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장항제련소 인근 주민, LS니꼬동제련에 중금속 중독 피해보상 소송

장항제련소 운영 당시 모습. 사진=서천군 제공

[데일리한국 박현영 기자] 충남 서천군에 위치한 (구)장항제련소의 중금속 피해 문제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오염물질 배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LS니꼬동제련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지역주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천군 장항읍 일대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LS니꼬동제련이 장항제련소 때문에 불거진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외면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3일 피해주민들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LS니꼬동제련은 장항제련소에서 출발한 기업으로, 앞서 1936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제련소를 건설하며 ‘조선제련주식회사’로 시작했다. 이후 정부국영회사와 LG 등 여러번 인수와 합병을 거쳐 현재 LS니꼬동제련에 이르렀다.

특히 민영화된 1971년부터 용광로가 폐쇄된 1989년까지 18년간의 모든 책임은 LS니꼬동제련에 있다는게 주민들의 입장이다.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도 2016년 창립 80주년을 맞아 “1936년 장항제련소에 불씨가 붙여지면서 시작된 LS니꼬동의 역사는 기업의 역사가 일천했던 한국 산업의 산증인”이라며 장항제련소를 직접 언급한바 있다.

문제는 (구)장항제련소 인근 지역이 지난 82년간 공장에서 배출된 비소, 카드뮴 등 각종 중금속으로 오염돼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를 유발했던 곳이라는 점이다. 인근 주민들도 오랜기간 노출된 중금속으로 이미 사망했거나, 현재까지 고통받고 있다. 이 지역은 각종 암과 골다공증 등의 환자가 속출했으며, 합병증으로 인한 환자도 부지기수다.

이에 장항읍 일대 피해주민들은 LS니꼬동제련과 정부에 환경오염피해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본지가 입수한 LS측 법원 제출 문서를 확인한 결과, LS는 “피해주민들이 건강피해와 장항제련소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주민 청구는 모두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피해주민들은 “마을 한집에 한명씩 암환자가 발생하고, 부모, 형제, 친척들이 대부분 병에 걸려 사망했거나 고생하고 있는데 정부나 LS측이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비소 등 신체에 축적되지 않아 현재 확인할 수 없는 중금속들도 있는데, 제련소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라고만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특히 중금속 피해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60~80대의 노인들로, 중금속 오염은 물론 합병증으로 인해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구)장항제련소 인근 중금속 오염 토지에서 제련소 굴뚝이 보이고 있다. 사진=박현영 기자

하지만 LS니꼬동제련 측은 주민 질병이 제련소 때문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주민들에게 △구 장항제련소에서 어떠한 유형의 오염물질이 어떠한 방식으로 배출됐고, △그 오염물질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원고들에게 도달했으며, △도달 이후에 원고들에게 질병 등 건강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등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LS니꼬동제련은 제련소가 주민들에게 환경오염 피해를 미쳤다는 구체적인 증거도 대라고 요구했다. 특히 △중금속이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인근 대기 또는 토양으로 배출, 확산됐고, △해당 중금속의 종류 및 비율, 양은 어느 정도이며, △중금속이 원고들에게 어떠한 경로를 통해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 어느 범위까지 전달됐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입증하라는 것이다.

결국 약자 입장인 피해주민, 특히 아픈 노인들에겐 “단순히 토양에 중금속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론 손해배상청구를 받아들이기엔 주민들의 주장과 입증의 정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피해주민들이 스스로 본인들의 아픈 정도를 타지역 주민과 대조하고, 장항제련소 인근지역 토양 오염 상황 등을 직접 조사해 근거를 마련해오라고 하는 셈이다.

한 중금속 피해 주민은 “70~80대 노인들이 국가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하는 것도 버거운 일인데, 아픈 이유와 중금속 오염 상황까지 알아내 입증하라고 한다”며 “중금속 오염이나 건강에 대한 조사는 정부에서 한 것이고 이는 모두 제출한 상태”라고 성토했다.

분개한 장항읍 주민들은 정부와 LS니꼬동제련 등 LS에게 (구)장항제련소 관련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며, 재판은 오는 26일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LS니꼬동제련 측은 “소송에선 권리를 주장하는 쪽에서 원인을 입증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구)장항제련소 토양정화사업 사업구역. 토양시범단지 위치가 LS 공장 부지다. 사진=환경공단 제공
한편 LS니꼬동제련은 (구)장항제련소를 두고 지자체 및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진행한 바 있다. 소송은 결국 헌법재판소까지 올라갔다.

앞서 2007년 12월 서천군은 "LS니꼬동과 LS산전에 (구)장항제련소 인근 지역이 토양오염 우려 기준을 초과했다"며 토양정밀 조사명령을 처분한바 있다. 하지만 LS니꼬동은 이에 불복해 2008년 행정소송까지 불사하며 거부, 토양오염 복원 및 피해보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책임을 회피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특히 LS니꼬동제련은 1심 판결이 내려지기 직전인 2010년 7월 “조선총독부,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 LG로 이어지는 장항제련소에 대한 과거의 포괄적 권리·의무를 2003년에 승계, 과잉처벌과 소급입법 금지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까지 제청했다.

그러나 LS는 전신인 LG로부터 1971년 장항제련소와 관련된 권리와 의무를 공식적으로 승계, 제련소를 운영하며 규모를 수십배 키운 것으로 드러났고, 결국 2012년 8월, 4년 넘게 끌어온 법정다툼을 돌연 중단했다. 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판결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결국 LS는 정부가 2009년부터 2023년까지 4000여억원을 투입해 진행 중인 (구)장항제련소 토양정화사업에 공동으로 책임지기로 하고, 오염기여도에 따라 27.5%(국가 72.5%)를 분담키로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중금속 오염도가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련소가 있었던 LS 소유 부지가 사유지란 이유로 토양정화사업에서 배제됐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도 가장 핵심 오염지역을 제외한 채 정화사업을 마무리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LS니꼬동제련 관계자는 ”지역기업으로서 국가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환경부, 서천군과 합의해 소송을 취하하기로 한 것“이라며 ”제련소 인근 환경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으로서 정부정책에 따라가는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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