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세종시 수정안 반대 배경 '정운찬 대세론' 주장에

靑 핵심 관계자 '朴心' 실린 유감표명하며 강하게 불만 표출

신구 정권 충돌에 여당 내 친이-친박 계파갈등 재점화 예고

[데일리한국 이선아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출간을 놓고 신구(新舊) 정권 간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재임시절 세종시 수정안 부결 사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속내'를 지적하거나 정부 정책에 대해 훈수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청와대가 30일 바로 유감을 표명하며 반박하고 나섰다. 사실상 박근혜 이명박 전현직 대통령간 감정싸움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세종시 수정안 부결 사태와 관련, "전혀 근거 없는 추론이었지만,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2012년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며 "돌이켜보면 당시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끝까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치는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세종시에 대한 주장에는 자신의 라이벌로 부상할지도 모르는 정 전 총리를 주저앉히기 위한 전략도 들어있다는 이야기다.

또 이날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인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박근혜 정부가 외교 국방은 잘모르는것 같아서"라며 회고록에 남북정상회담 추진 내막 등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자 청와대가 발끈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기자실을 찾아 세종시 추진이 2007년 대선 공약이었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도 세종시 공약 이행을 약속하면서 박 대통령의 유세 지원을 요청했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세종시 문제가 정치공학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되는 것은 과연 우리나라나 당의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강한 유감 표명을 하면서 불만 섞인 반론을 편 것으로, 당시 정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수정안을 반대했다는 이 전 대통령의 해석은 정치공학적이고 국가통합에 도움이 안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지만 여기엔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있지 않을리가 없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 반대는 원칙과 소신을 지킨 모습이라 평가 받았는데, 이 문제가 자칫 '정략적 이해 계산 속에 내린 결정'으로 변질되는 것을 청와대가 적극 차단한 것이다.

아울러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거론한 데 대해서도 "남북문제, 남북대화를 비롯해 외교문제가 민감한데 세세하게 (비사가) 나오는 것이 외교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지적이 언론에서 많이 있고, 저도 우려된다"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광복과 분단 70년을 맞은 올해 남북통일을 위한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추진중인 와중에서 북한을 얼어붙게 만들 수 있는 민감한 남북접촉 관련정보가 노출된데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이다.

청와대가 이처럼 MB 회고록의 내용을 문제삼고 나선 것은 최근의 정국상황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계속 최저치를 경신하면서 국정운영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30%마저 붕되된 상황에서 전임 대통령 회고록이 국정운영에 또다른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론 신구 정권의 신경전 양상이지만 핵심에는 이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MB정부 자원외교에 대한 국정조사가 여야 합의로 실시되고 이 전 대통령마저 국회에 출석할 대상으로까지 오르내리자 MB가 회고록에 이 내용을 실으면서 사실상 자기 보호 및 대 정부 역공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4대강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부분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부정적인 부분만 부각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들어 있다.

어쨌든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유쾌할리가 없다. 가뜩이나 청와대발 악재로 지지율이 하락해 고민되던 터에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논란거리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당내에선 벌써부터 계파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 나온다. 특히 친이계 인사들은 청와대의 이날 비판을 놓고 반발하고 나섰다. 한 친이계 의원은 "청와대가 이러쿵저러쿵 반응하는 건 예의도 아니고, 역작용이 일어난다. 회고록은 회고록으로 봐줘야 한다"고 말했고, 다른 의원도 "청와대가 즉각적이고, 정면 반박하는 입장을 밝히는게 박근혜 정부에 도움이 되는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 문제가 향후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 자원외교 국정조사 등 정치 일정을 앞둔 상황에서 친박-친이간 본격 계파 갈등의 불씨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돼 여권 내부에서 이 문제로 인한 논란이 한동안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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