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트렌드 ⑨ 셰어하우스 확산]

전셋값 폭등·1인 가구 증가로 각광…'老靑 동거'도

각자 방에 거주하며 거실·화장실을 함께 쓰는 방식

셰어하우스 전문 벤처기업 생기고 지자체도 나서

전셋값은 폭등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낯선 사람끼리 집을 나눠 쓰는 '셰어하우스'가 새로운 주거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유토이미지

[데일리한국 이민형 기자] #1. 대학로에서 연극일을 하며 혜화동에 거주했던 배우 최모(30·여)씨는 몇 달 전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집 주인의 성화에 못 이겨 이사를 결심했다. 최 씨는 본인이 일하는 대학로 근처로 집을 알아봤지만 집값은 이전보다 터무니없이 높아진 상태였다. 몇 달 동안 주거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그는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연극인의 집' 입주민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연극인의 집은 서울시 산하의 SH공사가 땅을 매입한 뒤 공동체주택 사업자에게 땅을 빌려줘 지어진 공공주택이다. 이달 말 입주를 앞둔 최 씨는 "연극을 하는 사람들과 한 지붕 아래 모여 살 수 있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만큼 좋다"면서 "가격도 층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증금은 1,000만~2,000만원, 월세는 20~40만원 정도로 굉장히 저렴한 편"이라고 전했다.

#2. 서울 소재의 대학에 합격하며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 윤모(20·여)씨는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겉보기엔 영락없는 할머니와 손녀 사이지만 사실 이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다. 대학 기숙사에 못 들어간 윤 씨는 보증금 1,000만원에 50만원이 넘는 월세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고민하다가 서대문구청의 '어르신·대학생 홈셰어링' 시스템을 통해 할머니를 만났다. 윤 씨는 할머니에게 보증금 없이 매달 25만원의 월세를 내면서 집값 부담을 덜었다. 아들이 장가간 뒤 방 3개짜리 넓은 집에서 혼자 살았던 할머니는 윤 씨가 들어온 뒤부터 썰렁했던 집안 분위기 자체가 활기차게 됐다고 기뻐한다. 윤 씨는 "할머니의 말투가 세긴 하지만 그 덕분에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한다"면서 "개인 사생활을 지켜주고, 편하게 대해주셔서 대학 졸업할 때까지 머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셋값은 폭등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낯선 사람끼리 집을 나눠 쓰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공동체주택)가 새로운 주거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셰어하우스는 여러 명이서 같은 집을 공유해서 쓰는 형태인데, 일반적으로 각자 방을 가지고 거실과 화장실을 함께 쓰며 살아가는 방식이다. 기존의 하숙이랑 비슷한 개념이지만 하숙과 달리 집을 관리해주는 아주머니가 따로 있지는 않다.

셰어하우스의 인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 것은 집 한 채를 여러 명이 공유하는 만큼 기존 오피스텔보다 집값이나 관리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발표한 대학생 원룸주거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원룸 세입자 대학생들의 평균 보증금은 1,418만원, 월세는 42만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의 지난해 조사에서는 1인당 최저 주거 기준인 약 13.86㎡(약 4.2평)가 안 되는 공간에 거주하는 주거빈곤율이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학생들의 경우 22.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셰어하우스는 이처럼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걱정을 덜어줄 뿐 아니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초반에는 사회초년생이나 대학생들이 많이 이용했지만 지금은 일반 직장인이나 노년층 사이에서도 셰어하우스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3년 최초로 도봉구 방학동에 건물을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을 선보인 이후 셰어하우스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연극인의 집'. 사진=서울시 제공

이런 분위기를 타고 셰어하우스를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벤처기업도 등장했다. 셰어하우스 전문 회사 '우주'는 특정 주제에 맞춰 셰어하우스를 공급하면서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기업이다. 우주는 지난 2013년 처음 종로구 권농동에 '창업가를 꿈꾸는 집'이라는 주제로 입주자를 받기 시작한 뒤부터 올해 21호까지 지점을 늘렸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에는 커다란 세계 지도가 벽에 걸려 있고,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에는 아일랜드형 주방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어 공통된 취미나 관심사를 공유하고 즐길 수 있다.

대학생들이나 학교 내에서 자치적으로 돈을 마련해 집을 마련해 공유하기도 한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모두의 아파트'라는 이름의 셰어하우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모두의 아파트는 138.6㎡(약 48평형) 아파트에 보증금 300만 원과 월세 20만 원으로 서울대 학생 8명이 주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서울대 57대 총학생회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큰바위얼굴'이 함께 진행했다.

셰어하우스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벤처도 등장했다. 사진=셰어하우스 전문 회사 '우주'

셰어하우스 문화가 확산되면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셰어하우스 형태의 임대주택 사업을 도입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3년 최초로 도봉구 방학동에 건물을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을 선보인 이후 셰어하우스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앞서 언급된 최 씨가 거주하게 될 연극인의 집 역시 서울시의 토지임대부 공동체주택 사업을 통해 지어졌다. 토지임대부 공동체주택은 공공의 토지를 빌려 짓는 '토지임대부 임대주택'과 개인의 주거공간과 공용공간이 공존하는 '공동체주택'이 합쳐진 개념이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는 토지임대부 공동체주택을 통해 40년 간 토지를 사업자에 저금리로 빌려주면서 임대료를 받는다. 설계와 건축은 협동조합형 사업자를 공모하고 선정해 맡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방식의 장점은 입주자들이 직접 조합원이 되고 임대주택 운영 및 관리까지 도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자는 토지매입비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할 수 있고 입주자들 역시 주거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연극인의 집의 경우 따로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는가 하면 발성이나 보컬 연습실도 갖추고 있다"면서 "이처럼 주택에 살게 될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공간을 직접 꾸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셰어하우스는 늘어나는 홀몸 어르신에 대한 우려를 덜어주기도 한다. 서울시는 올해 금천구에 홀몸 어르신을 위한 맞춤형 셰어하우스 '두레주택'을 선보였다. 두레주택은 노인들이 한 집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외로움을 이기고 주거비 부담도 줄일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30% 정도로 보증금 1,000만원 내외이고, 월세는 10만원 안팎이다. 입주 자격을 유지하는 경우 최장 1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윤 씨와 할머니처럼 젊은 대학생과 노인이 함께 사는 '노청(老靑) 동거'도 늘고 있다. 윤 씨와 할머니를 연결한 어르신·대학생 홈셰어링은 지난 2013년 노원구에서 처음 시작한 이후 2년 사이 11개 자치구로 확대됐고, 올해 8월까지 벌써 137명의 대학생이 111명의 노인과 함께 지내게 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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