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준수’ 요구하는 관계자에 ‘적반하장’ 호통…국민을 무시하는 행태

정치경제부 김동용 기자
[데일리한국 김동용 기자] 고위 공직자는 '보통'의 공직자나 국민보다 준법의식이 더 높아야 한다. 품위유지도 기본이다. 특히 법을 만드는게 주요 업무인 국회의원이라면, 더 법이나 규정을 잘 지켜 다른사람의 모범이 돼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은 국회 본관 1층 기자회견장인 정론관의 기본적인 규정조차 무시하고 있다.

정론관에는 78석의 자율석이 마련돼있다. 국회 기자실 내 400여 지정석을 부여받지 못한 언론사의 출입 기자들이 정론관에 자리를 잡고 취재 활동을 한다.

국회 홍보기획관실에 따르면 정론관에서 시민단체 등이 기자회견을 신청하려면 국회의원, 정당 대표·대변인 등 ‘사용권자’가 함께 배석해야 한다. 또한 질서 있는 운영을 위해 사용권자를 제외한 외부인 배석자 수는 9인 이내, 보충 발언자의 수는 3인 이내, 총 발언 시간은 15분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

기자들의 원활한 취재 활동을 위해 구호를 외치는 행위·시위·농성 등은 금지된다. 이 같은 규정은 모두 ‘기자회견장 사용신청서’에 명시된 내용이다.

국회의원들이 가장 빈번하게 어기는 규정은 ‘구호 금지’다. 국회 홍보기획관실은 ‘기자회견 사용신청서’에 명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론관 출입구 오른쪽 벽에도 ‘기자회견장 안에서는 구호가 금지돼 있다’는 안내문을 부착했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은 거리낌 없이 외부인 배석자들과 구호를 외친다.

정론관 출입구 우측 벽에 부착된 ‘기자회견장 안에서는 구호가 금지돼 있다’는 안내문.
지난 8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소속당의 지역구 출마자들과 함께 '서울지역 출마자 기자회견'을 갖고 정론관 내에서 구호를 외쳤다. 심 대표는 회견 도중 "구호 한번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당연하다는 듯이 호응을 유도하는 여유로운 모습도 보였다. 심 대표와 배석자들이 외친 구호는 '지금 당장 판을 갈자', '내 손으로 국회 교체'였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11일 정론관에서 ‘롯데그룹 보유 지역 토지가격 변화 분석 결과 발표’ 관련 공동기자회견을 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회견 배석자들에게 구호 제창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정론관 관계자가 구호 제창을 제지하려 하자, “그런 규정이 어디에 나와 있느냐. 누가 정했느냐. 의원이 외친다는데”라며 적반하장 식의 태도를 보였다. 국회의원의 '특권'에 익숙해있는 듯한 말투였다.

정 대표는 “국회가 누구 것이냐. 국민의 것 아니냐. 국민의 대표가 답답해서 외친다는데 (구호 제창을 막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언성을 높이기까지 했다.

정 대표는 난감한 표정으로 계속 만류하는 정론관 관계자에게 “어디 소속이냐”고 물은 뒤, 배석자들과 함께 ‘재벌의 부동산 토지 보유 정보를 국민 앞에 공개하라’는 구호를 세 번 외치고 정론관을 떠났다. 심 대표와 정 대표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도 한 거물 정치인들이다.

20대 국회의원들의 갑질과 특권 의식이 논란이 된 것은 물론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래서 새로울 것도 없다.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금연구역인 카페 내에서 흡연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같은 당의 장제원 의원은 지난해 4월 30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 과정에서 국회 방호과 직원에게 반말해 입길에 올랐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8년 12월 20일 김포공항에서 공항 직원에게 폭언한 것으로 전해져 업무방해 등 혐의로 시민단체에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법과 규정은 국민들 모두 지켜야 할 약속이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힘 있는 국회의원들은 법규를 지키지 않고, 힘없는 국민들만 지켜야 된다면, 그런 나라에 희망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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