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 해체에 대한 비공개 증언이 담긴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저자인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 기념행사에서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신 교수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팀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감각이 떨어진 상황 판단에 따라 철저하게 국제금융자본의 논리를 추종해 국내 산업자본을 희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한국경제가 성장을 계속하려면 산업자본을 더 키우고 더 많은 투자를 유도해야 했다”며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 경제팀은 오히려 산업자본의 성장을 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국제시장의 변화에 둔감하고 경험이 부족했던 당시 경제관료들이 국제금융자본의 주장에 따라 국내 산업자본의 구조조정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근본적 이유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비극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당시 정부의 정책 실패의 근거로 대우그룹 해체 후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대우무역(현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 계열사들이 지금까지 건재할 뿐 아니라 국내 산업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특히 부실 덩어리로 지목돼 헐값에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매각됐던 대우자동차의 주력 차종과 생산 기반이 이후 GM이 중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점을 지적했다.

이어 신 교수는 당시 경제정책의 최대 희생자인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해 지금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정부의 입장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정책을 주도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향해 “당시 대우그룹을 워크아웃으로 토끼몰이 하듯 몰아붙인 이유가 무엇인가”라면서 “정책적 실수를 덮고자 김 전 회장과 대우그룹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고 공개 질의를 했다.

신 교수는 2010년부터 4년 동안 서울과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김 전 회장을 20여 차례 만나 가진 인터뷰를 토대로 대화록을 집필했다. 김 전 회장은 대화록에서 대우그룹의 해체가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 관료들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기획 해체론’을 제기했으며, 이는 당시 외환위기 직후 경제 정책을 놓고 경제 관료들과 대립하면서 자신이 밉보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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