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할머니, 위안부 만행 첫 증언하면서 인권운동가로 거듭나…활발한 기부 활동도

김복동 할머니가 2018년 10월3일 1355차 정기수요집회에 참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료
[데일리한국 조효민 기자] 일본군의 성노예(위안부) 피해자로서, 여성 인권운동가로서 평생 살아온 할머니 두 분이 28일 한날 세상을 떠났다.

이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 뿐이다.

정의기억연대(대표 윤미향, 이하 정의연)는 이날 오전 7시30분쯤 이모(1925~2019, 94세) 할머니, 밤 10시40분쯤 김복동(1926~2019, 93세) 할머니가 별세했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의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진행된다.

빈소는 김 할머니가 암 치료를 받다가 눈을 감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됐다. 발인은 2월1일.

반면 이 할머니의 장례는 가족의 뜻을 따라 비공개로 진행된다.

김복동 할머니가 2018년 9월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촉구하며 빗속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료
김복동 할머니는 인권을 유린당한 여성에서 인권운동가로 당당하게 거듭난 상징적인 존재다.

김 할머니는 만 14세이던 1940년 일본군에 연행돼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로 끌려다니며 짓밟히고 1947년 귀국했다.

김 할머니는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했다.

김 할머니는 동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역사적인 증언을 했고, 1993년 6월에는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대회에서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다.

김 할머니는 2012년부터 유엔인권이사회,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을 수차례 방문하며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위한 활동' 등의 해외 캠페인을 진행했다.

김 할머니는 2018년 9월 암 투병 중에도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위해 1인 시위를 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활발한 기부 활동도 펼쳤다.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으로 2015년 6월 5000만원을 쾌척했다.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해 2017년에는 여성인권상으로 받은 5000만원을 기부, '김복동 평화상'이 만들어 졌다.

김복동 할머니는 2017년 11월에는 포항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1000만원을 후원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지원도 잊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2017년 재일조선학교 학생 2명에게 '김복동장학금'을 전달하고, 동년 8월에는 사후 남은 모든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약정도 맺었다. 2018년에는 5000만원을 기부하고 올해 1월에는 '바른 의인상'으로 받은 상금 500만원을 쾌척했다.

김 할머니는 2017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고, 지난 1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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