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인터뷰 = 전옥현 서울대 초빙교수]

"내년 러시아에서 남북 정상회담 성사도 어려워"

"북한 '정상 국가' 수행 어려워...국제사회 따돌림 뻔해"

"김양건 초청, 통진당 해산에 따른 종북세력 위축 방지 의도"

전옥현 서울대 초빙교수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년 5월에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함께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간의 첫 북·러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는 데일리한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푸틴과의 단독 정상회담을 바라는 김 위원장이 다자 정상회의 격인 러시아 전승 기념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에서 북·러 정상회담이나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전 교수는 "만일 김정은이 내년 러시아를 방문한다면 체제 변화의 신호가 될 수 있지만 북한은 '정상적 국가로서의 외교 행위'를 수행하기 위한 핵 포기와 인권 개선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 조의 표명'에 대한 사의를 전달하기 위해 김대중평화센터와 현대아산 측의 개성 방문을 요청한 배경에 대해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인한 종북 좌파세력의 위축을 막겠다는 의도도 있다"고 분석했다.


- 내년 5월 러시아 전승 기념 행사 때 남북 정상회담 등이 개최될 가능성은.
"이번 러시아의 초청은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다. 지난달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의 러시아 방문에 대한 선물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와 무관하게 러시아 입장에서 초청 대상에서 북한을 빼놓는다는 것은 대국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만약 김정은이 행사에 참석한다고 하면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미국의 정상들뿐 아니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푸틴도 김정은이 오겠다고 한다면 내심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가 핵, 인권 탄압, 해킹 등의 3대 '왕따 행위'를 하고 있는 북한을 압박하는 상황이어서 전승 기념 행사 참여를 고려하는 대부분 국가들도 김정은의 참석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할 것이다. 김정은의 입장에선 초대 받은 것은 고맙겠지만 참석해봤자 국제사회에서 따돌림과 망신만 당하고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고 있다. 앞서 북한은 지난 9월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 방문,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유럽 방문 등 전방위 외교를 펼쳤지만 국제사회에서의 고립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를 방문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을 김정은 본인이 스스로 초청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난 2005년 전세계 53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승전 60주년 기념식에도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초청장을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


- 박근혜 대통령은 러시아의 전승 기념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보는가.
"우르라이나 사태로 인해 미국과 상당수 유럽 국가들도 러시아 전승 기념 행사를 보이콧할 가능성도 상정해볼 수 있다. 이런 점은 우리 정부가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데 부담 요인이 될 것이다."


- 김양건 북한 노동당 비서가 DJ 측과 현대아산에 개성공단 방문을 요청한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기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결코 좋은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다. 조의에 대한 감사 표시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이나 다른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의도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 북측은 이번 제안을 통해 통진당 해산으로 인한 종북 좌파세력의 위축을 막겠다는 의도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기 국면에 처한 김양건 비서가 재신임 승부수로 띄운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으로 보면 된다. 헌재에 의해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위헌 정당'으로 규정된 통진당의 해산은 북한으로선 큰 타격이다. 한편 북측이 방문을 제안한 장소인 개성공단은 남북 간의 정치적·민족적 교류의 창구가 아니라 경제 협력의 창구이다. 북한이 DJ측뿐 아니라 현대아산을 앞세우는 것은 '경제 협력'이라는 그럴싸한 위장막을 이용해 남남 갈등을 조장하고 남북 간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 북한으로 추정되는 '소니 해킹' 위협에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응징' 을 천명한 까닭은.
"미국은 이번 사태를 두고 단지 민간 영화사에 대한 해킹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북한뿐 아니라 최근 비인간적인 살상 행위를 벌이고 있는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도 사이버 테러까지 예고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의 테러 행위는 미국 내 시설에 대한 공격뿐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미국민과 우방국을 대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광범위한 피해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FBI의 수사 결과 물적 증거가 명백하게 나온 상태에서 제2, 제3의 범행이 우려되기 때문에 미국이 공식적으로 '북한 소행'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며 고강도 제재를 공언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을 강조하고, 역(易)해킹 공격을 시사하며 북한에 대한 응징을 천명했다. 하지만 북한의 열악한 전산망을 고려하면 북한에 대한 인터넷 공격은 실질적으로 큰 피해를 주지 못할 수도 있다. 미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제재 조치는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재지정해 외교적·경제적 보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유엔에서 북한 인권·핵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함께 미국 의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입법 조치를 취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에 대해서는 수교와 같은 화해 정책으로, 북한에 대해서는 강력한 압박과 제재의 봉쇄 정책으로 차별화하는 외교를 통해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보여줌으로써 그간의 외교 실점을 만회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북한이 결백을 주장하며 미국에 공동조사를 제안한 것은 북한의 전형적인 책임 회피 전략일 뿐이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 때에도 정부에 공동조사를 제안한 적이 있다. 아울러 국내에서 발생한 한국수력원자력 해킹 사건에 대해서도 조속한 조사를 통해 북한의 소행인지 여부를 반드시 밝혀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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