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닛산車 무자격검사, 고베제강·미쓰비시전선 품질조작
日제조업 신뢰 위기…일부선 "잘못 바로잡는 검증체제" 긍정평가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자동차 사장이 8일 요코하마 글로벌본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무자격검사 문제에 대해 고개 숙여 사죄하고 있다.
작년 미쓰비시자동차 연비조작이 터졌던 일본에서 올해만 닛산자동차 무자격검사, 고베제강소와 미쓰비시전선의 품질조작·은폐가 잇따라 발각되며 일본 대표급 제조업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내리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소재산업 품질에 대한 관리체제 미비 문제가 재삼 부각됐다"는 반성론은 물론 제품 하나를 만들어도 혼신의 힘을 쏟는다는 이른바 '모노즈쿠리'(もの造り)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수십년 전 문제도 자체검증하는 체제가 강하다"는 긍정론도 있다.

24일 아사히·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 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미쓰비시그룹 산하 미쓰비시머티리얼이 미쓰비시전선공업과 미쓰비시신도(伸銅), 미쓰비시알루미늄 등 자회사 3곳의 검사기록을 자체감사한 결과 고객이 요구한 품질이나 사내 기준에 미달한 제품들이 출하됐다.

미쓰비시전선은 단면이 원형이어서 'O링'으로 불리는 패킹재를 229개사에, 미쓰비시신도는 구리제품을 29개사에 각각 납품했다. 품질 데이터가 조작된 제품을 모두 258개사가 사용한 셈이다. 미쓰비시전선의 기준 미달 제품은 자위대의 항공기나 함정 등에도 납품됐다.

미쓰비시알루미늄도 기준미달 제품을 출하했지만, 모든 고객으로부터 안전문제가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이유로 고객 수 등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미쓰비시머티리얼은 "(자회사들에 대한) 관리체제를 강화, 재발을 방지하겠다"며 사죄문을 냈지만, "현 시점에서는 법령위반이나 안전성을 의심할 사안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거래기업과 여론을 진정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파문은 확산하는 분위기다.

일본 언론은 앞선 고베제강의 품질조작을 함께 거론하며 미쓰비시전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손부족에 직면한 일본 소재산업 제조현장의 품질관리체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거론했다.

아울러 품질이나 규격이 계약한 수준에 이르지 못해도 고객만 받아들이면 출하가 가능한 특별채용(도쿠사이·特採)이라는 거래관행도 도마에 올랐다.

자동차업체 등은 첫 거래하는 소재업체 부품은 검사하지만, 그 이후에는 "소재업체를 신뢰해 서면 등으로 체크하는 것이 태반"이라고 대형 자동차업체 관계자가 언론에 소개하기도 했다.

부정이 적발된 미쓰비시머티리얼의 세 자회사는 도쿠사이 관행을 악용했다고 한다. "고객의 클레임이 없으면 문제가 안 된다"고 해 규격에 못 미친 부정품을 정규품으로 출하했다는 것이다.

은폐 시도 의심도 제기됐다. 미쓰비시전기는 2016년 12월 모회사 미쓰비시머티리얼이 실시한 품질감사를 계기로 올 2월 품질조작을 자체 적발했다. 하지만 미쓰비시머티리얼에 보고한 시점은 10월이고 일반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지난 23일이다.

업계에서는 "10월에 고베제강 품질조작 문제가 발각됐기 때문에 공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소재산업계에서는 고베제강 품질조작이 발각되자 자체조사를 진행 중이다. 따라서 오랜 거래관행으로 오염된 일본 소재산업체 가운데 새로운 부정이 불거질 수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봤다.

복합경영을 내세워 다양한 품목을 취급해 벌어지는 '부문 사이 장벽' 문제도 지적됐다. 미쓰비시머티리얼은 1990년 금속제련을 하는 미쓰비시금속과 미쓰비시시멘트가 합병해 설립했다. 금속, 시멘트, 가공사업, 전자재료 등 4개 컴퍼니로 구성돼 현장 실정을 경영진이 자세히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다.

니혼게이자이는 "높은 품질이 일본 소재산업의 강점이지만, 고베제강 등의 명문기업에서 연이어 품질조작이 발각됐다"며 "자동차나 항공기 업체 등도 품질관리체제를 손볼 시기"라고 덧붙였다.

소재산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작년 4월 미쓰비시자동차 연비조작이 터진 데 이어 일본에서는 창업한 지 142년 된 명문기업 도시바마저 연이은 회계조작으로 그룹이 해체 위기까지 몰려 있다.

세계적인 에어백 업체 다카타는 리콜 대처 실패로 6월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닛산자동차도 38년 전부터 무자격 검사원이 자동차 안전과 직결되는 완성검사를 해오다 지난 9월에 들통 났다. 중견 자동차 업체 스바루도 무자격 검사가 10월에 불거졌다.

복합기 등을 생산하는 후지제록스도 매출지상주의가 원인이 되어 2015년에 회계조작을 파악하고도 은폐해오다 올해 적발되었다. 국책금융기관인 상공조합중앙금고도 실적달성을 위해 전체 직원의 20%(813명)가 서류조작으로 대출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같은 조작-부정-은폐 사태가 이어지자 게이단렌이나 경제동우회 등 일본재계에서조차 "일본기업에 대한 글로벌 신뢰를 흔들 수 있는 위기"라며 재발 방지를 위한 체제 정비에 들어갔다.

일본경제의 한계를 노출했다는 지적도 있다. 1868년 메이지유신 뒤 "내부가 똘똘 뭉쳐 근대화에 서둘러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미국기업 등과 무리한 경쟁을 하다 조작사태가 터졌다"는 지적이다.

즉 평생직장이던 20세기까지는 통했던 수작업 중시의 모노즈쿠리는 중소·중견기업까지는 맞았지만, 혁신적 창의성이 요구되는 정보통신기술(ICT)시대인 21세기 대기업에는 적절성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조작과 부정이 계속 이어지면서 해외에서는 "일본기업인들이 문제가 있으면 허리를 90도로 굽혀 사죄한다고 하지만, 그때 뿐으로 시간이 지나버리면 아무 일 없었던 일처럼 되돌아간다"고 평한다.

하지만 "일본기업은 여전히 강하다"는 반론도 있다. 오랜 성장경제의 후유증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수십년 된 문제의 기록을 들춰내 자체수정하는 저력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윤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일본은 정보기술(IT)에서 약점도 보이고, 조작문제도 있지만 산업의 기초인 아날로그가 매우 튼튼하다. 매도해버리면 안 된다. 상대적으로는 강한 나라"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고베제강 조작사태 자체 검증과정에서 50년 전의 검사자료까지 뒤져내 문제의 뿌리를 찾아냈고, 외부가 아닌 자체 힘으로 수정해가기도 해 '기록의 나라 일본의 저력'이 강조되기도 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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