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에는 주로 도피 당시 심경,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에 대한 반감 등이 담겼다. 하지만 일부 대목에서는 박 대통령과 측근 보좌진을 겨냥한 문구가 들어 있다. 유 전 회장은 메모에서 “가녀리고 가냘픈 大(대)가 太(태)풍을 남자처럼 일으키지는 않았을 거야.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인 남자들이 저지른 바람일 거야. 과잉 충성스런 보필 방식일 거야”라고 썼다. 여기서 ‘가녀리고 가냘픈’은 여성을 의미하고 ‘大(대)’는 대통령을 뜻하는 것으로 보여 박 대통령을 지칭한 듯 여겨진다. 뒷부분에 ‘태풍을 남자처럼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적은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또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인 남자들이 저지른 바람’ 부분은 박 대통령 측근 중 나이가 있는 보좌진이 풍파를 일으켰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이 경우 70대이면서 박 대통령과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생각할 수 있다. 유 전 회장이 이어 ‘과잉 충성스런 보필방식’이라고 적은 부분까지 포함해 풀이한다면 ‘김 실장이 박 대통령에 대한 과잉 보좌 방식으로 자신을 엮어넣은 것’이란 해석이 가능해진다. 유 전 회장은 이어 “아무리 생각을 좋게 가지려 해도 뭔가 미심쩍은 크고 작은 의문들이 긴 꼬리 작은 꼬리에 여운이…”라고 적었다. 자신이 음모에 빠졌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그러면서 유 전 회장은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과 검경의 추적을 조롱하는 듯한 글도 남겼다. 그는 “눈 감고 팔 벌려 요리조리 찾는다. 나 여기 선 줄 모르고 요리조리 찾는다. 기나긴 여름 향한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고 썼다. 그는 이어 “연일 터져대는 방송들은 마녀사냥의 도를 넘었다”며 “하도 많은 거짓말들을 위시해서 미쳐 날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설쳐대는 거짓소리들을 내고…”라고 써 언론에 대한 강한 불만도 드러냈다.
이 메모는 지난 5월 말 유 전 회장이 순천 별장을 빠져나갈 당시 검찰에 붙잡힌 개인 비서 신모(34·여)씨가 보관하던 것이다. 메모는 거울을 봐야 제대로 읽을 수 있게 거꾸로 쓰여 있다. 유 전 회장은 1991년 상습사기 혐의로 4년을 복역한 뒤 거꾸로 글을 써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이 메모가 유 전 회장이 직접 작성한 것이 맞다면 당시의 심경을 담은 글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 메모를 측근이 갖고 있었고, 자신의 심경을 굳이 글로 남겨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 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메모가 유출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신에 대한 수사를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작성한 것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