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합의 등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면서 철강업계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철강업체들이 미묘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대형 철강업체들은 미국 수출 비중이 적은 만큼,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반면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중견 철강업체들은 미국의 통상 압박으로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13일 철강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철강 제품에 대한 미국의 통상 압박 수위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한국산 열연·냉연 강판에 대해 ‘관세 폭탄’을 투하했고, 올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철강 수입에 적용할 수 있는지 조사하라는 내용의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제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항을 말한다.

이 외에도 한·미 양국이 FTA 개정 협상에 대해 합의하면서, 한국의 철강 수출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미국발 통상압박에도 ‘평온’…왜?

미국의 통상 압박이 날로 심화되고 있지만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대형 철강업체들은 다소 평온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미국 수출 비중이 낮아 외부에서 우려하는 만큼의 심각한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는 지난해 기준으로 3500만톤 정도 판매했는데, 미국에 수출한 물량은 100만톤에 불과하다”며 “지난해보다 올해는 더욱 미국 수출 물량을 줄이고 있어, 미국의 통상 압박으로 우리가 입는 피해는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올해 7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기업인 간담회 자리에서 “미국 시장은 당분간 포기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현대제철의 판매 비중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물량 자체가 적은데다, 수출 물량 가운데서도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많지 않다”며 “미국의 통상 압박이 심화되고 있지만, 현대제철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도 “미국의 통상 압박이 심화되고 있지만, 동국제강이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이번 한·미 FTA 개정 협상에 대해서도 국내 대형 철강업체들은 큰 우려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국내 철강은 2004년부터 세계무역기구(WTO)의 철강 무관세 협정 원칙을 적용받아, 한·미 FTA가 개정돼도 대미 수출 품목에 대해 0%의 관세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해 미국 정부가 국내 철강 제품에 대해 사실상의 '관세 폭탄'을 물린 것은 여전히 골칫거리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지난해 7월 용융아연도금강판, 아연알루미늄도금강판, 컬러강판 등 한국산 도금강판에 대해 약 48%의 반덤핑 최종판정을 내렸다. 당시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각각 47.8%, 31.7% 관세를 부과 받았고, 동국제강은 상대적으로 낮은 8.75%의 반덤핑 관세 판정을 받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지난해 9월에도 한국산 냉연·열연제품에 대해 60%대의 관세를 최종 확정했다. 포스코의 경우 열연제품에 대해 60.93%(반덤핑 3.89%, 상계 57.04%) 관세를 부과 받았고, 냉연제품에도 64.68%(반덤핑 6.32%, 상계 58.36%)에 달하는 관세 폭탄을 맞았다.

미국 상무부가 이달에 냉연제품, 다음 달에 열연제품에 대해 연례재심 조사에 돌입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올해 연례재심 결과에 따라 국내 대형 철강업체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내 대형 철강업체들이 미국의 통상 압박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은 이미 미국의 보호무역에 대비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꾸려놨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대형 철강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통상압박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대비책을 마련해놓은 상황”이라며 “미국 수출을 최소화하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만큼,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넥스틸 홈페이지 캡처.

◇국내 중견 철강업체 ‘속앓이’…관세 폭탄 맞은 넥스틸 “정부가 나서야”

반면 국내 중견 철강업체들은 미국의 통상 압박으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특히 유정용강관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넥스틸 등 국내 유정용강관 업체들은 미국의 관세 폭탄에 휘청거리는 상황이다.

철강업계와 넥스틸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이달 3일 한국산 유정용강관에 대한 2차 연도(2015년 9월~2016년 8월) 반덤핑 연례재심 예비판정에서 넥스틸에 46.37%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넥스틸은 올해 4월에도 1차 연도(2014년 7월~2015년 8월) 반덤핑 연례재심 최종판정에서 24.92%에 달하는 관세 폭탄을 맞은 바 있다.

미국 정부는 넥스틸에 PMS(특별 시장 상황)를 적용해 관세 폭탄을 때렸다. 넥스틸이 60.93%에 달하는 관세를 맞은 포스코의 열연코일을 원재료로 사용해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유사한 관세를 부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넥스틸 관계자는 “이번 2차 반덤핑 판정에서 1차보다 더 높은 관세를 부과 받은 것은 포스코의 열연코일 사용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넥스틸 측은 올해 4월 1차 연도 최종판정에 대해 국제무역법원(CIT)에 항소한 상태다. 넥스틸은 이번 2차 연도 예비판정에 대해 법적인 대응을 진행하고, 향후 최종판정에서 높은 관세가 유지될 경우 CIT에 재차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넥스틸이 법적 대응 등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해 적극 대응하고 있지만, 미국의 관세 폭탄으로 받는 피해는 누적되고 있다. 넥스틸 관계자는 “올해 2월에 미국 상무부가 증거 불충분으로 PMS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2개월 뒤인 4월에 판단을 뒤집고 관세 폭탄을 때렸다”며 “미국이 정치적인 판단으로 비논리적인 관세 폭탄을 때리고 있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앞서 유정용강관 업체인 아주베스틸은 미국의 통상 압박으로 실적 악화를 겪다가, 2015년 10월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에 법원은 지난해 6월 기업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렸다. 아주베스틸은 최근 법정관리 신청을 재차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미국의 통상 압박이 여전해 뾰족한 돌파구는 없는 상황이다.

넥스틸 등 국내 중견 철강업체들은 미국 정부의 통상 압박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한 국내 철강업계의 ‘맏형’인 포스코가 정부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놓고 있다.

넥스틸 관계자는 “청와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관세 폭탄이 유지되고 있다”며 “미국의 통상 압박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 나서 이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의 수입 규제는 우리 같은 업체 하나가 나선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포스코처럼 업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정부에 철강업계의 현실을 전달해줬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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