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련소 인근 토지정화구역 2.5%만 정화…지역주민들 불안감 호소해

정화구역 완료 구역내 농경지서 중금속 검출…일부 판매 부적합 판정

지역주민, 토양정화사업 관련 정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분통터뜨려

(구)장항제련소 토양정화사업구간에서 제련소 굴뚝이 보이고 있다. 사진=박현영 기자

[서천(충남)=데일리한국 박현영 기자] “내가 애써 키운 농작물에서 중금속이 나올까봐 잠도 안와요”

환경공단이 2015년에 완료한 (구)장항제련소 인근 중금속 오염토지 비매입구역(1차) 토양정화사업이 '보여주기식' 전시성 사업으로 얼렁뚱땅 진행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 주목된다. 특히 토양정화가 완료된 구역의 농작물에서 여전히 중금속이 검출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커다란 파장과 논란이 예상된다.

26일 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충남 서천군 (구)장항제련소 인근 농작물에서는 토양정화사업이 완료된 후에도 중금속이 계속 검출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필지에서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이 인체에 해로워 먹을 수 없다는 식용 ‘부적합‘ 판정까지 나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항제련소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건설돼 1989년까지 50년간 운영돼 왔으며, 충남 서천시 장항읍 일대 농경지에 중금속 토양오염 문제를 야기한 곳으로 지목되고 있다. 장항읍 인근 농경지는 1급 발암물질인 비소와 이타이이타이 병을 유발하는 카드뮴 등 유해한 중금속으로 오염돼 지역사회를 넘어 국가적인 토양오염 문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환경공단은 2009년부터 2023년까지 (구)장항제련소 인근 토양 정화를 위해 4000여억원을 투입, 토양정화사업을 펼치고 있다.

(구)장항제련소 인근 1.5km이내는 국가가 토지를 매입해 토양정화를 하고, 1.5~4km는 매입없이 정화사업만 추진해 2015년 사업을 끝마쳤다. 반경 1.5~4km 지역인 비매입 구역은 대부분 논과 밭이며, 토양정화는 오염 토양을 굴착해 세척 공법으로 정화한 후 되메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비매입구역 사업을 마친 후 환경부는 “중금속 오염 농경지가 생명력 있는 농경지로 탈바꿈했다”며 “국내 최대 규모의 중금속 오염 토양 정화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1차 정화사업이 완료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선바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20일 관련 사업이 실제 어떻게 진행됐는지 현장취재에 나섰다.

(구)장항제련소 토양정화사업 사업구역. 사진=환경공단 제공

토양정화구역 농경지 정말 안전?…주민들 “믿을 수 없고 불안한다”

앞서 환경부와 환경공단은 비매입구역 토양정화와 관련해 “사업비 1583억원, 대기업 4개사, 중소 토양정화업체 11개사 등이 참여한 국내 최대 규모의 중금속 오염토양 정화 사업으로 진행됐다”며 “지역 주민 불안감과 지역 이미지 개선이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장항읍에서 평생을 살아온 주민 S씨(71)는 “(구)장항제련소 비매입구역이 깨끗한 농경지가 됐다고 정부가 발표했다"면서 "하지만, 주민들 입장에선 (사업이) 굉장히 부족하고 미심적인 부분이 많다”고 직접적으로 반박했다.

S씨는 이에 대해 “제련소 굴뚝에서 배출된 연기에 섞인 중금속이 수십년간 논밭에 낙하됐는데, 정부가 토양정화사업을 한다고 드문드문 땅을 파서 작업한 후 ‘모든 농경지가 깨끗해졌다’고 발표하고는 그게 끝이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굴뚝 연기에서 나온 중금속이 일부 논밭만 골라서 떨어질리 없고, 바람에 날려 제련소 인근 땅에 전체적으로 떨어졌을 텐데 극히 일부분만 정화하고 마무리했다면서 정부 소임을 다했다는 식으로 나왔다는 얘기다.

장항제련소가 한창 운영중일 때는 중금속 연기가 서천은 물론 충남 논산까지 날라가서 배추잎과 고추잎이 고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제련소 인근 땅들이 부분적으로 오염됐다는 것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다고 S씨는 주장했다.

실제 (구)장항제련소 토양정화사업 관련 자료에 따르면, 비매입구역 토양정화사업 대상면적은 22만6000㎡로, 비매입부지 전체 면적(916만㎡)의 2.5%에 불과했다. 읍의 대부분이 논과 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농경지는 토양정화가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는 셈이다.

