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유재심 박사 인터뷰

”다음 세대가 DMZ 미래 결정하도록 개발 유보해야“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의 유재심 박사. 그는 현재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있다. 사진=김봉진 기자 view@hankooki.com
[데일리한국 박창민 인턴기자]"겨우 한반도 면적의 1%도 되지 않는 비무장지대(DMZ) 개발을 유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의 유재심 박사는 "DMZ를 미래세대를 위해 '개발 유보지'로 지정하자"고 제안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 평화'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DMZ 개발계획'도 연이어 나오고 있다.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공약에도 'DMZ를 활용한 지역개발'이 담길 정도다.

그러나 유재심 박사는 "DMZ 개발을 유보하자"고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밝혔다.

그는 "개발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평화시대를 살아갈 다음 세대가 DMZ를 개발할지, 보존할지 결정할 수 있도록 그때까지 개발을 유보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박사는 "지금 정책과 개발을 주도하는 세대는 평화체제가 된다고 하니까 토건개발을 먼저 떠올리고 마치 우리 세대에서 개발을 끝장낼 것처럼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작 한반도 평화체제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갈 미래 세대가 어떤 방식의 개발을 꿈꾸는지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 생태계 연구자이기 이전에 분단세대를 살아온 한 사람이 던지는 자성(自省)의 목소리였다.

개발, 그리고 보존. 분단세대는 'DMZ=미개발 된 노다지 부동산'이라는 잠재의식 속에서 'DMZ 개발 계획'을 만들어냈다. 이 계획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적용될 수 있을까?

데일리한국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유재심 박사를 만났다. 이번 인터뷰는 '6·12 북미정상회담'을 1주일 앞둔 5일 세종문화회관 옆 야외카페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유 박사와의 일문일답.

o 유재심 박사가 DMZ 생태계 조사를 위해 강원도 고성 향로봉을 찾았을 당시 숲 속에서 발견한 철모. 총구멍이 난 철모가 땅에 떨어진 채 녹슬고 쪼개져서 벌어지자 그 틈새로 단풍나무가 싹을 틔워 자라고 있다. 사진=유재심 제공
◇ "DMZ는 중무장지대…역설적 공간"

남북 개발협력 전문가로서 'DMZ'는 어떤 곳인가.

"DMZ는 공간개념으로 보면 굉장히 역설적인 공간이다. DMZ(De-Militarized zone)는 '비무장지대'를 의미하지만 사실상 HMZ(Heavy Militarized Zone)인 '중무장지대'로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국가 간 지역 간 맞닿는 접경지역에 사는 주민들끼리는 교역과 교류가 일상적이지만 DMZ는 민간인이 왕래조차 어려운 단절지역이다.

또한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고 있는 생물종의 20%가 서식하고 멸종위기종이 많아서 '보전의 낙원'으로 불린다. 그러나 동시에 군사 작전으로 황폐화된 볼모지대 면적이 매우 커서 어떤 방식으로든 생태계 복원을 위한 손길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최근 DMZ 관련 기사들에 'DMZ'와 'DMZ일원'란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두 용어의 차이는.

"DMZ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의 군사적 완충지대를 지칭한다. 이에 반해 DMZ일원은 DMZ와 민간인통제선(CCL· Civilian Control Line)을 포함한 개념이다."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교류 협력에 대한 기대감으로 DMZ일원 개발계획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이 계획들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는가.

"최근 제기되는 DMZ일원 개발계획들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현 정부의 대선 공약인 '한반도 신(新)경제지도'에서 제시한 H자 플레임 구상이다. 또 하나는 6·13 지방선거와 관련, 지방자치단체장 출마자들의 개발계획이다.

전자는 DMZ를 중심으로 볼 때 서해안선과 동해안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해 한반도를 종적으로 관통하고, 평화생태관광 개념으로 DMZ를 횡적으로 연결하는 H자 프레임 개발 구상이다.

후자는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만든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에 의한 지역단위 개발계획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시급하게 필요한 최소한의 개발이외에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 같은 것은 폐기되고 다시 계획돼야 한다.”

