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염원 담은 장승 세우기 행사 열어

문재인 정부, 새만금 살리기 새로운 해법 제시 기대감 고조

[데일리한국 송찬영 환경전문기자]전북 부안군 변산면 백련리 일대 바다는 ‘해창 갯벌’로 불린다. 마을 어귀에 ‘바다의 창고’, 즉 ‘해창(海倉)’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갯벌’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졌다. 새만금 간척사업 시작과 함께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잡초들만 무성하다.

지난 15일 이곳 해창갯벌에는 사람소리로 왁자지껄했다. 서울, 전남, 전북, 충남, 경남 등 전국 각지에서 20여명의 시민들이 모인 것이다. 여기에는 갓 돌 지난 아기가 있었고, 초중고생 자녀들과 함께한 시민도 있었다.

“오늘은 다시 새만금을 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기원을 가득 담아 장승을 세우는 거예요. 촛불정신을 계승하는 문재인정부에서는 새만금 개발 강행이 멈추길 바랍니다. 다시 새만금에 바닷물이 유통되고 갯벌이 살아나길 희망합니다.”

이날 아내와 돌 지난 아들과 함께 전남 순천에서 온 조현두씨는 새만금을 살리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장승을 세우며 이같은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는 고교시절이었던 2002년 새만금 갯벌 살리기 자전거홍보단의 일원으로 새만금과 인연을 맺은 뒤 햇수로 16년째 새만금을 찾고 있다. 자발적인 '새만금 지킴이'인 셈이다,

고교시절이었던 2002년 새만금 갯벌 살리기 자전거홍보단의 일원으로 새만금과 인연을 맺은 뒤 햇수로 16년째 새만금을 찾고 있는 조현두 씨 가족.

전국 각지에서 새만금을 아끼는 마음 하나로 먼 길을 달려온 시민들의 모임 이름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다. 조사단의 활동은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매달 조사에 참석하는 회원이 1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새만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해당 지자체의 개발정책 강행이 장기화되면서 조사 참석 회원 수는 대폭 줄어들었다.

그래도 새만금을 찾는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매달 첫 주말 20여명 남짓이 모여 새만금의 생태는 물론, 지역민들의 달라진 문화와 생활상 등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다.

“매달 빠짐없이 나오는 분들도 있지만, 각자 생업이 있기에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지요. 우린 참석 여부나 회비 납부도 강요하지 않아요. 전국에서 각자 자비를 들여 ‘새만금’을 중심으로 매달 모였다가 현장에서 역할을 나눠 조사한 뒤 기록을 합니다. 그리고 헤어지지요. 그래서 조사단이란 실체가 진짜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지요.”

조사단 오동필 물새팀장은 연락과 활동 계획을 담당하는 2개 분야의 팀장 2명만 있을 뿐, 보통의 시민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거창한 조직도, 재원도, 사무실도, 그 흔한 정부 지원도 없다고 했다.

이는 새만금생태조사단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도 있다. 어쩌면, 자발적 시민운동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도 있을 듯 싶다. 시민운동이나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들을 연구하러 그들처럼 매달 새만금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특별한 이해(利害)를 갖고 있지 않음에도 모여 활동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들이 보았던 생명 가득했던 새만금 갯벌의 모습을 자식들이 커서 다시 볼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해창갯벌은 2003년 봄, 새만금 방조제 공사 중지를 촉구하는 4대 종단 삼보일배단이 65일간의 행진을 시작하기 전 마음을 모았던 곳이다. 또 종파를 초월한 성직자들의 삼보일배를 이어받아 서울에서 새만금까지 12일간의 도보순례에 나선 여성 수도자와 성직자들의 마무리 기도회도 이 곳에서 열렸다.

이날 장승이 세워진 해창갯벌에는 시민과 종교 단체들의 치열했던 기원이 담긴 비석과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기도 공간 등 2000년대 초반에 설치된 여러 가지 상징물과 시설들도 남아 있었다.

시민단체들이 새만금 갯벌이 본존되길 간절히 바라며 2000년 세운 표지석.

컨테이너 박스에 그려진 문구와 그림은 10여 년의 시간이 흘러 빛이 바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진 부분도 있지만 “백합아, 다시 만나자” 등의 문구는 여전히 또렷이 남아 눈길을 끌었다.

가족과 함께 참석한 황윤 다큐멘터리 감독은 “새만금 갯벌 지키기 운동의 거점이었던 콘테이너 박스 주위로 나무와 풀이 무성해서 낫으로 걷어냈다”면서 “이곳이 묻히게 하지 않겠다는, 새만금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부친을 따라 장승세우기에 참석한 고교생 오승준 학생은 “아빠처럼 새를 연구하는 생태연구가이자 시민운동가가 되는 것”이라며 자신의 꿈을 밝혔다.

이번 장승세우기 행사에 참여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일원 일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장승 옆으로 다시 새롭게 세워진 ‘새만금 갯벌 여장군’.

개발이 전부였던 시대를 지나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는 요즘, 새만금은 시민조사단이 원하는 것처럼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갯벌과 습지로 되돌아 갈 수 있을까? 이미 1조 7000억 원 이상이 들어간 신고리 원전 건설 중단을 논의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성숙해진 작금의 민주·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새만금에 대한 새로운 해법이 제시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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