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기업들 홍보용 달력 주문 뚝

종이 달력대신 PC나 스마트폰 사용도 원인

무한도전 2015년 달력. 사진=동효정 기자
[데일리한국 동효정 기자] 달력과 다이어리를 제작하며 바쁘게 새해를 맞이하던 인쇄골목의 풍경이 아득한 옛 모습이 됐다. 달력 특수를 누려야 할 때이지만 인쇄업체마다 주문량이 30~40%씩 줄었다며 울상이다. 경기 침체 여파로 달력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관공서들은 홍보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달력 주문을 줄이고 있다. 지난해 달력 2,400부를 찍었던 한 관공서는 올해는 200부가 줄어든 2,200부만 주문했다. 하지만 홍보비가 대폭 줄어드는 내년에는 아예 달력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이 관공서 관계자는 "달력의 경우 홍보 효과가 뛰어나지만 관련 예산이 줄어들면서 달력 주문량을 줄였고 내년에는 아예 주문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의 직장'이란 비유를 받던 공기업들도 대체로 지난해보다 10~30% 달력 주문량을 줄인 것으로 파악됐다.

굴지의 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은 대외 홍보용 달력뿐 아니라 직원들에게 나눠 주던 달력도 제작하지 않기로 했다. 이같은 영향은 달력 홍보가 절대적인 주류업체에게도 미쳤다. 하이트진로는 홍보용으로 거래처와 협력 회사에 나눠주는 달력을 올해는 30%가량 줄였다. 또 한 제약회사는 지난해까지 홍보 달력을 제작해 병원과 약국에 배포했지만 올해는 아예 이같은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 대기업 홍보팀 김 모씨는 "기업들이 힘들어지면 가장 먼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예산부터 삭감한다"며 "홍보용으로 찍어내던 기업 달력이나 다이어리 제작 물량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만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연말이면 각종 할인 쿠폰이 찍힌 새해 달력을 나눠주던 프랜차이즈 업계도 사은품을 변경했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요즘엔 달력을 사은품으로 같이 배달한다 해도 소비자 반응은 시큰둥하다"면서 "달력 단가도 낮지 않은 판에 소비자 반응도 좋지 않아 이번 연말에는 아예 달력 주문을 대폭 줄였다"고 말했다.

물량 감소뿐만이 아니다. 개인 사업자들도 전달, 이달, 다음 달 등 3개월이 모두 찍힌 벽걸이형 대형 달력 대신 한 달만 나온 저가 달력이나 탁상용만 주문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는 D모(52)씨는 올해 달력을 주문하지 않을 예정이다. 경기 침체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주변 거래처나 지인에게 나누어주던 벽걸이 달력과 다이어리 구매 비용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D씨는 "연말을 맞아 인쇄소에 달력과 다이어리를 주문할 때면 항상 기쁜 마음으로 주문했는데, 회사 운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올해는 탁상용만 제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달력을 무료로 나눠주는 시중 은행에서는 고객들의 달력 요구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기업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달력이 줄자 시중 은행에서 달력을 받아가는 고객이 급증한 것이다. 수협에서 일하는 L모(25)씨는 "이맘 때면 달력을 두 세개씩 챙겨달라는 고객들이 많은데 올해는 유독 심하다"면서 "PC로 은행 업무를 보시던 분들도 별도로 달력을 부탁한 뒤 지점으로 나와 업무를 보고 달력을 받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새해 달력을 만들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여야 할 인쇄업체들이 줄어드는 달력 주문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한 인쇄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6,000부를 주문했던 업체가 올해의 경우 새해 달력을 4,000부만 주문했다”며 “매년 달력 주문량이 30%정도로 줄어들고 있는데 올 겨울은 감소 폭이 유난히 심했다”고 말했다.

여기엔 경기 침체가 가장 큰 요인이지만 젊은 세대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종이 달력 사용률이 떨어진 것도 한 몫하고 있다. 서울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측은 "예년 같으면 새해를 맞이해 달력, 연하장, 보고서, 결산서 등으로 매우 바쁜 성수기인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금방 날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달력을 찾지 않고 있다"면서 "특수가 사라지다보니 직원들 월급조차 주기가 힘들어 인쇄 골목 사업자들이 프랜차이즈 업종으로 옮겨가고 있는 실정"이라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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