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 기자
[데일리한국 김소희 기자] 우리나라 국회 의석 300석 중에는 54석의 비례대표 의원이 있다. 이들은 지역구 없이 정당별 투표로 순번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이에 따라 정당은 지역구 당선이 쉽지 않은 여성이나 장애인, 직능별 대표 등을 공천해 국회의 전문성을 강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인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자는 취지에서 국회 비례대표제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비례대표제가 도입 당시의 원래 취지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먼저 공천 단계서부터 직능 대표성을 따지기 보다 대표의 측근, 주류와 비주류 나눠 먹기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짙다. 여당은 친박 일색, 야당은 친노 중심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전문성 강화나 약자들을 대변하는 본연의 업무 대신 지역구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듯하다. 임기 4년을 다음 총선을 준비하기 위한 워밍업 기간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기 3년이 지난 요즈음 이들 비례대표의 움직임을 보면 이 같은 분위기를 잘 알 수 있다. 최근 조사에서 옛 통합진보당 의원 2명을 제외한 52명의 비례대표 의원 중 무려 39명이 지역구 출마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3명 중에서도 3, 4명이 불출마를 검토하거나 선언했을 뿐 기회가 닿으면 거의 전원이 지역구 의원으로 재출마할 태세다.

실제 새누리당 비례대표 이에리사 의원은 대전에서 사무실을 내고 주민들과 만나느라 한창이다. 새정치연합 배재정 의원은 부산에 사무실을 내고 역시 얼굴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나아가 새정치연합 김현 의원은 세월호 유족과 함께 대리기사 폭행에 연루됐음에도 경기 안산 단원갑에 출사표를 던진 뒤 열심히 뛰고 있다. 이들에겐 비례대표 의원으로서의 활동이 그저 지역구 의원으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한 셈이다.

물론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는 건 엄연히 자유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것도 없다. 하지만 비례대표 의원들이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아 있는데도 당협위원장 등을 맡아 지역 표밭 다지기에만 열중한다면 이는 비례대표제의 ‘효용성’ 여부를 재점검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비례대표의 증원 문제가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승자독식이나 지역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대고 있다. 그러나 80%가량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를 누비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이 같은 비례대표 의원 증원이 국가적으로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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