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는 우리 윗세대들의 오마주, 20년간 전국구멍가게 발품 250여점 이상 그려내

이미경 작가는 “예전 우리 어머니들이 이불속에 넣어둔 공깃밥처럼 앞으로도 정겹고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남해의봄날>
[데일리한국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몇 해 전, 봄의 문턱에서 처음 찾은 통영은 벚꽃이 만개해 있었죠. 그곳 봉수골 벚꽃 길은 특별했습니다. ‘봉평상회’는 전혁림 미술관에서 해저터널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그 끝 길에서 만났어요. 주인아주머니가 동네에서 명필로 유명한 분에게 손 글씨를 부탁해서 쓴 간판은 유달리 눈에 띄고 정겨웠지요.”

따뜻하고 감동적인 그림과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 지난해 2월 초판 발행이후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며 꾸준하게 독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전국의 구멍가게들을 찾아 작업하는 책의 저자 이미경 작가와 인터뷰를 했다.

저자가 20년 동안 그려낸 구멍가게 작품 중 80여 점을 엄선하여 수록한 표지. 208쪽, 양장제본, 1만7,000원, 남해의봄날 刊. △표지작품=봄날 가게, 100×100㎝, 2015
“둘째 아이를 갖고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으로 이사해 산책을 다니다 관음리 구멍가게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1997년이었는데 그 후 봄, 여름, 가을, 겨울, 전국의 구석구석 작고 낡은 구멍가게를 찾아 펜화로 옮기고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구멍가게를 처음 그리기시작 한 후 10여년은 계절감이 드러나는 꽃이나 나무보다 오로지 구멍가게 모습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다 점점 문 닫는 가게를 목격하면서 그곳의 예전모습이 어땠을지 남기는 것도 의미가 클 것 같아 나무와 산 등 인근 풍경도 담기 시작했다.

20년이라는 세월의 변화를 체감할 텐데 구멍가게에 대한 소회를 물어 보았다. “그 사이 문 닫은 곳도 많고 점차 가게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유년의 기억이 이제는 전설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구억리 가게, 110×70㎝, 종이에 아크릴 잉크와 펜, 2012
이 작가는 그동안 250여점 이상 구멍가게 작품을 그렸다. 그에겐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며 일해 온 지난날 우리 윗세대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구멍가게는 그분들에 대한 오마주(Hommage)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시간의 흔적이 있고 숱한 삶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한 시간만큼 마모되어 둥글어진 모서리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아름다움과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지요. 우리주위에 늘 함께해서 낯익은 오래된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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