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상대로 통일 정책 추진해야"

"북한 정권과 적극 대화해야...그러나 '자극 불가' 논리도 안돼"

"5.24 대북 제재조치 뛰어넘는 새로운 통일 전략 세워야"

"분단 70년, 이제 주저하지 말고 통일의 문을 열어야"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
[이인제 의원 칼럼] 20세기 인류사회에는 제국주의 침탈과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거대한 태풍이 불어닥쳤다. 이 바람 앞에 우리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하고 분단과 전쟁에 휩싸였다. 피어린 투쟁 끝에 광복을 맞이하였지만 나라는 분단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올해로 그 광복과 분단의 역사가 70년이 된다. 우리 민족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분단의 질곡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완전한 광복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와 함께 분단을 강요당했던 베트남, 예멘, 독일은 21세기가 시작되기 훨씬 전 이미 통일을 이루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21세기에 들어온 지 15년이 되는 지금까지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분단의 악조건 속에서도 기적 같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였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을 건설하였지만, 안팎의 도전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반복되는 국제 금융위기, 선진국의 환율 전쟁 그리고 중국의 맹렬한 추격 등 대외 환경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거기에 실업, 빈부 격차, 저출산·고령화라는 내부 모순이 커져가기만 한다.

분단의 저쪽 북한의 상황은 어떤가. 경제적 궁핍은 한계에 처해 있고, 핵 개발을 고집하는 바람에 국제적 고립은 벼랑 끝에 이르렀다. 억압과 공포로 인권은 질식당하고 있다. 오죽하면 유엔이 인권 범죄의 책임을 북한 정권에 묻기 위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논의를 시작하였을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도 급박한 것은 마찬가지다. 중국이 정치·군사·경제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여기에 자극받은 일본의 우경화가 동북아 정세를 긴장시키고 있다. 여기에 중국을 견제하여 태평양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맞물려 격랑이 일고 있다. 자칫 이들 강대국의 패권 다툼으로 한반도 문제가 종속변수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돌파구가 통일이다. 통일은 더 큰 경제를 의미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선언대로 ‘통일은 대박’이다. 특히 북한 지역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여 통일 후 10년 이내에 남한 지역과 거의 같은 소득 수준에 이를 것이다.

통일 한국의 경제력, 30~40년 안에 프랑스·독일·일본 추월 가능

통일 한국의 경제력은 골드만 삭스가 전망한대로 통일 후 30~40년 안에 프랑스와 독일을 추월하고 일본을 추월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북한 주민들에게 억압과 공포는 사라지고 자유와 존엄이 넘치게 될 것이다. 강력해진 통일 한국의 힘은 갈등의 동북아를 통합시키는 중심이 된다. 통일 독일이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던 유럽 통합을 이끄는 기관차가 된 것처럼 우리도 중국, 일본, 몽골, 극동시베리아를 포용하는 동북아공동체를 이끄는 중심 국가가 될 수 있다. 이는 일찍이 안중근 의사가 죽음을 앞두고 쓴 ‘동양평화론’에서 제시한 원대한 비전이기도 하다. 이렇게 통일은 우리민족의 운명을 바꾸고, 아시아를 통합시키며, 인류 사회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하는 위대한 출발을 의미한다.

통일을 결단하는 주체는 정권이나 지도자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다. 우리는 이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독일 통일도 동독 주민과 서독 주민의 정치적 결단의 산물이었다. 먼저 낡은 체제를 무너뜨린 동독 주민이 자유선거를 통해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고 서독 기본법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통일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북한은 독일 통일을 ‘흡수 통일’로 규정하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흡수 통일을 추구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주장이다. 서독이 강제로 동독을 편입한 일이 없다. 또 통일 후 동독 주민들에게 어떤 보복이나 차별도 하지 않았다.

통일 25년이 경과하는 지금 동독 지역 주민들의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은 서독 지역 주민들과 평등하다. 현재 통일 독일의 총리와 대통령이 모두 동독 출신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조차 북한의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일 통일을 굳이 정의한다면 ‘합류 통일’이 맞다. 파주 교하 땅에서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하나가 된다. 이를 가리켜 한강이 임진강을 흡수했다고 말하면 누가 동의할 것인가?

한반도 통일도 남과 북의 국민들이 더 자유롭고 번영하는 체제 안에서 하나가 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원천적인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동독의 공산당 정권은 심지어 소련 공산당의 개방·개혁 요구까지 뿌리치며 끝까지 낡은 억압체제를 고집하다가 도도한 역사의 물결 속으로 사라졌다. 북한 정권은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 민족, 우리 국민의 진정한 뜻과 이익을 중심에 두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정권과 달리 통일을 전면적인 국정 목표로 정했다. 그저 화해와 협력을 통해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것만으로 시대의 소명을 받들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북한 정권이 가장 민감하게 저항하는 핵개발과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지난 정권은 심지어 핵 문제는 국제사회가 다룰 문제라며 외면하기까지 하였다. 인권 문제 또한 북한 정권을 자극한다며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는 동안 북한 핵은 치유할 수 없는 암 덩어리로 커졌고, 인권 문제는 유엔 안보리의 의제가 되어 버렸다.

