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 '로봇, 소리'서 실종된 딸 찾아다니는 아버지 역 열연
첫 주연 영화 개봉 앞두고 매일 인터넷 검색에 아내 잔소리
아이를 키운다는 건 떨어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 기자] 순박한 동네 형님 느낌이었다. 영화 '로봇, 소리'(감독 이호재, 영화사 좋은날)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성민은 안면이 없어도 왠지 잘 알고 인사를 해야 할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친근감이 흘러 넘쳤다. 사람 좋은 미소로 먼저 악수를 청하며 다가온 그는 첫 주연 영화 개봉을 앞둬선지 긴장해 있었다. 크레디트에 이름이 맨 먼저 나온다는 이유 때문에 생기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내리 누르고 있었다.

'로봇, 소리'는 10년 전 실종된 딸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을 만나 딸의 흔적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이성민은 아무런 증거도 단서도 없이 실종된 딸의 흔적을 찾기 위해 10년 동안 전국을 헤매는 김해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기자에게 영화를 본 소감부터 물은 그는 개봉을 앞둔 최근 근황부터 들려주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정말 긴장돼요. 영화를 본 지인들의 반응이 좋긴 한데 믿어지지가 않네요. 시사 반응이 좋다고는 하는데 아리까리하네요.(웃음) 정말 그 어떤 영화보다 긴장감이 커요. 그 이유는 당연히 제가 주인공이기 때문이죠. 다른 작품은 의지할 사람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하니까 정말 떨려요. 만날 '로봇, 소리' 검색하고 예고편을 보고 또 보니까 집사람이 그만 좀 하라며 말리더군요. 개봉이 돼야 마음을 좀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로봇, 소리'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뜨거운 부성애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기억과 위로다. 10년 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던 대구 지하철 참사의 아픔을 끄집어내면서 망각의 무서움과 상처의 치유, 화해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성민은 전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 촬영이 끝날 무렵 '로봇, 소리'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시나리오의 신선함이 그의 마음을 이끌었다.

"제목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로봇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읽어보고 나서 정말 새롭고 재미있으면서 감동적인 작품이 나올 거 같더군요. 사실 촬영을 할 때는 사회적인 메시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딸을 찾아가는 아버지란 인물에만 몰두했어요. 그게 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야 감독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제대로 보이더라고요. 희생자들에게 위로를 던지면서도 그 아픔을 기억해준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영화가 말해주었어요. 잊었던 그 아픈 순간을 기억하면서 관객들이 희생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같이 아파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영화 속에서 이성민이 연기한 해관은 가수가 되고 싶은 딸과 갈등을 겪는다. 진로 문제로 크게 다툰 후 헤어진 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가슴에는 갈수록 크기가 커가는 바위가 자리를 잡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춘기 딸을 둔 이성민에게 해관의 아픔은 남 같지 않았다. 촬영 당시 중2병을 심하게 앓은 딸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기에 싸우는 장면을 촬영할 때 감정이 남달랐다.

"중2가 되니 진짜 예민해지더군요 영화에서 딸과 싸우는 장면을 촬영할 때 실제로도 딸과 싸웠어요. 예전엔 야단을 쳤지만 싸워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마누라와 싸울 때처럼 역시 논리적으로 내가 당해낼 수 없더라고요. 결국 내가 달래고 져주는 수밖에 없었어요. 해관이 딸 유주와 겪는 갈등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문제가 분명히 있지만 해관은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결혼하는 순간까지 잘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죠. 영화를 찍으며 딸을 처음에 슈퍼에 심부름 보낼 때, 캠프를 보낼 때 마음이 생각나더라고요. 커갈수록 떨어지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어요. 아이를 키운다는 건 떨어지는 연습을 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관은 방식이 달랐을 뿐이에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이성민은 '미생' 이후 '국민 멘토'로 불리고 있다. 그는 '로봇, 소리'에서도 이희준, 이하늬, 채수빈 등 재능 있는 후배들과 호흡을 맞췄다.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줬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배들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을 절대 하지 않아요. 연기는 연식에 따라 잘하는 게 아니에요. 나이가 많다고 연기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지 않아요. 연기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때 제대로 하게 돼요. 후배들이 절 어려워하지 않고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는 게 저의 희망이죠. 서로 선후배가 아니라 배우끼리 만나야 제대로 연기하는 맛이 나요. 후배가 눈치 보지 않고 선배가 예상하지 못한 연기를 딱 할 때 짜릿한 쾌감 같은 걸 느낄 수 있어요. 곧 촬영에 들어가는 드라마 '기억'에서 2PM 준호와 연기를 함께 하는데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너한테 기대를 안 할 테니 나한테 아무 기대도 하지 말아라. 그냥 신나게 잘 놀자고 말했어요."

극단 차이무 출신인 이성민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조연으로 출연하며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대중들의 뇌리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었지만 역할의 크기에 상관없이 주어지는 대본을 가장 큰 상장으로 여기며 하루하루 촬영장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런 연기에 대한 열정과 끈기가 영화 크레디트에 가장 이름이 먼저 나오는 현재 그의 위치를 만들어주었다.

"사실 전 매사 덤덤한 편이었어요. 그러나 '골든타임' 때 처음으로 주목을 받은 후 많이 혼란스러워했어요. 사람들이 제 일상에 관심을 가져주고 어느 집에서 피자를 먹는 것까지 인터넷에 올려지니 당황스럽더라고요. 연기생활을 하며 늘 꿈꿔왔던 관심을 받게 됐는데 기쁘기보다 부담스러웠어요. 나도 이렇게 당혹스러운데 젊은 애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작품 수를 더해가면서 받아들이고 수용하게 되더라고요. 주연배우로서 부담감도 처음이니까 떨리지만 겪고 나면 홀가분해질 것 같아요. 흥행 당연히 신경이 쓰이죠. 대박은 기대하지 않고 그냥 많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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