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2개 조직 29명 검거…16명 구속·13명 불구속 입건

[데일리한국 이동헌 기자] 땅굴을 파고 수십억원 어치의 기름을 훔친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수법을 썼다. 송유관 근처에 있는 주유소를 임차해 땅굴을 판 뒤 수십억원 상당의 기름을 소량씩 꾸준히 훔쳐온 것이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특수절도 및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총책 박모(48)씨 등 11명을 구속하고, 이모(49)씨 등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또 압수수색 과정에서 현금 3억원과 1㎏짜리 금괴 11개(5억원 상당)를 압수했다.

박씨 등은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용인, 평택, 경북 김천, 충북 청주 등 전국 7곳에서 송유관을 뚫어 81억원 상당의 기름(450만ℓ)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미리 송유관이 지나는 곳을 파악한 뒤 주변에 있는 주유소를 임차해 보일러실이나 숙직실 지하에 땅굴을 파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주유소는 '바지사장'을 내세워 위장 영업하면서, 아르바이트생조차 송유관 절도 사실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범행해왔다. 주로 밤에 지하에서 땅굴을 팠고, 삽을 짧게 특수 제작하거나 폭발 방지 연결관을 자체 제작해 좁은 땅굴 속에서 작업했다. 이들이 판 땅굴은 깊이 2.5m, 길이만 10∼50m에 달했다.

지난해 1월에는 평택에서 범행하다가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주유소 바지사장 역할을 하던 정모(47)씨가 검찰에 위장 자수해 이른바 '꼬리자르기'를 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한번에 대량으로 기름을 훔칠 경우 대한송유관공사 유압관리 시스템에 적발된다는 사실을 알고, 소량의 기름을 수시로 훔치는 식으로 범행했다.

훔친 기름은 위장 영업 중인 주유소에서 판매하거나, 도매상격인 저유소에 제값을 받고 팔았다. 기름을 싸게 팔면 범행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경찰은 또다른 송유관 절도단 총책 김모(48)씨 등 5명을 구속하고, 또다른 김모(46)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인천, 전남 순천 등 2곳에서 주차장 부지 등을 임차해 땅굴을 파 송유관에서 2억원 상당의 기름(13만ℓ)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주차장 부지에 울타리를 쳐놓고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한 뒤 바닥을 뚫어 송유관에서 기름을 훔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외부인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덤프트럭(20t)을 개조해 화물칸에 탱크로리를 설치, 공사차량인 것처럼 위장한 채 실제로는 기름을 날랐다. 이들 또한 송유관공사의 유압 시스템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송유관을 소규모로 천공해 소량의 기름을 수시로 빼냈다.

이로 인해 송유관공사에서는 한 지역의 경우 기름 절도 사건이 일어난 지도 모르고 있다가 경찰로부터 피해 사실을 전달받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송유관공사의 유압 체크 시스템상 기름 절도가 의심되더라도 반경 2.5∼10㎞ 정도까지만 확인돼 현장을 단속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피의자 상당수는 유사석유 판매 등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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