◇ "이명박정부 때 작성한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은 폐기돼야"

이명박정부의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의 문제점은 어떤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계획의 의도이다.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은 정권의 성격상 '북한체제가 곧 무너진다'를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개발'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파괴한다. 의도가 불순한 계획은 폐기되어 마땅하다"

부분 수정도 아니라 전면 폐기해야 한다는 것인가.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에는 근사한 말이 많지만 '평화는 개발'이고 'DMZ는 개발을 기다리는 부동산'이라는 개발논리가 깔려 있다. 당시 정부는 '녹색'이라는 단어를 뒤집어쓰고 녹색 성장, 녹색 개발을 외쳤다. '4대강 사업'도 '원전개발'도 그런 사업이다. 그런 시대에 만들어진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은 전면 폐기하고 새로운 시대, 한반도 평화 개념을 반영한 공간구상을 다시 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달성해 한반도 평화체제가 이뤄지면 남북 DMZ일원의 성격과 위상이 지금과는 달라진다. DMZ는 우리에게 대륙으로 뻗어가는 관문, 한반도 공동번영의 중심지, 남북 교류협력의 통로가 된다.

그리고 DMZ는 잠재적으로 정상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마주하게 되는 국경이 된다. 이때에는 남북이 DMZ 개발에 대해 공동으로 협의해야 한다. 그리고 개발의 내용도 지금과 다르게 재구성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판문점 내 '도보다리'에서 녹이 슨 군사분계선 표식물을 살펴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청와대
◇ "DMZ일원 토지를 '개발 유보지'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DMZ 개발은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DMZ 개발을 논의하는데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실현돼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대규모 황폐지에 우선 생명을 불어넣고 한반도 허파로 복원하는 일이다.

우리 세대는 DMZ일원 불모지를 복원하는데 힘쓰고, 개발 여부와 그 방향은 다음 세대가 주도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DMZ를 포함한 DMZ일원의 토지를 '개발 유보지'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개발 유보지? 그린벨트를 의미하는 건가.

“개발 유보지는 개발을 제한하는 그린벨트와는 다르다. 개발유보지 개념은 미래에 산업의 변화나 도시변화 추세에 대응해 현재 개발을 잠시 미루고 더 좋은 개발 안이 나올 때까지 현명하게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국토계획에 반영하는 것이다. 미래에 개발이나 보존에 대한 더 좋은 방안이나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 세대가 DMZ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개발을 잠시 유보하자는 거다."

DMZ를 보존할지 개발할지는 미래세대에 맡기자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세대는 평화체제가 된다고 하니까 토건개발과 산업단지 개발을 먼저 떠올리고 마치 우리세대에서 끝장낼 것처럼 들떠서 개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한반도 평화체제에서 대륙을 왕래하고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갈 그 세대가 어떤 방식의 개발을 꿈꾸는지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지금 정책과 개발을 주도하는 세대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 우리세대의 개발은 통로를 뚫고 왕래가 가능할 정도의 개발이면 된다. 평화시대의 개발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살아갈 남북의 평화세대끼리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협의하고 개발형태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DMZ만이라도 개발 유보지로 놔뒀으면 좋겠다. 겨우 한반도 면적의 1%도 되지 않는 DMZ일원 개발을 유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그리고 당장은 개발이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o 유재심 박사가 생태계 조사를 위해 강원도 연천군 DMZ 일원을 찾았다가 만난 두루미(천연기념물 제 202호). 멸종위기 1급 생물인 두루미는 겨울 한 철 한반도를 찾아 DMZ에 머물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사진=유재심 제공
◇ "지뢰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면 DMZ는 한반도 허파 될 것"

현실적인 문제? 그것이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DMZ에는 지뢰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남북 DMZ일원에는 수백만이 넘는 지뢰가 토양층에 박혀 있거나 나무뿌리와 얽혀있다. 인위적 작업으로 모든 지뢰를 제거할 수 없고, 오랜 시간과 천문학적 공공비용이 소요된다. 지뢰의 수명은 100년 이상 된다고 한다. 지뢰가 저절로 기능을 못할 때까지 짧게는 30년 정도 기다리면 DMZ는 큰 숲으로 한반도 허파가 될 것이다.

