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서초구 "소통 통해 골칫덩이 옷 수거함을 조직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돼"

서울시 "시민들의 편의 위해 옷 수거함 성공사례 발굴중…지금은 일종의 과도기"

서대문구, 강북구, 동작구 등 동네 구석구석에서 만나게 되는 헌 옷 수거함. 사진=주현태 기자 gun1313@hankooki.com
[데일리한국 주현태 기자]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초록색 상자 모양을 한 옷 수거함이 눈에 띄곤 한다.

옷 수거함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직접 물어보니 역시 예상했던대로 '틀린' 답변이 되돌아왔다. 시민들은 옷수거함을 지자체에서 관리·감독해 어려운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착한 상자’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옷 수거함은 개인 또는 장애인, 고엽제 협의체가 관리하므로 지자체와는 거리가 멀다.

개인사업자가 영리적인 목적을 위해 설치한 사유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수익금 역시 개인 또는 협의체가 가져가게 되므로 아무리 우호적인 시각으로 본다고 해도 '착한 상자'는 아닌 셈이다.

즉 이 '옷 수거함'에 옷이나 이불 등을 넣는 그 순간부터 그 물건은 개인 사유물이 되고 만다. 새옷을 넣지는 않을테니 주로 입던 옷들이 수거함에 담기게 될 것이다.

이 헌 옷들은 장래는 사실 뻔하다. 해외로 수출되거나 고물상들에게 판매되는 수순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수거함에 옷을 넣는 수많은 선량한 시민들의 선한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무분별하게 설치된 헌 옷 수거함으로 인해 시민들의 민원이 발생하고,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옷 수거함이 자칫 '커다란 쓰레기 상자'로 전락하면서 도시미관 곳곳의 환경을 해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

무분별하게 설치된 옷 수거함은 이를 관리·감독하는 법적 규정이 없어 이 순간에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많은 서울시민들이 난립하는 옷 수거함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는 얘기다.

서대문구 홍제1동에 소재한 헌 옷 수거함의 안과 주변에 쓰레기가 버려진 모습. 사진=주현태 기자 gun1313@hankooki.com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신대섭씨(31·가명)는 “녹슨 수거함 인근에는 담배꽁초와 같은 쓰레기들이 항상 버려져 있다”며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피는 장소로 전락한 것은 물론, 특히 술 마신 사람들의 단골 노상방뇨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강북구 주민 이재현씨(29·가명) “옷 수거함 자체가 너무 싫다"면서 "집 앞에 있는 옷 수거함 근처는 매일 담배꽁초가 쌓이는데, 환경미화원 어르신들이 오전에 치우고 난 후, 그 다음에 쓰레기를 치우는 건 우리 가족”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기자는 서울시내 7곳의 지자체를 상대로 헌 옷 수거함에 대한 감독·관리에 대해 취재해봤다. 놀랍게도 몇몇 지자체는 관리 의지가 있으면서도 시행하지 못하거나, 아예 개선 의지를 포기한 채 그저 바라만 볼뿐이라는 수수방관 태도를 보였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도로 점령을 한 불법 옷 수거함이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옷 수거함을 관리하는 협의체들의 반발이 너무 커 개입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고개를 떨구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노력해봤지만, 옷수거함과 관련된 사람들이 구청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려 손을 못쓰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럴 정도로 사태가 악화한 이유는 국가나 서울시가 관련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상당수 지자체가 고질적 민원인 옷 수거함 문제에 대해 개선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그저 고민만 할뿐 협의체들끼리 양보하며 알아서 해주길 막연히 바라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용산구와 서초구는 옷수거함 협의체들을 통합시키면서 수거함 디자인도 통일시키는 등 남다른 노력을 펼쳐 주목된다.

용산구의 경우 협의체들과의 오래고 질긴 소통을 통해 1,000개의 불법 옷 수거함을 250여개로 줄이고 통합시키는 데 성공했다.

용산구 가로수관리팀 관계자는 25일 “많은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연락을 해오지만, 딱히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협의체 4곳 대표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끝없는 소통과 설득을 통해 골칫거리였던 옷 수거함을 70% 이상 줄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기존 의류수거함(왼쪽)과 서초구가 정비한 ‘옷체통’. 사진=서초구 제공
용산구 못지 않게 서초구도 옷 수거함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케이스로 꼽힌다.

서초구청 백종현 주무관은 “우후죽순 처럼 사설(私設) 헌 옷 수거함이 설치되면서 엄청나게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골목마다 수거함 주변 쓰레기와 안전 민원 등이 빗발치면서 협의체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강제철거를 통보하거나 안내문을 전달하고 설득하는데 주력해왔다"고 털어놨다.

백 주무관은 이어 “가지각색인 헌 옷 수거함을 강제철거한 이후 서총구청 나름대로 디자인을 짜고 다시 재설치하고 디자인 된 수거함에는 ‘옷체통’이란 상큼한 이름을 지어줬다”고 강조했다.

백 주무관은 “웃체통은 서초구 전체에 300개가 설치돼 있다"면서 " 협의체들로부터 순찰-청소-관리 등을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위탁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구청이 우체통을 벤치마킹하겠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비결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다른 용산구와 서초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들도 옷 수거함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에 거주하고 있는 장준영씨(30·가명)는 “헌 옷의 처리방법이 쉽다는 점과 이게 어떻게든 재활용돼 좋게 쓰이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이번에 옷 수거함이 개인 소유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어 "옷 수거함이 제대로 제 기능을 다하려면 개인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지자체가 많은 관심을 갖고 헌 옷 사용의 범위를 정하고, 관리를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정부나 서울시가 옷 수거함을 관리하는 개인 및 협의체의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지자체들과 협력·공존해 합법적인 옷 수거함 관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시민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시민들은 서울시가 옷 수거함에 대한 고질적인 민원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으로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서울시 자원순환과 임한묵 주무관은 "현재 많은 민간 협의체들이 옷 수거함을 놓고 경쟁을 펼치고 있다"면서 "협의체는 자치구 협약에 따라 수거함의 색과 크기, 관리, 청결 상태 등도 제각각이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주무관은 “헌 옷 수거함은 누구에게는 재활용이며, 누구에게는 자원이 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하지만 민간 부문에서 환경에 피해를 주는 등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어 일방향으로 처리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임 주무관은 “서울시는 헌 옷 수거함에 대한 주민들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있으며 헌 옷 수거함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여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임 주무관은 “현재는 일종의 과도기로 자치구마다 민간 협의체들과 협약을 통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앞으로는 헌 옷 수거함에 대한 성공사례들을 발굴, 공개하면서 긍정적인 부분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민들의 생활편의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널리 인식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옷 수거함은 단순히 옷이 아니라 이웃을 돕거나 어려운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순수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진심(眞心) 수거함'이 되어야 한다"는 한 시민의 말이 지금도 귓전을 울린다. 시민들의 이같은 깊은 속내를 지자체들이 과연 제대로 담아내고 정책화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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