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기대했던 체제 결속·국제사회 선전 효과 등 없다고 판단 땐 무산 가능성"

예측 불가능성 높이며 우리 측 반응 살필 듯…반 총장·킹 특사 방북 취소 선례

"김정은, 공포 정치 효과에 대해 과신… 장기적으로 체제 불안의 씨앗 심는 것"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내달 5일로 예정된 이희호 여사의 북한 방문 계획과 관련, "북한은 마지막 순간까지 방북 성사 여부를 놓고 흔들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제1차장을 지낸 전 교수는 10일 "이 여사의 방북이 북한의 체제 결속력을 높이거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선전하는 등 당초에 기대했던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돌연 무산시킬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5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불과 하루 앞두고 번복한 바 있다. 또 지난해에는 미국 국무부의 로버트 킹 북한 인권특사를 초청했다가 두 번씩이나 취소하기도 했다. 전 교수는 "이 여사의 방북은 인도주의적 방북일 뿐이며, 북한은 김정은 체제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남북 대결 국면을 지속시키려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 여사의 방북 자체가 남북 관계 개선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설사 김정은과의 만남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큰틀에서의 남북관계 진전 여부와는 큰 관계가 없다"고 평가했다.

전 교수는 김 1위원장이 김일성 사망 21주기에도 배지를 달지 않고 나타났고, 또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그려진 '3부자 배지'를 제작하려고 하는 것과 관련, "김정은은 통치 철학, 통치 리더십이 부족한 상태임에도 지나치게 자만에 빠져 홀로서기에 나서려는 것"이라며 "공포정치의 효과에 대해 과신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대단한 지도자인 것처럼 왜곡 선전하는데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북한은 이희호 여사의 방북 계획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며, 우리 정부가 계속 도발하면 방북이 무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이 말바꾸기를 하는 속내는 무엇인가?

"북한은 이희호 여사의 방북을 계기로 김정은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주도하는 판세로 바꾸고 싶어 한다. 국내 언론에서 이번 방북과 관련,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에 대한 기대나 긍정적 논평보다는 비판적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에 불만이 있다. 일종의 '남한 언론 길들이기'라고 볼 수 있다. 일부 보도에서는 3박4일 간의 이 여사의 방북 기간 북측이 마식령스키장과 함께 김정은의 최대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평양 순안 국제공항 신청사를 선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은 물론 대동강변 고층 아파트나 위성과학자거리, 문수물놀이장 등 김정은 시대 건축물들을 이 여사의 평양 일정에 포함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았다. 이런 보도들에 대해 북한은 최고존엄인 김정은의 심기를 직접 건드리는 것으로 판단해 충성파나 강경파들이 대응하고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8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 당국과 언론이 최고존엄을 모독했다며 모독·중상 도발을 계속하면 이희호 여사의 방북이 허사가 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

- 이 여사의 방북이 실제로 무산될 가능성은.

"이 여사의 방북이 예정된 내달 8월 5일까지는 25일 정도 남아 있다. 그 기간에 북한은 그들이 위협한대로 국내 언론이 김정은이 원하는 분위기나 태도로 바뀌지 않고, 또 북측이 기대하는 남남 갈등이 끝까지 촉발되지 않는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방북 성사 여부를 놓고 흔들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북한은 예정됐던 반기문 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불과 하루 앞두고 번복한 바 있으며, 지난해에는 미국 킹 특사를 초청했다가 두 번씩이나 취소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들이 김정은이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예측 불가능한 행태다. 김정은이 판단하기에 이 여사의 방북이 체제 결속력을 높이거나 국제사회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선전하는 데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돌연 무산시킬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내달 5일 직전까지 예측 불가능성을 고조시킨 상태에서 우리 측의 상황과 반응을 살피면서 관심을 고조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 이 여사의 방북이 이뤄진다면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은 있는가. 만약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된다면 남북관계 개선에 미치는 효과는.

"김정은은 여러 가지 계산을 하면서 자신에게 큰 실익이 없다고 생각되면 초청만 해놓고 만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김정은의 목표는 체제의 안정과 함께 북한 주민들로부터 체제의 정통성을 인정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남북 대화 국면보다는 대결 국면 조성을 통해 주민들에게 김정은의 위상을 선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여사의 방북은 김대중평화센터 측에서 밝힌 것처럼 인도주의적 방문이다. 이 여사의 방북 자체가 큰틀에서의 남북관계 개선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김정은과의 만남도 남북관계 진전 여부와 큰 관계가 없다. 현 상황에선 정부에서도 이 여사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에 전달할 메시지도 없을뿐더러,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통일대박론'에 대해 흡수통일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북한에게 그 어떤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왜곡해 받아들일 것이 분명하다."

-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 사망 21주기에도 김일성·김정일이 그려진 배지를 달지 않았다. '공포 정치'를 통해 재미를 보고 이제는 '홀로서기'까지 나서는 모양새다.

"김정은의 그같은 행태는 정치적 안목과 식견이 부족한데서 나오는 것으로 판단된다. 통치 철학, 통치 리더십이 부족한 상태임에도 지나치게 자만에 빠져 홀로서기에 나서려는 것이다. 공포 정치의 효과에 대해 과신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대단한 지도자인 것처럼 왜곡 선전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때문에 '3부자(父子) 배지'도 만들어서 자기를 인정해달라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공포 정치의 효과를 믿기 때문에 자신의 체제가 실질적으로 안정됐다고 볼 수 있을 때까지는 공포 정치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기적인 안정에는 기여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체제 불안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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