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기획-국가 혁신과 통일 준비 ③] '통일 대비 소비자 정책 방향'

통일 논의는 정치·거시경제 차원뿐 아니라 남북 주민의 생활문화 차원으로 확장돼야

통일 단계별로 소비생활 정책을 차별화하고 북한 이탈 주민의 시장 적응 도와야

나종연 서울대 교수
[나종연 서울대 교수 칼럼] 통일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현정부는 국정 과제 4개 중 하나로 통일 기반 구축을 설정하고, 2014년 대통령 신년사에서 '통일대박론'을 제시했다. 작년에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통일 준비 공론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면, 이제 사회 각 영역에서 시대적 과제인 통일 대비 및 구현 방안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어야 한다. 통일이 언제,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질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통일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에 남북한 통일의 방향 및 범위 등을 여러 각도에서 전망해 보고, 이에 따르는 현실적 정책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통일 논의는 남북 주민의 일상적 생활문화 차원으로 확장돼야

남북한 통일은 단순한 국가 간의 물리적 결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60여 년 간 이질화된 남북한 주민들이 한 국가, 한 체제 내에서 동질화되는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통합을 위해서는 정치, 행정,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제도적 접근이 요구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러한 통합 과업의 성패는 남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체제에 대해 적응하는 능력에 달려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남북한 사람들이 상호 적응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통일 논의는 정치적·거시경제적 차원뿐 아니라 남북 주민의 일상적 생활문화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남북한 단절의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이질화된 생활문화을 어떻게 통합해나갈 것인지는 사회통합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북한이 서로 판이한 경제체제 하에서 오랜 세월 동안 각각 별도로 발전해온 우리의 경우 통일 이후의 시급한 과제 중 경제체제 통합에 대한 준비와 교육이 우선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이질적일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소비 생활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통일 이후 소비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대비해야

통일 이후 소비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대비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소비자 안전, 거래, 교육, 정보, 피해 구제 등 소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시장 및 사회적 불안정 기간이 장기화될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통합을 위한 비용(금전적, 심리적,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야기한다. 또 소비 격차와 소비자 역량의 차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 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일을 대비한 소비자 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통일을 대비한 소비자 정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첫 번째 문제는 남북의 경제체제, 발달 단계, 규모의 차이에서 오는 정책적 접근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통일 대비 소비자 정책에서는 남한의 시장 환경 및 소비자 역량과 북한의 시장 환경 및 소비자 역량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이원화된 소비자 정책을 수립할 것인지 또는 기존의 소비자 정책 골자를 유지하면서 취약계층으로서 북한 소비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할 것인지 등에 대한 방향 설정이 우선돼야 한다.

통일 대비 소비자 정책은 단계별로 차별화돼야

둘째, 통일 대비 소비자 정책에서 단계 및 시기에 따라 차별화된 전략이 요구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통일 준비 단계에서는 북한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돕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북한 소비자들이 바람직한 소비 행태에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통일 대비 소비자 정책의 주요 내용이 될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제도권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경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간 부문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민간과 정부의 유기적 협업이 필요하다. 또 북한 이탈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소비자 정책은 미래 통일 이후 시점에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소비자 정책 수립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통일 추진 단계는 남한과 북한의 제도 통합을 위해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 조직 및 예산 조달 방안, 기존의 소비자 관련 법, 제도 이외에 보완이 필요한 부분의 점검 등이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수립된 법, 정책의 내용을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통일 완성 단계는 시장체제와 제도적 통합이 이루어지고 나서 성숙한 소비자 시민의식을 고양하고, 소비자이익에 있어서 형평성(equity)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 수립 및 시행이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이탈 주민들이 시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셋째, 누구를 위해 어떠한 정책을 가지고 접근할 것인지 고려되어야 한다. 통일 소비자 정책의 대상은 남한의 소비자와 북한의 소비자, 북한 이탈 후 남한에 정착한 소비자와 통일된 한국의 소비자로 구분할 수 있다. 남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통일 대비 소비자 정책의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는 상호 배려하는 시장공동체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선행 연구들은 북한 이탈 주민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으로 남한 주민의 냉대와 멸시를 지적하면서, 북한 이탈 주민을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2천만이 넘는 북한 동포와의 통일은 어려울 수 있음을 지적한다. 통일 대비 소비자 정책에 있어서 남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비자 정책에서는 시장 거래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북한 주민을 배려하고, 공정하게 대할 수 있도록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의 함양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이탈 소비자도 통일 대비 소비자 정책에서 중요한 대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북한 이탈 소비자는 단순히 북한을 떠나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회 경제적 체제가 전혀 다른 사회에 와서 적응해야 하는 극단적인 취약 소비자라고 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남북한의 이질화로 인한 문제를 경험하고 드러냄으로써 통일을 위한 중간집단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이에 북한 이탈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비자 정책은 효과적인 소비자 사회화 방안 모색을 통한 북한 이탈 소비자의 시장 적응 및 통일 이후 북한 소비자의 사회화를 위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또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에서 소비자 사회화 과정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들을 역량 있는 통일 대비 소비자 전문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통일 대비 소비자 정책의 세 번째 대상은 북한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통일 대비 북한 주민을 위한 소비자 정책의 목표는 북한 변화 단계에는 우선 북한 주민의 삶과 관련된 자료를 가능한 많이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소비자로서의 생활을 가급적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과, 바람직한 소비 문화를 북한 주민에게 자연스럽게 노출시킬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모색하는 것 등을 포함할 수 있다. 또한 통일에 의해 경제 및 사회 체제가 전환하는 과정에서 북한 주민의 소비자 문제를 줄이고, 빠르게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에 대한 고민도 통일 대비 소비자 문제의 중요한 논제가 될 수 있다.

통일 대비 소비자 정책의 궁극적인 대상은 통일된 한국의 전체 국민이 될 수 있다. 통일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 소비자 정책은 다양한 구성원이 시장공동체에서 공정하게 참여하고, 공정한 후생을 얻고,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선택과 시장의 생산이 선순환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소비자 복지와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통일은 대비하기에 따라 위기가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통일 이후 생활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면서, 세분화되고 치밀한 준비 작업을 통해 통일을 기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종연 서울대 교수 프로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서울대 대학원 소비자아동학과(석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소비자학 박사- 미국 델라웨어대 교수-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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