북한 정권과 대화해야… 그러나 '자극 불가' 논리도 안돼

아무리 어렵고 험난하더라도 이 두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행동은 통일이라는 대의에 정확하게 부합되고 있다. 아직도 북한 변화의 주역이 북한 정권이므로 이들을 자극하지 않아야 평화가 유지되고, 또 이들을 설득해야 통일이 가능하다는 논리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이미 실패한 전략이 아니던가. 물론 북한 정권을 현실적인 존재로서 인정하고 이들을 상대로 진지하게 대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 대화는 민족의 장래, 국민의 뜻을 따라 더 자유롭고 번영하는 미래를 향한 통일에 집중되어야 한다.

우선 우리 국민들의 통일 의지가 뜨거워지고 결집되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통일 정책으로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높아지고, 체계적인 통일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현재 3만 명 가까운 탈북 동포들이 우리 곁에 살고 있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희망을 키워가기에는 국가 정책과 국민적 관심이 너무 부족한 형편이다.

탈북 동포들은 어떤 형태로든 북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과 소통한다. 그들이 북에 어떤 메시지를 보낼까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이 곳이 희망의 땅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때 통일의 문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직전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한 사람의 수효는 100만에 이른다. 서독이 이들을 어떻게 포용했는지, 우리는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북한 정권이 아니라 주민을 상대로 통일 정책 추진해야

다음으로 북한 주민들이 통일을 결단할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지원해야 한다. 과거의 통일 정책이 북한 정권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이제는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하는 통일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한다. 북한 주민이 억압을 뚫고 공포를 벗어나 변화의 주역이 되려면 그들의 정신적·경제적 힘이 성장해야 한다. 정신적 힘을 키우려면 정보 공개가 선결과제다. 그러므로 북한 사회의 폐쇄성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이 가중되어야 한다. 독일의 동방 정책에서 방송·통신의 개방을 우선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적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에 시장이 확대되어야 한다. 다행이 최근 북한에서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어떻게 하면 북한주민들이 시장을 통해 경제적 힘을 축적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인가를 고민할 때이다. 천안함 폭침 등 북한 정권의 도발에 대한 응징으로 덜커덕 민간의 경제협력과 교류를 중단시킨 이른바 5.24 대북 제재 조치도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5.24 조치를 뛰어넘는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우리가 채택하는 어떤 대북정책도 통일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지 북한 정권을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북한 정권의 사과가 5.24 조치 해제의 전제조건이라고 하면, 이명박정권의 대북 정책은 통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북한 정권을 위한 정책이었다는 논리가 된다. 어떻게 하면 북한 주민이 자유로운 세계에 눈을 뜨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경제적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오직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5.24 조치를 뛰어넘는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한다.

독일 통일에는 전승 4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승인이 선결조건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통일에 그러한 조건은 없다. 그렇지만 주변 나라들의 이해와 협력은 필수적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긴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나 미래에 있어서 한반도 통일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대통령은 통일외교를 통해 긍정적인 정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통일에 대하여 긍정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했으며, 미국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통일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우리의 통일 노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을 얻기 위한 외교적 노력은 배가되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일본·미국 사이의 갈등이 커지기 전에, 독일이 전승 4개국의 축복을 받으며 통일을 이룬 것처럼 우리도 국제사회의 축복 가운데 통일을 이뤄야 할 것이다.

통일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상상이 아니라 실천이며, 이론이 아니라 전략이다. 통일은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문제이다. 통일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지향한다. 통일의 추구에는 여야가 없다. 하나가 되어 힘을 모을 때 분단을 허물고 통일의 틀을 주조하는 에너지가 분출된다. 통일의 문이 열리면 남과 북의 모든 국민이 한순간 동질성을 회복하고 미래를 향해 손을 잡는다. 통일은 빠를수록 좋다. 박근혜정부 임기 안에 통일의 문이 열린다면 더 좋을 것이다. 불가능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 민족이 20세기에 감당했던 시련과 성취는 통일을 통해 위대한 21세기를 열기 위한 섭리라고 믿는다. 이제 주저하지 말고 통일의 문을 열어야 한다.

■ 이인제 의원(66, 충남 논산·계룡·금산) 프로필

경복고, 서울대 법대- 판사- 노동부 장관- 경기도지사- 15·17대 대선에 후보로 출마- 선진통일당 대표- 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 다보스포럼 특사- 13·14·16·17·18·19대 국회의원(현재 6선), 새누리당 최고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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