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김소희 기자] 국가정보원 해킹 프로그램 의혹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국면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뚜렷한 물증이나 증언 등이 나오지 않아 새정치민주연합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면서 국정원과 여당의 협조를 압박하고 있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나오지 않아 내부적으로는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특히 보안 전문가로 위원장을 맡은 안철수 의원의 입장이 가장 애매해졌다는 평가다.

여당은 지난 27일 국정원의 현안보고를 계기로 "모든 의혹이 말끔히 해소됐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이 삭제됐던 51개 로그파일을 복구해 용처를 밝히고 SKT 회선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는 점을 내세워 "국내 민간인을 상대로 한 사찰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강조하고 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29일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국정원 논란을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한다"면서 "우리 안보와 직결된 정보들의 모든 경로를 만천하에 공개하라고 하는 것은 국가안보와 국민안위를 내팽개치고 위험에 빠뜨리는 일임을 야당은 명심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정원의 보고 이후 의혹이 더 커졌다면서 공세를 폈다. 이번 의혹을 최초로 폭로한 캐나다 연구팀 '시티즌랩'과 30일 화상회의를 하는 등 해킹 의혹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이날 전병헌 최고위원은 "국내 실험용 31건이 있다는 건 해외 북한 공작원만 대상으로 했다는 첫 해명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또 "민간인 사찰이 없었다는 억지만 부린다"(오영식 최고위원)거나 "증거도 없이 민간인 사찰이 없었다는 거짓말만 늘어놓는다"(유승희 최고위원) 등 최고위원들이 일제히 이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당 내부에선 정보위 회의 이후 대여 공세의 동력이 약해진 가운데 국정원의 반박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 한방'이 없다는 점에서 이젠 출구전략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다음 달 초순 로그파일 복원 과정을 놓고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들과 현장 간담회를 열고 국회 안전행정위원회·국방위원회의 현안보고도 이뤄질 예정이지만, 여기서도 만족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 내부에서는 국정원의 불법 해킹 프로그램 구입 및 사찰 의혹 정국에서 좀처럼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새누리당에 완전히 말려들었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보안 문제’를 근거로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안 위원장이 진상규명을 위한 최소 조건으로 제시한 ‘3대 선결 조건’이 받아들여질지도 미지수다. 전날 안 위원장은 의혹 해소를 위해 △로그파일 등의 자료제출 △최소 5명 이상의 전문가 참여 △1개월 이상의 시간적 여유를 보장받을 경우에 한해 “정보위에 참석하고, 필요하다면 백지신탁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엄마부대봉사단을 비롯한 일부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회원들은 안철수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구를 찾아가 안 의원을 겨냥, "국정원 흔들기 행태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국정원이 해킹프로그램을 이용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있다'는 의혹을 야당이 사실처럼 단정 짓고 정치 공세를 계속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안 의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안 의원은 국회에 외부 해킹전문가를 초청해 직접 해킹 시연을 해보이면서 '내국인 사찰'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 바 있다. 안 의원의 고민이 이중삼중으로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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