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언론, 헌재 결정 관련 중대선구제 도입 놓고 온도차

조선·중앙·동아, 정치권 논의 가능성 언급하면서도 '신중'

한겨레·경향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 적극 도입 입장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헌법재판소가 30일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한 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고 선거구 별 인구 편차를 현행 3대1에서 2대1 이하로 바꾸라며 입법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선거구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해졌고, 이에 따른 정치권의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밝힌 인구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62개 선거구를 중심으로 통폐합 또는 지역 재조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선거구 획정 방식과 결과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과 혼란이 예상된다.

이번 헌재의 결정을 놓고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은 모두 "투표 가치의 평등권이란 측면에서 당연하고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인정하면서 이번 결정이 당리당략에 따라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로 변질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 여부에 대해선 온도차를 보인 게 눈에 띄었다. 보수 성향 신문들은 정치권에서의 중대선거구제 도입 논의 가능성을 점치면서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신중한 입장을 취한 반면, 진보 성향 언론들은 "이번 헌재 결정을 전면적인 선거구제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영호남 지역 구도 부작용을 개선해야 한다는 명문을 들어 중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을 거론했다.

조선일보는 31일 3면 '현재發 정치태풍… 선거구 조정 1년 내내 '혈전' 예고'라는 기사 말미에 "정치권에서는 이번 기회에 헌재 판결에 따른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종합적인 선거 제도 개편을 논의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조선은 '선거제도 이대로 좋은지 다 터놓고 논의해볼 때 됐다'는 제목의 사설에서는 "일부에선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의원만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가 근본 원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며 "소선거구제가 여야의 지역 정당 구도와 영호남 지역 대결 구도를 고착화하고, 선거판의 혼탁과 과열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고 평가했다. 사설은 "물론 한 선거구에서 두 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가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면서 "하지만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시대 변화를 반영하면서 효율적이고 민주적이며, 정치 갈등도 줄일 수 있는 선거제도를 찾기 위한 국회 차원의 논의를 해볼 필요는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중앙일보도 1면 기사에서 "정치권 일각에선 개헌 논의와 더불어 이참에 30년 넘게 유지돼온 소선거구제 자체를 바꾸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 관심을 모았다"며 야당 의원들의 주장을 보도했다. 4면에서는 '"이참에 소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논의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하자"는 야당 대변인의 말과 "지역구 한두 개 줄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수십 개를 조정하는 게 가능하겠나. 이번 기회에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여당 의원의 말을 인용했다. 하지만 사설에서는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언급은 없이 "선거구를 획정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문제는 게리맨더링"이라며 "정당 간의 이해관계 절충을 통해 선거구를 이상하게 긋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1면에서 "현행 선거구를 기준으로 할 경우 수도권에서는 선거구가 10곳 이상 늘어나고 영남과 호남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 때문에 소선거구제 대신 선거구를 합쳐 선거구 당 2~5명씩 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비롯해 권역별 비례대표제, 지역구와 비례대표 동시 출마를 허용하는 석패율제 등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2면 기사에서도 "이참에 중대선거구제 도입"이라는 야권의 목소리를 전하며 "이번 결정이 단순히 선거구 개편 논의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대선거구제 등은 현행 소선거구제가 득표율에 따른 의석수를 반영하지 못하는 점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정치권과 학계에서 제시하는 대안"이라며 "만약 소선거구제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는 양당제의 파괴, 제3정치세력의 출현의 의미한다는 지적이 많다"고 내다봤다. 동아는 사설에서도 선거구제 전면 개편이 가시화될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는 5년 대통령 단임제의 변경과 관련된 개헌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더 나아가 "정치권 일각에서 일고 있는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논의와 맞물려 양원제 도입 문제 등이 제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고 1면 헤드라인 기사에서 밝혔다. 정치권의 파장을 보도한 4면 '중대선거구·정당명부제 등 개편 논의 봇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중대선거구제는 지역구 크기를 넓혀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이라며 "1등뿐 아니라 2~3등, 지역구에 따라서는 4~5등까지 당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호남 지역정서에 의존한 양당 체제의 부작용 속에 이같은 개편 방향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경향은 양원제 도입과 관련 "지역 대표형 상원제도는 국가 수준에서 지역을 대표해 지방분권을 촉진하고 수도권 집중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사설에서도 "중대선거구나 도농복합선거구제 같은 대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헌재 결정을 선거제도 전면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도 중대선거구제·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강하게 주장하며 "정치개혁 논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정의당 등 진보정당의 주장을 적극 소개했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새누리당은 헌재 결정에 맞춰 선거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 제도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자는 입장"이라며 "정의당은 이참에 선거구마다 의원 1명씩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과도한 인구 편차의 소선거구제가 유지돼온 배경 중 하나는 여야의 주요 정당이 각각 영남과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탓이 적지 않다"며 "소선거구제는 나름의 장점도 많지만 지역갈등을 강화하고 소수정당의 의회 진출을 어렵게 하는 등 단점도 적지 않다"며 "중대선거구 도입이나 비례대표제 강화 등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진지하게 검토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 선거구에서 1위 득표자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는 양당 체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한 선거구에서 2~6명 가량 당선되는 중대선거구제는 다당제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다당제는 대통령제 보다는 내각제나 이원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와 친화성을 갖는다. 따라서 야당이나 진보 정당 내부에서는 중대선거구제-다당제-내각제 또는 이원정부제를 선호하는 세력이 상대적으로 많다. 따라서 진보 성향 신문들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지지한 것은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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