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2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별조치에 따라 억류 미국인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56)씨를 석방했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 동지께서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의 거듭되는 요청을 고려하여 미국인 범죄자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을 석방시키는 특별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앙통신은 파울씨 석방의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파울 씨 석방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을 김 제1위원장이 수용해 이뤄진 조치라고 강조한 것은 미국과 관계를 풀겠다는 의지를 부각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미국이 고위급 특사를 파견하지 않았음에도 전격적으로 석방조치를 취한 것도 이례적이다. 중앙통신은 “미국인 범죄자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은 해당한 법적 처리절차에 따라 미국 측에 인도됐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발표대로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에 의한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석방 과정 등이 이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어서 북미간 긴밀한 접촉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간 미국은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들의 석방 협상을 위해 여러 차례 고위급 특사 파견을 북에 제의했지만, 북한은 이를 매번 거부해 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석방을 요청하는 특사가 방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미 군용기가 평양을 방문해 새벽 시간에 자국민을 태우고 괌으로 이동했다. 북미 당국 간 사전에 물밑 협의를 심도 있게 진행해 왔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최근 북한이 유엔에서 논의되고 있는 김 1위원장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및 북한 인권 결의안의 저지에 외교적 초점을 맞춰온 것을 고려하면 이번 석방을 통해 유엔 등 국제사회에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 교수는 "지난 8월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유엔총회 참석 차 미국을 방문했지만 실무접촉도 못하는 따돌림을 당해 북한이 처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확인했다"며 "이번 조치는 더 이상 버티기에 한계를 느낀 북한이 국제사회와 연계를 위한 대외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하락 등 어려운 처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북측의 억류자를 본국으로 데려오는 것도 중요한 이벤트가 된다. 이 문제에선 북미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측면도 있다는 이야기다.

파울씨는 22일 평양 순안공항으로 간 미국 군용기편으로 괌의 미군 기지를 거쳐 미국의 고향땅으로 돌아갔다. 그는 지난 4월29일 북한에 들어가 함경남도 청진을 여행하던 중 성경책을 몰래 유포한 혐의로 5월 7일 출국과정에서 체포됐고 북한 당국은 적대 행위 혐의를 적용해 억류해왔다. 현재 북한에는 케네스 배(46) 씨와 매튜 토드 밀러(24) 씨 등 2명의 미국 시민권자가 여전히 억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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