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중 숨진 공무원은 국가유공자…비정규직은 보상없어

"평등권 위반한 차별" 인권위·충북도 등 제도개선 촉구

폭우가 쏟아지는 현장에서 일반 공무원과 '중규직'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 비정규직인 기간제 근로자가 함께 작업을 하다 모두 숨졌다.

이럴 경우 공무원은 순직으로 처리돼 국가유공자로 선정됐지만,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근로자 2명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3명 모두 공무를 수행하다 숨졌지만, 중규직과 비정규직은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죽어서도 차별을 받는 것이다.

중규직은 정년이 보장되지만, '공무원연금법' 등의 적용을 받지 않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어정쩡한 무기계약직을 빗댄 말이다.

최근 폭우가 쏟아지던 충북의 수해 현장에서 무기계약직의 서글픈 현실이 확인됐다.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에서 17년째 무기계약직인 도로보수원으로 일하던 박모(50)씨는 시간당 90㎜의 폭우가 쏟아진 지난 16일 오전 6시에 출근해 세찬 비가 계속 퍼붓는 가운데 점심도 거른 채 도로 복구작업을 했다.

그는 녹초가 돼 일하다 오후 8시 20분께 작업 차량 안에서 잠시 숨을 돌리다 그대로 숨졌다.

엄연한 공무원으로, 공무 중 숨졌으니 '순직'으로 처리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중규직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죽음조차도 사회적 차별을 받는 실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일 이성호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내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순직이 경제적 보상 이상의 존엄한 명예를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사망자가 공무원인지 아닌지보다) 공무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었는지 아닌지를 중심으로 순직을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동일한 공무를 수행하다 사망할 때 공무원은 '순직'으로, 공무원이 아닌 사람은 '업무상 재해 중 사망'으로 처리하는 것은 헌법과 평등권을 위반한 차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도 촉구했다.

충북도 역시 숨진 박씨의 국가유공자 지정 등을 인사혁신처, 국가보훈처 등에 요청하며 관련 법률개정을 건의하기로 했다.

국가유공자 지정 대상에 '일상적으로 공무에 종사하는 공무원 외의 직원으로서 국민의 생명, 재산보호와 직접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 중 사망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자'라는 규정을 추가해달라고 요구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이렇게 개정하면 무기계약직도 순직을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로 구성된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도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일하다 숨진 도로보수원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국가 업무를 수행하다 변을 당했는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정부 관련 부처는 현행 법률이 개정되지 않으면 박씨의 순직이나 국가유공자 지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비정규직의 순직이 인정된 것은 세월호 참사 때 학생들을 구하려다 숨진 기간제 교사 2명이 유일하다.

기간제 교사들은 공무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3년 3개월 동안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들에 대한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관련 법률의 순직 대상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포함해 최근 순직으로 인정받았다.

충북도 관계자는 "박씨와 같은 상황에서 공무원이 숨졌다면 당연히 순직을 인정받고, 국가유공자로 지정될 것"이라며 "공무 수행 무기계약직 등에 대한 차별을 없애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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