남북의 다음세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그 숲을 자르고 개발할 것인지 그대로 숲으로 보전할 것인지 평화세대가 협의해 결정하면 된다. 평화세대가 개발한다면 지금 논의되는 개발구상보다 더 좋은 안을 준비하고 더 현명한 개발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변에 통일에 무관심하거나 반감을 가진 청년들을 봤다. 청년들이 DMZ 개발에 관심이 있을까.

"우리 세대가 너무 전투적으로 나서 그들에게 기회가 안주어진 탓도 있다.

2년 전 참석한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으신 분이 DMZ와 북한 개발에 대한 기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게 그 분이 낸 아이디어가 아니라 학부생들이 낸 아이디어라 했다. 그러면서 그 분이 '요즘 애들이 통일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세대 생각이고, 본인들에게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니까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서서 내더라'는 말을 했다.

현재 20대, 30대는 20~30년 후면 정책 결정자가 될 수도 있고, 경제 중심축에 설 수도 있다. 밑그림부터 색칠까지 우리세대가 DMZ의 모든 그림을 완성할 필요는 없다. 청년들이 살아갈 미래다. 그들에게 시간이라는 기회를 주자. 그러면 그들은 우리 세대의 접근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지도 모른다."

◇ "금강산 가는 옛길 복원과 DMZ 5일장 꿈꿔"

DMZ 개발을 유보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4·27 판문점 선언에서 DMZ 평화지대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감시초소, 철책, 중장거리용 무기를 없애 실질적인 '비무장' 평화지대로 만들어나겠다는 구상이다. DMZ평화지대가 실질적으로 복원되면 북한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현명한 개발사업으로 '금강산 가는 옛길 복원'과 'DMZ 5일장' 설치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우리 세대가 거의 사회활동을 멈추고 젊은 사람들이 한참 50대 됐을 때쯤 되면, '금강산 가는 옛길'은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더 유명한 평화의 길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금강산 가는 옛길'은 구체적으로 어떤 코스인가.

"조선시대 선조들의 기록을 보면 '금강산 가는 옛길'은 크게 4군데가 있다. 그 중 두 곳이 걷는 길로 복원됐으면 좋겠다.

하나는 한양에서 함흥가던 도로인 경흥로이다. 경흥로는 남서 물자와 북동 물자를 실어 나르던 통로로 길옆엔 여행객과 판매 시설들이 북적댔다고 한다. 경흥로가 '걷는 길'로 복원되면 남쪽 강원도 철원군~북쪽 강원도 평강군과 세포군의 '세포등판'을 거쳐 금강산과 원산을 여행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양구군에서 두타연을 보고 수입천을 따라 금강군에 이르는 옛길을 걷는 길로 복원하면 좋겠다. 양구~금강~창도~회양을 거쳐 금강산을 끼고 안변에 이를 수 있다. 14세기부터 많은 스토리가 켜켜이 쌓여있는 이 두 통로는 복원하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인문학적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DMZ 5일장'은 어떤 것인가.

"금강산 가는 옛길이 복원되면 북한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사업으로 'DMZ 5일장' 설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DMZ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 중간에 남북 공동으로 장마당을 설치해 생활 물자를 사고팔다 보면 어느새 인심도 나누고 문화가 섞이게 되고 생물들 끼리 교환도 일어난다. DMZ에서 열리는 소소한 장마당이 30년쯤 후 국제 교역시장이 돼 있을 지도 모른다."

유재심 박사. 그는 기자에게 "겨우 한반도 면적의 1%도 되지 않는 비무장지대(DMZ) 개발을 유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라고 물었다. 사진=김봉진 기자
■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유재심 박사

- 공학박사
- 남북 개발협력 분야 활동
- 현,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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