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인터뷰]

"현행 건축법에는 환풍구 시설 안전기준 전혀 없어"

"안전불감증 해소 위해 시민들 안전의식 바뀌어야"

"공연 주최측과 시설주에게 1차 책임 있다"

김찬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인터뷰= 김광덕 인터넷한국일보 뉴스본부장, 정리= 이민형 데일리한국 기자] 안전 문제 전문가인 김찬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최근 판교 환풍구 덮개 붕괴로 16명이 사망한 참사와 관련, “환풍구 붕괴와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건축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해 환풍구, 옥상난간 등에 대한 안전규제 조항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안전학회 재난안전분과위원장인 김 교수는 19일 데일리한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현행 건축법은 환풍구 시설의 안전기준이 규정돼 있지 않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공연 주최측이 의무적으로 안전관리를 하도록 공연 관련 법령도 정비해야 한다”면서 “안전 불감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이 안전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붕괴 사고의 책임 소재에 대해 “첫째 책임은 공연 주최측에 있고, 그 다음 책임은 시설주에게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이사도 맡고 있다.

사진=데일리한국
현행 건축법에 환풍구, 옥상난간 안전기준 없어…

-환풍구 덮개 붕괴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본래 환풍구는 환기하기 위해 설치한 것인데, 사람이 올라간다는 것을 전제로 설계하지 않는다. 사람이 올라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설 점검을 위해 한 사람씩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정도를 감안한 강도로 설계한다. 지붕 설계를 할 때도 그렇게 한다. 경주 마우나리조트도 그걸 잘못해서 무너졌다. 본래 지붕을 설계할 때는 1m² 당 100Kg의 무게가 가해진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눈이 쌓일 수도 있기 때문에 적설하중을 더해주는 것이다. 환풍구에는 지붕설계 기준도 적용하지 않는다. 그냥 덮어놓는 것이다. 사람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환풍구를 만들기 때문에 접근금지를 표시하거나 울타리나 펜스를 설치하지 않는다. 어차피 건축법에도 그렇게 하라는 규정이 없다. 공연 주최측과 시설주 등이 사람이 환풍구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고, 펜스 등을 설치해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안 해서 문제가 됐다. " "

-국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기업 등이 행사를 개최할 경우 안전관리 매뉴얼에 따라 주변 시설을 점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행사를 개최할 때 지켜야 할 수칙들이 담긴 안전관리매뉴얼은 만들어졌다. 국가나 지자체가 행사를 주최하면 그걸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민간에서 주최할 때는 그걸 따르라는 법이 없다. 공연법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안전관리를 하라는 총론만 있지,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내용이 없다. 그러므로 기획사들이 나름대로 안전관리 방법을 찾아서 그냥 행사를 진행하게 된다. 그들은 주변 시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행사를 주최할 경우에는 시설 쪽과 공연 쪽의 두 가지 안전관리가 공동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공연 기획하는 사람들은 시설 안전관리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시설관리 하는 사람들도 공연 관련 시설 관리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공연 도중에 시설이 허술하게 관리된 부분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게 계속 반복되고 있다."

-야외 공연 안전 매뉴얼에는 환풍구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가. "국가나 지자체가 행사를 주최할 경우에는 안전관리 요원이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한다. 그래서 공연장 주변을 점검해서 위험 요소를 찾는다. 거기에 안전요원을 배치하거나 펜스를 설치해서 어떤 곳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조치를 취한다. 민간업체는 대체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단지 사고가 났을 때 업무상과실 등으로 처벌받게 되다 보니 사전 감독·점검을 굉장히 소홀히 하게 된다. 물론 국가나 지자체의 안전 매뉴얼에 환풍구에 대한 규정이 구체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환풍구뿐 아니라, 난간 없는 옥상 구조물에 대한 규제도 없다. 사실 공연장 주변에 전기 구조물이 있을 경우 사람이 올라가면 사고가 생길 수 있으므로 펜스 설치 등 안전관리 조치가 필요한데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사고난 곳에도 사실상 안전요원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행사계획서에는 안전요원 4명이 지명됐지만 당사자들은 안전요원인지 몰랐다. 안전관리를 하는 사람은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냥 아르바이트생을 쓰면 안전관리가 되겠는가?"

-이번에 공연 주최측이 소방서와 경찰에 행사 안전과 관련해 협조 공문을 보냈는데, 소방서와 경찰이 행정 지도만 하고 시설물 안전과 관련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서가 안이하게 대처한 것 아닌가. "소방서에는 화재와 긴급 구조 상황에 대비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봐야 한다. 소방기관은 행사 안전 관리를 해줄 능력도, 의무도 없다. 경찰에게도 교통질서 유지, 행사장 주변 범죄 단속과 보안 관리 등을 해 달라고 한 것이지 시설물 안전관리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법적으로도 공연 주최측이 시설물 안전 관리 등을 맡도록 돼 있다."

사고의 1차 책임은 공연 주최측과 시설주… 시민 안전의식 바뀌어야

-그러면 이번 사고의 책임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책임은 우선 공연 주최 측에 있다. 공연을 기획하면 위험 요소를 조사하고 안전관리계획을 세워서 시행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연 주최 측의 직접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책임은 시설주에게 있다. 사람들이 위험한 시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환풍구 붕괴 사고 등과 같은 안전 사고들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건축법이 근본적으로 개정돼야 한다.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설주가 스스로 안전조치를 취하도록 개정해야 한다. 환풍구 문제만이 아니다. 계단, 옥상난간이 다 포함된다. 건축 시설이 위험한 게 많다. 건축 자체가 위험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에 안전규제가 더 강화돼야 한다.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는 건축주들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공연을 하게 되면 주최측이 사전에 안전관리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엄격하게 벌을 받을 수 있도록 공연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된다. 또 안전문화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 일반 시민들의 안전의식이 바뀌도록 해야 한다. 그냥 안전 캠페인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안전 매뉴얼을 교육하고 그것을 반드시 지키도록 해야 한다. 안전관리 소홀과 안전의식 부재는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안전 불감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안전의식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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