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모티브용 고사양 D램 개발…전기·자율차 시대 메모리반도체 수요 커져

'오토컨슈머 마케팅팀' 통해 차량용반도체 시장 대응, 이미지센서 경쟁력 강화

'CES 2020'에서 SK하이닉스의 부스. 제공=SK하이닉스 제공
[데일리한국 김언한 기자] SK하이닉스가 전장용 반도체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커지는 차량용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는 한편 4차산업혁명 기술의 집약체인 자율주행차 시장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차량용 반도체는 고신뢰성에 대한 요구로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다. 자동차 엔진 주위에 들어가는 부품은 통상 영하 40℃(도)에서 영상 100℃가 넘는 환경에서 정상 작동돼야 채택이 가능하다. 주행 시와 미주행 시 또는 외부환경에 따라 온도 변화 폭이 크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반도체) 비중이 높다. 고신뢰성 품질 기준 또한 충족해야한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의 NXP, 독일의 인피니언, 일본의 르네사스 등 검증된 소수업체가 동력전달장치(파워트레인) 등 차량 구동의 핵심부에 반도체를 공급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차량용 메모리반도체 개발과 함께 시스템반도체 중 하나인 이미지센서를 축으로 전장용 반도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지난 상반기 사업보고서를 보면 1y(10나노 중반대) 12기가비트(Gb) LPDDR4E(저전력 DDR)를 개발 중이다. 플래그십 스마트폰 및 차량용 등에 적합한 고사양 메모리로 파악된다.

LPDDR4 뒤의 E는 'Extended'의 약자로, 이전 규격 대비 성능을 끌어올렸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y 8Gb LPDDR4E에 대한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올해 개발하고 있는 1y 12Gb LPDDR4E는 이보다 4Gb가 큰 것이다. 모듈화를 통해 자동차 등에서 데이터처리 능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7월부턴 초당 3.6Gb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HBM2E(고대역폭 메모리, High Bandwidth Memory 2 Extended) 양산도 시작했다.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로 기존 방식 대비 크기는 30% 이상, 전력 소모는 50% 이상 낮췄다.

SK하이닉스의 'HBM2E D램' 사진=SK하이닉스 제공
HBM은 짧은 시간에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특성으로 그동안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한정적으로 쓰였다. 앞으론 인공지능(AI) 시스템 및 슈퍼컴퓨터 뿐 아니라 자동차에서 활용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차량용 장치 등을 중심으로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달리 고온 신뢰성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볼 때 동력전달 장치에서 거리가 떨어진 곳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경쟁사들이 자동차용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 레이더센서 등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 가능 제품군 역시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전장용 반도체는 스마트폰 등 IT기기에 들어가는 품목과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다. 메모리 중심의 사업 구조를 탈피하지 않고는 진전을 이루기 힘들다는 의미다.

스마트폰에는 약 30종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하지만 자동차는 연간 생산량이 스마트폰보다 훨씬 적으면서 60종 이상의 다양한 반도체가 요구된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달리 자율주행차 시스템의 핵심이 될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제품군 또한 없다.

박재근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AP 탑재를 중심으로 이와 관련된 메모리반도체나 PMIC(전력관리칩), CMOS 이미지센서 등이 함께 들어가 새로운 반도체 시장이 열린다"며 "차량에서 AI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고사양의 메모리반도체 또한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장용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높은 신뢰성 요구, 다품종 소량생산, 커스터머 오리엔티드(Customer Oriented) 세 가지를 충족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커스터머 오리엔티드는 자동차 제조사의 개별적인 요구를 충족하는 부품을 개발해야한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는 전장부품 관련 팀을 별도로 운영하며 전장용 반도체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16년 5월 오토모티브 태스크포스(TF)를 공식 출범한데 이어 그해 말 TF를 팀으로 승격시켰다. 관련 조직인 '오토컨슈머 마케팅팀'이 커지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대응한다.

SK하이닉스 이천사업장 전경. 사진=SK하이닉스 제공
지난해 3월에는 SK차이나와 함께 중국의 차량용 인공지능(AI) 반도체 전문기업 호라이즌로보틱스에 6억 달러(약 6800억원)를 투자했다. 호라이즌로보틱스는 자율주행 플랫폼에 강점을 갖춘 기업이다.

SK하이닉스는 전장용 반도체 시장에서 부족한 점을 메꾸기 위해 외부 업체와 협업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모기업인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 절차가 완료되면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현재 SK㈜의 손자회사로,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 지위에 있는 기업은 인수합병 시 피인수 기업의 지분 100%를 사들여야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SK텔레콤이 중간지주사가 될 경우 SK하이닉스의 지위는 SK텔레콤 또는 SK㈜의 자회사로 바뀐다. 이 경우 공격적인 투자에 쉽게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업계 한 전문가는 "삼성전자는 하만을 인수해서 자동차 제조사가 우려하는 신뢰성 문제를 해결했다"며 "SK하이닉스도 경우에 따라 필요한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을 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은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통해 전장시장이 큰 곳에 먼저 발을 들여놓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나라 차량용 반도체 기술 발전을 위해선 자동차 회사가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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