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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에서 계엄군이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학생들의 손을 뒤로 묶고 전남도청으로 연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료
[데일리한국 박진우 기자]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소총 끝에 대검을 장착해 시민들을 위협한 사실이 군 내부 문건으로도 마침내 확인됐다.

무소속 손금주 의원(전남 나주·화순)은 최근 입수한 국방부의 대외비 문건을 근거로 17일 이같이 밝혔다.

손 의원에 따르면 국방부는 '게엄군이 대검으로 여성의 신체를 도려냈다'는 내용의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1988년 5월 직권 조사를 진행했다.

이 대외비 문건은 당시 직권 조사 직후 작성됐다.

국방부는 조사 결과 해당 소문이 '악성 유언비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1980년 5월 18∼20일 공수부대 10개 대대가 차례로 광주에 출동하면서 소총에 대검을 장착한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손 의원은 "5·18 당시 민간인 사망자 자료를 보면, 칼 같이 날카로운 물체에 찔린 '자상'이 최고 11명으로, 이는 계엄군이 시위 진압에 대검을 사용한 것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하루전에는 '전두환이 광주를 다녀간 뒤 발포명령이 내려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는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으로 대공 간첩 업무를 담당한 허장환(70)씨의 증언이라고 연합뉴스가 16일 보도했다.

당시 그는 '전남·북 계엄분소 합동수사단 광주사태 처리수사국 국보위 특명단장'이었다.

그는 1988년 12월6일 서울 여의도 옛 평화민주당사에서 '발포 책임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라는 양심선언을 했다.

이후 허씨는 '보안사 5·11 분석반'의 온갖 회유와 협박 등에 못 이겨 쫓기다시피 강원도 화천에서 30년째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다녀간 뒤 그날 밤 자위력 구사라는 미명 하에 발포명령이 내려졌다는 말을 상관인 S 중령에게 직접 전해 듣고 실탄 무장 지시를 받았고 실제 실탄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위권 구사가 최종 결정됐다는 말과 실탄 지급은 공식적인 발포명령을 의미하며, '우리가 먼저 한 것으로 해서는 안 돼'라는 말도 이어졌다"며 "모든 문제는 (전두환) 사령관이 책임진다는 말도 S 중령에게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광주 시민군을 폭도와 용공으로 몰아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켜 무력 진압을 정당화하려는 조작 시나리오가 있었다고도 증언했다.

그는 대표적인 조작으로 아시아자동차 차량 탈취 사건과 최초 무기고 탈취로 기록된 나주 반남지서 사건, 녹두서점 북한 찬양 유인물 사건, 전남도청 독침 사건, 도청 옥상 북한인공기 펼침 사건 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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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05/17 12:00:56 수정시간 : 2018/05/17 12: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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