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13일 오후 간암으로 별세

류샤오보(劉曉波·61)가 13일 오후 5시35분 간암으로 별세했다. 그는 동지이자 아내인 류샤(劉霞·55)에게 "잘 살아야 하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사진은 7월6일 트위터에 올라온 류샤오보-류샤 부부의 모습. 사진=둬웨이 캡처/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박진우 기자] 중국 인권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61)가 13일 오후 5시35분 간암으로 별세했다. 그는 동지이자 아내인 류샤(劉霞·55)에게 "잘 살아야 하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4일 "류사오보의 임종은 부인 류샤와 형 류샤오광(劉曉光), 동생 류샤오쉬안(劉曉喧)이 지켰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류샤오보는 중국 반체제 인사로서 상상할 수 없는 탄압과 투옥, 엄혹한 감시 속에서 살면서도 외국으로의 도피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간암 말기로서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사후 아내의 장래를 걱정해 "죽어도 서방(유럽이나 미국)에서 죽겠다"며 강력한 출국 희망의사를 밝혔으나 결국 무산됐다.

1955년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태어난 류샤오보는 지린대학 중문과 재학 시절부터 문학 서클에서 활동했던 문학 청년이었다.

1989년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운동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당시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 버나드 칼리지(Barnard College)에 방문 연구원으로 유학 중이던 류샤오보는 톈안먼에서 소요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 즉각 귀국, '6.2단식투쟁'에 참여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1989년 6월5일 체포를 시작으로 1991년 1월 '반혁명 선전선동죄', 1995년 톈안먼 6주기 청원운동, 1996년 '10.10선언' 등 망명을 거부한채 중국에 남아 고난의 길을 걸었다.

이후 2008년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을 요구한 '08헌장'을 준비하던 중 공안당국에 발각, '국가 전복' 혐의로 11년 형을 선고받고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 교도소에 수감됐다. 2010년 중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지난 5월 말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8년6개월만에 가석방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류샤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 류샤오보와 옥중결혼 했다. 류샤오보는 '08헌장' 사건으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는 법정의 최후진술에서 "지난 20년동안 가장 큰 행운은 아내 류샤의 희생적 사랑을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AP/연합뉴스
사진작가인 류샤는 1980년대부터 베이징 문화계에서 류샤오보와 교류했다. 그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 이후 류샤오보와 옥중결혼 했다. 이후 남편의 인권운동을 함께 했다.

류샤는 남편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2010년 10월부터 당국의 엄중한 감시를 받은 데 이어 2011년부터 가택연금 됐다. 현재 세계 인권단체와 인권운동가들은 류샤의 가택연금을 해제하고 해외 망명을 인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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