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호남 민심 경고 못 읽고 자만
'지역발전'에 적합한 후보 뽑아… 환골탈태 없는 야당에 거부권
무리한 전략공천도 패인 자초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자료사진)
7·30 순천·곡성 보궐선거의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 당선을 놓고 호남 지역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지역구도 타파의 물꼬를 텄다는 긍정적 의견과 국정운영에서 각종 참사를 일으킨 여당을 심판해야 하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자존심도 없는 투표를 했다'는 비판으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이 당선인을 찍었다는 조모(46)씨는 "이번 선거에서 지역발전과 지역구도 타파 등의 정치적 명분을 앞세운 전략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며 "호남이 앞장서서 새정치연합 독점 구도를 깼다는 자부심도 생기게 됐다"고 주장했다. 박모(38)씨도 "이제는 정치적 판단보다는 지역발전을 위해 누가 진정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이 당선인은 지역발전에 대한 열정이 있고, 권력 핵심에 가까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예산 폭탄으로 지역발전을 앞당기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박모(53)씨는 "이번 선거를 통해 순천이 '배알도 없는 도시'로 전락했다"며 "인물을 떠나서 엄청난 실정을 저지른 현정부에 면죄부를 주고 핵심 역할을 한 사람을 당선시킨 것은 영혼이 없는 투표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또 김모(43)씨도 "지역발전이라는 허울에 속아 새누리당 후보를 한명 뽑아준다한들 지금까지 계속된 호남 차별이 개선될 수 있겠느냐"며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다 진정한 가치를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정의 차원에서 당연히 표로 심판해야 할 대상을 '지역발전론'이라는 포장에 속아 자존심을 버린 투표를 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선거 결과는 호남을 텃밭으로 여기는 새정치연합의 공천 행태를 순천·곡성 유권자들이 준엄하게 심판한 것이란 보다 객관적인 지적도 적지 않다. 무리한 전략공천 과정의 불공정한 행태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호남이 야당에 일편단심 순정을 보내지 않는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백운선 호남대 교수는 새정치연합이 호남에서 죽을 쑨 이유로 공천 파동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어 선거운동 기간 내내 여당에 반기만 드는 제스처만 취했을 뿐 민심을 파고드는 정책이나 전략에 소홀했던 점도 패인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답답한 상황이지만 새정치연합의 체질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면서 "야당이라는 특성상 여당보다 더 많이 비판 받는 것도 감당하고, 청문회를 하는 심정으로 당내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의 환골탈태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타지에선 오해하고 있지만 그동안 호남이 야당을 좋아해서 찍어준 건 아니었다"며 "상대적으로 기득권에서 멀어져 있는 탓에 집권당을 견제하면서도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치라는 뜻에서 야당에게 힘을 몰아준 것인데, 새정치연합이 오만하게도 지역민들의 마음을 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 당선인이 경제에 맞춰 간결하고 탁월하게 지역민을 파고 든 반면 새정치연합은 정권심판만을 외쳤다"면서 "호남 민심이 야당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1년 10개월여 동안의 의정 활동 이후에도 이 당선인에 대한 지지가 계속될지 여부가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2년 뒤 20대 총선에서도 당선되겠느냐 하는 점이 관심이 되고 있는 것. 정치권 관계자는 "이 당선인의 지역 발전 노력이 가시화한다면 다음 선거에서도 지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서 "이 경우 순천 곡성을 넘어 호남의 다른 지역까지도 이같은 투표 행태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이 만일 이번처럼 오만한 공천 행태를 재연한다면 또다시 호남에서 분루를 삼키게 될 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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