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 “검찰과 수사공조 안 하면 엄중 문책”
검찰도 신뢰회복 고민… 검경공동대변인제 검토

모처럼 검찰과 경찰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수사와 관련해 검경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자 공조 강화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검찰과 수사 협조를 안 하면 엄중 문책할 것을 밝혔고, 검찰은 검경 공동대변인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검경의 이 같은 노력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28일 전국 지방경찰청장과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를 열고 검경 수사 공조 확립을 강조했다. 이 청장은 이 자리에서 “검경 간 수사공조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수사를 진행해 달라"고 당부했다.이어 "부처 간 칸막이 제거는 이번 정부의 역점 방침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앞으로 공적에 눈이 멀어 기관 간 협조가 안 될 때에는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이 청장은 이날 유 전 회장의 변사체를 발견하고도 부실한 초동수사로 인해 확인이 한 달 이상 늦어진 데 대해 "유씨 변사사건에 대한 초동 대처 과정이 국민으로부터 많은 불신을 받게 됐다"며 "이는 조직 전반의 잘못된 관행과 뿌리깊은 악습 때문"이라고 질책했다.

지난 23일 이번 수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재경 인천지검장이 사퇴한 검찰도 수습에 나서는 형국이다. 검찰은 최근 인천지검 수사와 검거 책임자를 교체했고 순천지검에 대한 감찰이 끝나는 대로 검사들에 대한 징계에 착수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경찰과의 공조 엇박자로 인한 여론의 질타가 계속되자 27일 검찰 브리핑에 인천경찰청 폭력계장과 광역수사대장을 배석시켰다. 경찰과의 공조를 강화하는 화해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이어 검경은 현재 수사 내용에 대한 보도의 통일성을 높이기 위해 함께 언론에 대응하는 ‘검경 공동대변인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 변사체 발견 시 초동수사를 강화하기 위해 법의학자가 검시를 맡는 미국식 '전담 검시관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검경의 뒤늦은 집안단속에도 불구하고 국민 불신은 여전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유씨 변사체에 대해 과학적으로 100% 확실하다는 부검 결과를 발표했지만 ‘유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검경이 유씨 시체를 바꿔 치기 했다’ ‘유씨 변사체를 확인하고도 발표 시점을 조절했다’ 등의 음모론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뿐 아니라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도 연일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 의원은 지난 24일 법제사법위 전체회의에서 유씨 변사체의 발견 시점이 세월호 참사보다도 먼저라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공개한 데 이어 27일엔 순천시 서면 주민들의 녹취록을 공개하며 “변사체가 발견된 곳이 주민들의 발길이 잦은 민가와 고추밭 인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가 짖거나 까마귀가 오지 않았으며 사체 부패에 따른 냄새도 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28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박 의원이 제기한 유씨 사망시점과 발견 시점에 대한 의혹은 “합리적이지 않다”면서 “DNA나 지문, 치아 기록, 유씨 손가락 절단 상태 등 모든 면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발표를 신뢰하는 것이 맞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검경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은 유씨 일가 체포 과정에서 드러난 두 집단의 무능과 밥그릇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검찰은 지난 5월 25일 유씨가 순천 별장에 머문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경찰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독자 검거에 나섰다가 헛물을 들이켰고, 경찰은 지난 25일 유대균씨 체포작전을 홀로 펼쳤다. 검경이 서로 협력해도 사건을 해결하기 어려울 판에 검찰은 경찰을 무시하고 경찰은 검찰을 불신해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나도 여전히 유씨 일가 수사에 대한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까닭이다. 이는 고스란히 검경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뒤늦게 검경이 모두 공조 수사 강조를 외치고 있지만 검경간 수사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수반되지 않는 한 국민 신뢰회복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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