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출신 통일학 박사가 보는 탈북자들의 탈북후 고민과 애환

주승현 통일학 박사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 주승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의 귀순으로 온나라가 떠들석하던 그 순간 의사 출신 탈북민의 '허망한' 죽음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했던 의사 출신의 한 탈북민은 북한에선 어엿한 의사였지만 한국에서는 한 명의 청소원에 불과했다. 그는 한국에 어렵사리 정착해 청소용역업체에서 일하던 중 숨졌다. 안전모도 쓰지 않은 채 고공에 매달려 빌딩 유리창을 닦다가 추락해 이승을 떠난 것이다.

연일 언론에서는 북한 엘리트의 탈북 러시와 북한체제 균열의 상관관계를 공식에 대입하듯 소개하며 당장 큰일이라도 일어날듯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서 새롭게 터전을 일구며 살고 있는 탈북민들은 놀랄 정도의 무심함으로 이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무덤덤하게 '대면'하고 있다.

사실 고위 탈북민들과 일반 탈북민들은 북한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조차 출발에서부터 동일선상에 있지 않다. 엘리트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누렸던 특권까지는 아닐지라도 정부의 보호와 보살핌 덕에 안정된 직업과 남부럽지 않는 월급을 받으며 자유세계를 만끽한다.

하지만 일반 탈북민들은 입국과 동시에 실업과 빈곤의 힘겨운 환경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학원은 물론 유학까지 보내는 탈북 엘리트의 자녀들과는 달리 대다수 평범한 탈북민의 자녀들은 아르바이트와 치열한 경쟁으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

북한에서의 지위와 계급의 대물림이자, 탈북민 사회의 금수저와 흙수저의 실체는 이처럼 명확히 갈린다. 최근들어 수많은 달러를 챙겨 들어오는 '달러수저층'이 새로 생겼다. 이들은 이미 와 있는 고위 탈북민 사회 내에서도 새로운 계급으로 부상하며 위세를 더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은 중간계층의 탈북민 일수록 더욱 심하다. 북한에서는 나름 잘나갔지만 한국에서는 간택받지 못한 대다수 탈북민이 정체성 부정과 경력 단절로 방황하며 심한 좌절에 몸부림치고 있다.

교사 출신의 탈북민은 식당 설거지로, 북한군 대대장 출신의 탈북민은 대리운전으로, 연구사 출신은 이삿짐 용달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모습은 이제는 너무 흔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청소부로 유리창을 닦다 추락해 숨진 탈북민도 북한에서는 의사가 아니었던가. 물론 체제와 제도가 상이한 곳에서 북한에서의 경력이 쉽게 인정될 수 없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통일과 통합을 생각하는 국가라면 전문직에 종사했던 이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허탈감은 경력의 부정뿐 아니라 살아온 정체성의 부정을 강요당하는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시선' 때문에 더욱 커지고 있다. 이미 북한의 일반 주민도, 중견 간부들도 이러한 사실을 똑똑히 보고 있을 터이다.

국내에 정착해 있는 탈북민들의 상황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자유와 조국을 찾아왔지만 벌써 수천 명이 '탈남(脫南)'했으며, 이 가운데 적잖은 사람들이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거나 자살을 생각하고 있을 정도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들의 위치는 언제부터인가 이등국민을 넘어 금·은·흙수저·이민자·탈북자라는 '5계급론'으로 한국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

“오히려 외국에 나가 보면 탈북자들을 난민이 아니라 정치적 망명자로 존중해줍니다. 인문학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급으로 인정받는 레이던대에서 일개 탈북작가인 저를 학과장급 대우로 초빙했는데, 국내에선 어떤가요. 국내에 탈북자가 3만 명인데 북한학과에 탈북자 출신 교수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장진성 탈북시인의 이 같은 한마디는 '노력과 기회는 비례한다'는 하나원의 교육을 철석같이 믿고 한국이라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버텨온 수많은 탈북민이 스스로 깨닫고 있는 절박함과 회한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북한주민들과 엘리트 간부들의 도미노 탈북행만 갈구하기 보다는 한국에 이미 와 있는 3만 명의 탈북주민들부터 챙기고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북한주민들의 마음을 얻고 준비된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작년에 오준 한국 유엔대표부 대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北 주민, 남이 아니다”라고 한 연설을 두고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들은 세계를 울린 연설이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이를 본 탈북민 후배가 조용히 물어왔다. “그럼 북한에서 나온 우린 남인가요?”

■ 주승현 교수 :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 제압방송 조장으로 근무 하다 휴전선을 넘어 귀순해 서울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땄다. 현재 전주기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대통령 직속 민주평통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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