지역주민들은 환경공단 등에 토양정화 사업을 다시 진행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토양정화사업 진행 상황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지만, 신뢰할 수 없고 계속 중금속 오염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다고 주민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와관련 환경공단 측은 “토양정밀조사 지침에 따라 비매입구역 전체 개황조사를 한 후, 조사결과 오염이 우려되는 지역에 대한 재조사를 진행해 사업대상 토지를 선정했다”며 “토양오염기준에 따라 기준치 이상인 지역만 선정하다보니 일부 지역만 정화사업을 한 것일뿐, 임의적으로 토지를 선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지난 20일 (구)장항제련소 인근 토양정화사업 비매입구역 농경지에서 농사를 위해 논을 정비해놓은 모습. 사진=박현영 기자
(구)장항제련소 인근 농산물서 중금속 지속 검출…판매 부적합 판정까지

문제는 이 지역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검사한 결과 중금속이 다수 검출됐다는 점이다. 일부 논밭에선 중금속 오염이 심해 판매 부적합 판정까지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천군은 2008년 (구)장항제련소 인근에서 수확된 농산물에서 카드뮴·납 등 중금속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돼 전량 수매 후 소각 처리한 바 있다. 제련소 인근 지역 토양정화사업이 시작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토양정화사업이 끝난 2015년 이후에도 해당지역 농산물에서 중금속 검출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농산물품질관리원의 농산물 검사는 330㎡(100평)이상 논과 밭에서만 실시할 수 있어, 주민들이 자가소비를 위해 소규모로 재배하는 농작물은 무방비 상태다.

농산물품질관리원 조사관은 “(구)장항제련소 인근 지역은 농산물이 중금속에 오염된 사례가 있어 매년 조사를 하고 있다”며 “인근 농산물에선 중금속이 지속적으로 검출되고 있고, 일부 농산물은 판매 부적합 판정이 나와 주민에게 피해보상을 하고 소각 처리했다”고 말했다.

농산물에서 중금속이 검출되는 것은 농약 과다 검출 등과 같이 농민의 탓이 아닌 국가의 잘못이기에 정부 차원에서 피해보상을 해주고 있다고 이 조사관은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만 주민들이 직접 재배해서 소비하는 농산물까지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이 같은 상황은 환경부 등과 시스템 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중금속에 오염된 땅에서 생산된 작물을 먹고 이미 심각한 건강 피해를 입었고, 계속 악화될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보여준다. 또한 환경부나 환경공단도 비매입구역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의 중금속 오염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추가 정화 조치 등은 취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근의 한 주민은 “1936년 장항제련소가 마을에 들어선 뒤 수십년 동안 마을주민들이 각종 암과 난청, 관절염, 골다공증 등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암 등으로 사망했거나 현재도 투병 중이다. 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라 나이 때문에 아픈 줄 알고도 그저 참고 사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또 “대부분 고령인 농민들은 중금속 오염 사실이나 토양정화사업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며 “설령 오염 사실을 알고 있는 주민이라 해도 정부에서 깨끗해졌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농경지 토지정화 책임을 맡은 환경공단은 농산물 중금속 검출에 대한 별다른 대책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환경공단 측은 비매입구역의 농경지에서 중금속오염 농산물이 나온 것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며, 추후에 대책이나 개선점을 강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이 정보공개를 요청한 자료의 수치 대부분이 검은 색으로 가려져 있다. 사진=박현영 기자

장항읍 주민 “토양정화사업 정보 제대로 알려달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부 주민들은 토양정화 결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기 위해 환경부와 환경공단 등에 중금속 오염 수치 등의 정보공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대부분 임의로 내용을 삭제한 반쪽짜리 문서였다.

장항읍 주민 P씨(69)는 “환경부와 환경공단 등에 인근 농경지 토양정밀 검사 결과를 요청했지만, 받은 자료를 보면 오염 수치들을 대부분 검은색으로 가려놨다”며 “장항읍에서 한평생 살아온 주민들을 대놓고 정부가 기만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문서 내용을 가려놓은 이유를 정부에 물었지만 모호한 말로 답을 기피했다”면서 “사는 곳 옆에서 토양정화사업을 하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관련 사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나도 모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P씨는 “환경공단과 환경부는 토양정화사업을 하면서 마을 이장 등 주민 일부들과 협의를 했다”며 “토양정화사업에 대해 의심을 가진 주민들을 배제하고 입맛에 맛는 주민들만 골라서 사업을 마무리해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토양오염지역 주민을 위해’ 토양정화 사업을 실시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피해지역 주민들은 사업 내용도 모르고, 사업 진행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사업과 관련해 변변한 의견한번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공단 관계자는 “주민들이 정보공개를 요청한 문서를 가렸던 것은 정화사업 대상 부지가 아니고, 해당 부지 주민에 대한 개인정보도 있을 수 있어서”라고 언급하면서 “주민들에게 숨긴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주민들과의 소통은 이번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중 하나”라며 “모든 주민들의 입장을 찾아가서 들을 수는 없기에 대표자 격인 이장에게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달라고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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