 GDP의 무려 13.6%에 달했던 것이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를 빠르게 진행시켰던 것이다. 경상수지 적자가 이처럼 거대해지면, 외환보유고가 고갈되고 환율이 급등해야 하는데, 그리스는 유럽연합 회원국으로서 유로를 화폐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유로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고, 결국은 파국적인 금융 위기를 맞았다. 통화란 우리 몸의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하며, 혈액의 10%만 빠져나가도 목숨이 위태롭다. 마찬가지로 그리스의 경상수지 적자가 13.6%에 달했다는 것은 그만큼의 통화가 외국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스 경제가 괴멸 지경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IMF와 ECB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재정 수지 개선을 요구했다. 그리스 사태를 재정 위기로 인식했을 따름이다. 이처럼 진단이 잘못되었으니, 거액의 구제금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사태는 마냥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사태의 본질은 외환 위기

널리 알려져 있듯이 그리스 사태가 재정 위기라면, 스페인은 당시에 경제 위기를 겪을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스페인은 실업률이 한때 20%를 넘길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 만약 스페인의 경제 위기도 IMF 등의 진단처럼 재정 위기였다면, 스페인은 이런 심각한 경제난을 겪을 이유가 없었다. 재정은 비교적 건전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국가부채 비율은 재정이 가장 건전하다는 독일보다 적었을 정도였다. 스페인도 2008년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9.6%에 달함에 따라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를 동시에 겪었다. 다행히 2009년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3.8%로 크게 개선되어 그리스처럼 심각한 사태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리스 경상수지 적자도 2009년에는 6.9%로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큰 규모였다. 그래서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가 계속 진행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 사태의 원인은 외환 위기라고 진단했어야 했다. 외환 위기를 일으킨 경상수지 적자가 통화의 국외 유출을 초래했고, 통화가 대규모로 유출되자 신용 경색이 일어나 금융기관이 붕괴에 직면하는 금융 위기로 발전했다. 금융 위기는 경제 활동을 위축시킴으로써 경제 위기를 불렀으며, 경제 위기는 조세 수입을 급감시킴으로써 재정 위기를 불렀던 것이다. 이런 전개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니 처방도 적절치 못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스 사태는 마냥 악화되기만 했다.

그리스 사태의 해결은 국제수지 개선부터

그럼 그리스 사태에 대한 처방은 어떻게 했어야 했고, 향후에는 어떤 처방을 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미 역사적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외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던 역사적 사례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과연 어떤 것일까? 대표적으로 두 사례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1998년) 멕시코(1995년)의 외환 위기 극복이다.

당시의 멕시코와 우리나라는 공통적으로 강력한 긴축 정책을 통해 국내 수요를 위축시킴으로써 국제수지를 단기간에 개선시켰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8년의 경상수지 흑자가 무려 430억 달러에 달함으로써 외환보유고가 확충되었다. 이에 따라 외환 위기가 해소되자 금융 위기도 자연스럽게 정상화되었다.

강력한 긴축 정책이 다수의 기업을 도산시킴으로써 공급자 시장을 조성한 것도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공급자 시장이 조성되자 살아남은 기업은 심각한 불황 속에서도 비교적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우선, 공급자 시장에서는 구매자가 먼저 찾아오므로 영업을 위해 뛰어다닐 필요가 줄어들어 판촉비용과 수송비용이 절약되며, 광고나 기타 판매비용도 절약된다. 그리고 재고를 쌓아둘 틈이 없으므로 재고비용도 감소한다. 여기에다 불황이어서 원자재 값은 싸고, 임금을 올려달라는 소리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경우에 도산할 수밖에 없는 기업을 미리 재빠르게 퇴출시키는 경우에 공급자 시장이 조성되는데, 1998년 성장률 -5.7%가 이런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기업은 큰 이익을 남기게 되면서 생산과 고용과 투자를 늘렸고, 이것이 우리 경제를 되살려냈다.

만약 당시에 긴축정책을 채택하지 않았거나 너무 빨리 완화했더라면, 1980년대에 중남미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 외환 위기도 수년 혹은 십수 년 동안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외환 위기가 불러온 경기 후퇴가 유효수요의 부족을 일으켜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됐더라면, 만성적인 수요자 시장(Demander's Market)이 이어졌을 것이고, 이것은 기업의 경영수지를 지속적으로 악화시켰을 것이다. 그러면 생산과 투자는 계속 위축되고 경기는 하강했을 것이며, 결국은 더 많은 수의 기업이 도산했을 것이다. 국민의 경제적 고통과 국가 경제의 폐해도 더 커졌을 것이다.

"사회 상층부가 무거워지면 붕괴 위기 겪는다"

불행하게도 그리스는 그동안의 극심한 경제난 때문에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따라서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강화시킬 정책이 추가로 요구된다. 그 방법은 지금의 경제 위기를 불러온 그리스의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역대 그리스 정부는 ‘좋은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공무원의 숫자를 경쟁적으로 확대시켰다. 지금은 노동자의 1/4이 공무원이다. 85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의 월급이 재정지출의 50%를 넘는다. 인구 1천만 명인 그리스의 공무원수가 5천만 명인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은 58세에 퇴직하면 연금을 월급의 98%나 평생 동안 받는다. 그래서 유능한 젊은이는 거의 모두 공직으로 몰려들었다. 국제경쟁에 직접 나서야 할 민간 부문은 유능한 인재를 쓸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 그리스의 국제경쟁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하지 못하면 그리스의 장래는 더욱 비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피터 터친은 <제국의 탄생>에서 "사회 상층부가 지나치게 무거워지면 제국은 그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게 되어 결국은 경제난을 초래하며, 이것이 빈부 격차를 키움으로써 사회적 결속력을 떨어뜨려 내란이나 붕괴 위기를 겪는다"고 여러 역사적 사례들을 들어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그가 지적한 사회 상층부는 체제의 관리 부문을 구성하는 공공 부문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스 사태의 근원과 해결책은 여기에 있다. 현실적으로 공공 부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질 경우에는 생산요소의 생산성 즉, 잠재성장률은 더 커지고, 공공 부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커질 경우에는 생산요소의 생산성 즉, 잠재성장률은 더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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