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공사영국 주재시 토론회에 참석한 북한 외교관 태영호의 모습. 사진=영국 the Guardian 홈페이지.
[데일리한국 이정현 기자] 국내에 자리를 잡은 탈북 출신 전문가들은 태영호 북한 공사의 탈북 동기가 자유주의 체제 동경이나 자녀 문제 외에도 '자금문제' 등 다른 '긴박한 요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태 공사의 탈북이 미칠 파급력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태영호(55)공사의 국내 입국은 17일 저녁 통일부의 긴급발표를 통해 알려졌다. 이 날은 BBC를 비롯한 영국 주요언론이 먼저 태 공사의 신원을 공개하며 그의 제3국 망명 요청을 사실을 보도한 날이기도 했다.

통일부가 밝힌 태 공사의 탈북 동기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회의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 문제’ 세 가지다.

이에 대해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탈북 인사들은 결정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을 것이라는 공통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 심리전 부대 출신의 주승현 통일학 박사(전주기전대 교수)는 “자녀 문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태 공사의 직급 정도면 당을 통해 다시 자녀 유학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주 박사는 주요 탈북 동기로 ‘자금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개인적인 횡령이 아니라, 업무차원에서 하던 자본 관리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며 “북한에 귀국하면 다시는 외교관 업무를 맡을 수 없을 수준의 문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탈북인사 A씨도 자금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며 태 공사의 업무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태 공사는 보통 외교관과 다르게 소위 ‘1급’ 업무를 관리했다”며 “중요 업무를 맡는 만큼 비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통일부가 말한 태 공사의 탈북 동기에 “공감한다”면서도 “탈북은 결정적인 사건이 없으면 감행하기 힘들다”고 다른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작년에 김정은의 머리스타일을 비웃는 포스터가 영국에서 돌아다녔다”거나 “영국에 지사를 둔 '조선민족복권회사'의 부정거래가 영국 재무부 감사를 받았고 여기에 태 공사가 관련됐다는 말이 전에도 나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태 공사의 탈북이 가져올 파급력도 주요 관심사다. 통일부는 18일 언론브리핑에서 태 공사의 탈북이 "김정은 체제 내부 결속에 금이 가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흥광 대표도 “이번 사건은 북한 엘리트층에 '공명현상'이 될 것”이라며 “태 공사의 탈북은 단순한 외교관의 탈북이 아니라 북한체제의 선전원이라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 나치의 경우도 괴벨스를 비롯한 선전당원의 충성도가 가장 높았다”고 덧붙였다.

주승현 박사는 “그동안 공식·비공식으로 이어져 오던 고위급 탈북자 사례 중에서 외교관은 오히려 사례가 빈번했던 편”이라며 “북한체제와 연관될 만큼의 핵심 고위층이라면 정찰총국이나 핵·미사일 개발에 관련된 군 장성 등이다”라며 이번사건의 과도한 의미평가에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A씨 역시 “오히려 엘리트 층에서는 그냥 ‘배신자’가 나왔다고 할 것”이라며 “그만큼 세뇌교육이 무섭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우리 정부가 태영호의 입국 사실을 공식 인정한 이튿날인 오늘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외 언론을 통해 태 공사의 탈북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만큼 조만간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보이며 그 수위와 대처가 주목된다.

탈북자 A씨는 “한국 입국 사실까지 기사가 나간 이상 수색작업은 멈췄을 것이며 이후 상황은 보위부의 ‘사유서’에 달렸다”고 말했다. 보위부가 조사한 태 공사의 탈북 원인에 따라 관련 인사들에 대한 처벌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김흥광 대표는 “현재 ‘고사총 총살’ 등의 보도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며 “북한에 남은 태 공사의 지인이 정치범 수용소로 가거나 지방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정은이 젊은 지도자고, 처음으로 발생한 유명 고위급 인사의 탈북이므로 어떤 대처를 할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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