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시민협력 인터뷰] 이상문 서울에너지설계사협회 회장, "경제성보다 인간성 고려"

이상문 서울에너지설계사협회장. 사진=안희민 기자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과학 세계에서 에너지는 식량과 같은 존재입니다.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건강한 문명, 최소의 에너지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효율적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과학 세계에서 엔지니어의 업무이자 사명입니다.”

이상문 서울시 에너지설계사협회장은 LG전자 출신이다. LG전자의 연구실에서 에어컨디션용 공기조화기용 친환경 냉매를 개발했다.

이 회장은 LG전자에서 냉장고와 에어컨에 쓰이는 냉매 염화불화탄소(CFC)의 단점을 보완하고 가전제품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했다. 독일의 선진기술을 벤치마킹하고, 소비자들의 LG전자의 가전제품 사용 후기를 수집해 기술 개발에 반영했던 LG전자 시절은 그의 인생에서 황금기였다.

그랬던 그였지만 건강 때문에 LG전자라는 좋은 직장을 내려놓았다. 2001년 녹내장이라는 불청객이 갑자기 찾아왔기 때문이다.

직장을 내려놨지만 그는 관심사안까지 내려놓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가전제품 등 폐기물이 환경에 주는 영향을 조사하며 관심을 더욱 기울였다. 그런 가운데 서울시의 원전하나줄이기 사업을 알게 됐다.

이 회장은 “전문성을 살리고 못다 한 연구도 지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2013년 제2기 서울시 에너지 설계사에 지원했다”다고 술회했다.

이 회장은 서울시 에너지 설계사로 활동하면서 새 삶을 살았다.

이 회장은 “LG전자의 엔지니어로 일할 때는 경제성을 가장 먼저 따져 물었지만 서울시의 에너지 설계사로 일할 땐 인간성을 우선시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서울시 에너지 설계사 교육을 마치고 서울시 상가로 향했다. 상가에너지 컨설팅이 그의 첫 임무였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았다. 2인 1조로 일하다보니 조원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섭외를 조원인 여성 설계사가, 기술설명을 그가 맡다보니 사전 준비와 현장 상황이 일치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이 회장이 자신을 서울시 에너지 설계사라고 소개했지만 처음엔 외판원 취급도 받았다. 배전반을 개별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일부 상가 건물들도 문제였다. 자기가 쓰는 전력량을 알지 못하니 에너지절약 필요성도 알지 못했다.

시행착오 끝에 이 회장은 업종별로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일례로 화장품가게나 카페는 조명이 매출에 30%나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밝기를 줄이라고 권해도 듣지 않는다. 이들 전력다소비처에 대해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려면 계약 전력을 점검해주고 현재 사용하는 전력량을 알려주는 일이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자신이 계약보다 많은 양의 전력을 소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사용자가 전력을 절약했다.

이력이 붙자 시행착오도 줄어들었다. 이 회장 일행이 상가를 재방문하자 상인들도 태도를 바꿔 응대했다. 이 회장의 존재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됐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 회장은 “차츰 상가의 상인들의 태도가 바뀌었다"며 "안내와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것을 무조건 거절하기보다 경청하기 시작했고 상담 후 전기요금이 줄었다는 입소문을 듣고 먼저 연락해오는 상인도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 회장은 “전기 사용이 수익과 직결되는 소규모 상가가 ‘한 사람이 쓰는 전기를 모으면 원전 하나 줄일 수 있다’는 설명에 공감해 에너지 절약에 나설 때 보람이 더욱 컸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2014년에 에너지 설계사 107명이 가입한 비영리민간단체인 ‘서울에너지설계사협회’를 결성했다. 서울에너지설계사협회에서 이 회장은 공모사업을 수행하고, 환경연극 등을 통해 서울시 에너지 사업을 홍보하고, 전국 곳곳을 누비며 상가 에너지 진단 노하우를 교육했다.

2015년엔 무뚝뚝한 성격을 고치고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2017년엔 거주지인 강동구에서 에너지자립마을 추진 공동체들을 대상으로 에너지절약을 강의했다.

이 회장은 “에코 수선공으로 에너지 소외계층과 저소득층에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다는 게 보람”이라며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지만 사람을 위해 일하는 현재의 삶이 즐겁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서울시 에너지 설계사들이 더욱 바빠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사업이 지금처럼 계속 투명성과 전문성을 가지며 지속되기를 희망했다.

더불어 에너지진단 전문 설계사협회 등이 설립취지에 따라 더 많은 일할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이 회장은 “단발 사업 하나 끝나면 후속 대책을 세울 수 없고, 성격이 서로 다른 단체들이 같은 공모사업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작된지 5년이 지난 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운동이 보다 전문적인 정책을 입안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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