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두산 베어스
국내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내야수 허경민(25)은 최근 캐나다에서 온 소포를 받았다.

무심코 열어본 상자 안에는 편지와 함께 귀한 선물이 담겨 있었다.

행복한 추억으로 남은 2008년 8월, 캐나다 에드먼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이 쓴 모자였다.

"그분께 정말 감사했어요. 행복한 기억이 떠올랐거든요."

28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허경민은 '행복이 담긴 소포'에 대해 얘기하며 다시 한 번 추억에 잠겼다.

허경민은 광주일고에 재학 중이던 2008년 청소년대표팀에 뽑혀 에드먼턴 대회에 나서 쿠바와 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축하연에서 허경민은 캐나다 교민에게 모자를 선물했다.

모자를 소중하게 간직하던 교민은 7년 만에 허경민에게 모자를 돌려줬다. 이 교민은 "허경민 선수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서 소포를 보냅니다"라고 편지도 썼다.

허경민은 "당시 어떤 분께 모자를 드렸는지 기억이 난다"며 "당연히 돌려주실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모자를 받으니 그때 기억이 나 정말 행복하더라"며 웃었다.

마침, 허경민이 프로야구 1군 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할 때 선물이 도착했다.

허경민은 "더 힘이 난다"고 했다.

2009년 2차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허경민은 일찌감치 군 복무를 마치고, 2012시즌부터 1군 무대에서 뛰었다.

2012년 92경기, 2013년 75경기에 나섰고 지난해에는 105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백업 내야수였다.

올 시즌에도 허경민은 백업 내야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4월에는 8경기에만 나섰다.

그러나 점점 출전 기회가 늘었다. 5월 16경기, 6월 20경기에 나선 허경민은 7월 두산이 치른 18경기를 모두 소화했다. 7월 18경기 중 선발 출전은 17차례였다.

두산은 이제 허경민을 '주전 3루수'로 본다.

정수빈이 타격 부진에 빠지면서, 허경민이 2번타자로 나서는 경기도 늘었다.

실력으로 얻은 결과다. 허경민은 출전 기회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타율 3할을 유지했다.

최근 꾸준히 경기에 나서면서 타격감은 더 상승했다.

28일까지 허경민의 성적은 62경기 타율 0.328, 17타점, 33득점이다. 허경민은 "아직 멀었다"고 손을 흔들지만, 주전 내야수로 손색없는 성적이다.

사실 허경민은 에드먼턴 청소년대회 우승을 함께한 동료보다 늦게 1군 선수로 도약했다.

2008년 한국 고교야구에는 '4대 유격수'로 불리는 3학년생이 프로 스카우트의 주목을 받았다.

이례적으로 유격수 4명이 동시에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이제 프로 무대에서 각 팀을 대표하는 내야수로 성장한 김상수(삼성 라이온즈), 오지환(LG 트윈스), 안치홍(현재 경찰 야구단·KIA 타이거즈)이 허경민과 함께 에드먼턴 신화를 일궜다.

4대 1의 경쟁을 뚫고 청소년 대표팀 유격수로 뛴 선수는 허경민이었다. 당시 대회에서 안치홍은 2루수, 오지환은 1루수, 김상수는 우익수로 뛰었다.

그러나 정작 프로에서는 허경민이 가장 더뎠다.

안치홍은 2009년 입단과 동시에 KIA의 주전 2루수로 활약했다. 올스타전에서 최우수선수에 올랐고,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뛰는 영광까지 누렸다. 2010년에는 김상수와 오지환이 팀의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았다.

김상수는 2013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허경민은 "같이 청소년대회에서 뛰었던 친구들은 이미 자리를 잡았다. 이제 나와는 다른 목표를 세우고 경기에 나선다"고 부러워하면서도 "시즌이 끝나면 모임을 할 정도로 여전히 친하다. 그래서 더 응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1990년생 에드먼턴 키즈의 꿈은 "성인 국가대표로 다시 만나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허경민은 "부족한 내가 빨리 도약해야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이들이 '롤 모델'로 삼는 1982년생 에드먼턴 키즈에서도 출발이 늦었지만, 국가대표로 도약한 사례가 있다.

2000년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이대호(소프트뱅크 호크스), 김태균, 정근우(이상 한화 이글스) 등의 활약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추신수, 이대호, 김태균이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에 뛰어들어 활약할 때, 프로 지명은 받지 못하고 대학을 거쳐 프로에 입성한 정근우는 이제 '국가대표 2루수'로 불린다. 정근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신화를 일궜다.

2015년 허경민의 목표는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는 것"이다.

두산 더그아웃에서 선배들은 "너무 소박하다"며 허경민에게 더 큰 목표를 '강요'한다.

허경민을 가까이서 지켜본 두산 선수들은 허경민을 '차세대 국가대표 내야수'로 꼽는다.

"아닙니다"라고 몸을 낮추는 허경민의 가슴 속에도 꿈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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