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 애써 쌓은 미국 민주주의와 중동 평화 깨질까봐 '전전긍긍'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실세 왕자와 회담을 현지시간 21일 개최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첫 순방국은 사우디아라비아다. 취임 후 첫 순방은 정권의 대외 정책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기 때문에 언론들이 비중있게 다룬다. 그런데 미국 언론들은 왜 취임 초기 허니문기간임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비판적인 논조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을까?

22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수사하던 FBI 국장 제임스 코미 해임 사태를 마무리하지 않고 출국한 이유가 가장 크다. 트럼프는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코미 국장이 해임된 이유도 트럼프의 러시아 내통 가능성을 수사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대통령이 코미 전 FBI국장을 '미치광이(a nut job)'로 묘사하며 코미를 해임해 러시아 커넥션 수사에서 자유롭게 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사법방해 의도가 담긴 트럼프의 발언이 담긴 문서를 미국 당국자에게 제보받았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한발 더 나아가 “이들 트럼프의 발언이 코미를 해임한 의도를 잘 드러내 준다”고 비판하며 “트럼프의 사법방해 혐의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가 될 수 있다”고 21일 보도하면서 트럼프 공격에 가세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비판 세력은 비단 언론뿐만은 아니다.

21일엔 코미 전 국장의 아버지 브라이언 코미가 아들을 해고한 트럼프 대통령이 미쳤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공화당 소속으로 지방의원을 지냈던 브라이언 코미는 언론 기고 칼럼에서 “트럼프를 좋아한 적이 한번도 없고 그가 미쳤다고 확신한다”고 썼다. 그는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미쳤고 지금도 정말로 미쳤다고 생각한다”며 “그가 보호시설에 산다고 생각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미국 언론들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한한 트럼프를 맹비난하는 또다른 이유는 그가 중동지역의 안보를 흔들만큼 무기를 팔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1100억달러(123조5300억원)에 달하는 무기를 판매했다. 록히드 마틴은 150기의 블랙호크 헬기를 팔여 60억달러(6조7300억원), GE는 군사 프로젝트를 사우디아라비아와 공동수행하며 150억달러(16조8400억원)을 챙겼다.

비판가들은 이러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간 무기 교역이 화약고 중동에 일촉즉발의 위기를 불러올 잘못된 거래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코넷티컷주)은 “트럼프의 이번 거래가 중동이라는 화약고에 도화선을 붙이는 일이며 군사 분쟁이라는 헤어나오기 어려운 함정을 깊이 파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입장에선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기를 팔며 1100억달러를 챙긴 일이 하나의 트로피가 될 수 있다. 그가 과거 대선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안보를 대가로 돈을 내라고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는 트위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나라가 향후 10년간 원유를 공짜로 주지 않으면 그네들 국적기 보잉747기를 보호하지 않겠다. 돈을 내라(pay up!)고 쓴 바 있다.

미국 언론들이 트럼프를 비판하는 마지막 이유는 오바마가 공들여 시장개방하고 협상장으로 이끈 이란을 다시 검박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대척관계로 몰아가려는 의도를 트럼프가 다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에게 무기만 산 것이 아니다. 방문한 트럼프를 ‘국왕’ 대우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최고 훈장인 압둘라지즈 알 사우디 메달도 수여했다.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메달을 받았지만 의미가 다르다. 트럼프는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트럼프의 방문을 보도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historic)’이라는 수식을 반복적으로 쓰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레드 카펫과 호화로운 음식들, ‘아르다‘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전통춤을 추는 무희들, 하늘에 휘날리는 성조기는 기본이다. 트럼프가 묶는 호텔 외벽엔 레이져 빔으로 트럼프의 얼굴이 새겨져 빛을 발한다.

뉴욕타임즈는 이러한 일들이 사우디아라비아가 트럼프에게 베푸는 ‘향응’이라고 봤다. 21일 뉴욕타임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극진한 대접이 트럼프 대통령과 그를 수행한 이들을 흥에 겹게 만들어 몸을 흔들게 했다(swayed back and forth)”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환대에 정신이 혼미한 것처럼 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에게 메달을 수여받으며 한쪽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이는 포즈를 취했기에 나온 반응이기도 하다.

만약 메달을 받는 이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보다 낮은 직급일 경우 상관없지만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대등한 관계이므로 문제가 됐다. 이 보도사진을 접한 미국의 한 보수 논객은 “토할 것 같다”고 일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공짜 없는 접대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 일행에 향응을 베풀고 무기를 구입하며 환심을 사는 대신 중동의 질서를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여기엔 핵무기를 가진 이란이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고 혁명정부가 들어선 이란은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적이자 분쟁국이 돼왔다. 이란처럼 왕정이 무너지는 일을 두려워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과 각을 세웠다. 이란이 핵무장을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개방의 길로 인도하면서 중동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세일가스를 독자 개발하며 석유 의존도를 줄여나가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과 관계 개선을 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는 반발했다. 석유 가격이 손익분기점 이하까지 떨어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석유를 증산해 오바마의 정책에 각을 세웠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트럼프의 방문을 ‘역사적으로 중요한‘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트럼프는 전임 정부인 오바마 행정부의 공적들을 부정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를 과도하게 생산해 재정이 어려워지고 내상을 크게 입는 등 고통에 시달려 왔다.

미국 언론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기를 팔고 이란을 다시 중동 평화협상에서 배제하려는 트럼프에 대해 탐탁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우려를 트럼프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간 대화를 인용해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뉴욕타임스는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이 스마트폰으로 트럼프와 통화하는 내용을 보도의 말미에 썼다. 뉴욕타임스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시리아는 사우디아라비아도 많은 것을 배울 정도로 선진국 중 하나였지만 불운하게도 스스로 붕괴했다”며 “트럼프 당신이 단 몇초만에 한 나라를 초토화시킬 수도 있지만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말에는 트럼프의 최근 행보가 많은 미국인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그간 쌓아온 미국 민주주의를 붕괴시킬수도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뉴욕타임스의 경고 메시지에 잘 담겨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으로부터 사우디 최고 훈격의 메달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메달을 목에 걸때 한쪽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이는 등의 포즈를 취해 미국 언론의 입방아에 올랐다. 사진=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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