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PD. 사진=미가미디어 제공.
[베이징(중국)=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무엇보다 '부끄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쌀집아저씨' 김영희PD가 중국 대륙에서 새 예능 프로그램을 들고 돌아왔다. 지난해 4월 29년만에 MBC를 퇴사한 지 9개월 만이다. 19일 오후 중국 베이징 메리어트호텔에서 진행된 후난위성TV 예능 프로그램 '폭풍효자'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PD는 총연출자이자 제작자로서 황샤오밍, 쩡솽, 뚜춘, 빠오뻬이얼, 천챠오언, 차오거와 등 중국 스타들과 함께 자리했다.

김영희PD. 사진=미가미디어 제공.
'폭풍효자'는 성인 자녀(연예인)가 부모님의 고향 또는 본인이 태어나 성장한 집에서 부모 중 한 명과 함께 지내는 소중한 5박 6일을 기록하는 예능과 교양, 다큐멘터리를 종합한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 연예인들이 그들의 부모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함께 밥을 지어 먹고 편지를 쓰는 등의 미션을 통해 일상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되는 내용을 담았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김PD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설립한 중국 제작사 B&R에서 첫 제작한 작품이기도 하다.

200여 중국 취재진이 참석한 '폭풍효자' 제작발표회가 열린 다음날인 20일 오후 김PD를 중국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B&R 사무실에서 만났다.

▲19일 '폭풍효자' 제작발표회를 성대하게 마쳤다.

김영희PD. 사진=미가미디어 제공.

제작발표회 날 뉴스가 중국 5대 포털사이트에 게재됐는데 약 6억명 정도가 봤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에서도 특별한 케이스의 제작발표회였다. 취재진뿐 아니라 팬들도 오고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이 됐다. 아마 황샤오밍, 쩡솽, 뚜춘 등 중국 최정상급 스타들이 출연한 것이 큰 화제가 돼서인 것 같다.

▲'효(孝)'라는 주제는 만국 공통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고루해질 수도 있다. 기획의도가 궁금하다. '효'는 사실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지닌 가장 중요한 가치인데 현대사회에서 자꾸 무너지고 있다. 효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기에 세대간 소통을 자연스럽게 넣으면서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후난위성TV '폭풍효자' 제작발표회. 사진=미가미디어 제공.
▲ 구체적으로 '효'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구현했나?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그들의 부모와 함께 추억을 더듬어가는 형식이다. 출연자들의 추억이 깃든 집을 이전 모습 그대로 재현해놓고 5박 6일간 생활하게 했다. 연출자의 디렉션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더니 자연스럽게 그림이 나오더라. 예를 들어 지금은 중국 재벌급 연예인인 황샤오밍은 어머니와 함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주었다. 황샤오밍의 어머니는 임신 당시 먹고 싶었던 해산물을 살 돈이 없어 새우 머리를 주워 먹었던 솔직한 이야기를 전해 숙연해지기도 했다. ▲ 황샤오밍 쩡솽 뚜춘 모두 중국에서 정상급 스타다. 섭외과정은 어땠나?

중국에서 연예인들은 신과 같은 존재다. 오히려 할리우드보다 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번 만나려면 매니저의 허락을 구하고 미리 약속을 잡고 제한된 시간에만 만날 수 있다. 나는 다행히 앞서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같은 프로그램으로 중국 내 인지도가 있어서 만남은 비교적 쉬웠다. 이후 수개월간의 설득 작업을 통해 하나씩 확정이 됐다. 캐스팅을 위해 중국 전역을 다니며 비행기만 60번 정도 탔다.

▲ 중국 톱 연예인들이 민낯을 드러내고 부모와의 관계를 공개하는 등 사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쉽지는 않은 관행인데.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하는 출연진 위주로 선정했다. 단순히 TV 출연이 아니라 정말 부모자식간에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하고 이런 여행의 기회를 원하는 이들 위주로 커플을 선정했다.

▲ 제작 규모도 중국에서도 전무후무하다고 들었다. 중국 산둥성 랴오닝성 하북성 요녕성 흑룡강성 등 각지와 대만까지 가서 촬영했다. 촬영이 이뤄지는 두달 동안 600여명의 스태프가 A팀과 B팀으로 나뉘어 계속 움직였고, 연예인 한 팀당 카메라가 50~60대 정도 설치됐다.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제작비만 수백억원 대다. 촬영 분량이 너무 많아 편집을 위해 대규모 서버를 마련했는데 그도 모자라 기존 서버에서 1대를 더 증설했다.

▲ 지난해 4월 MBC를 퇴사하고 중국 진출을 선언한지 9개월 만의 성과다. 그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그램이 완성됐는지 궁금하다.

사실 2~3년 전 중국에서 거액을 받고 프로그램 연출 제의를 받았었다. 당시 혼자 가는 건 현재 예능계 판도에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못할 것 같아 고심 끝에 거절했다. 이후 직접 제작하고 저작권을 확보하고, 팀이 움직일 수 있는 확장성 있는 형태로 가자는 생각에 MBC를 나와 본격적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결정하는 순간부터 '어떻게 이뤄졌나' 싶을 정도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해 5월부터 기획회의에 들어가 10월 광고주를 계약했고 올 1월쯤 편성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예상대로 됐다.

▲ 중국 시장 문을 두드리는 한국 제작사의 발걸음도 가열차다. 글로벌 콘텐츠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보나. 간단한 원칙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로마에 가면 로마 정서를 따르라'고 말하고 싶다. 법보다 정서가 우위에 있다는 얘기다. 협업을 하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걸 끊임없이 들으면 된다. 현재 중국사회가 고민하는 게 무엇이고 어떤 콘텐츠를 원하는지를 계속 얘기하고 듣고 수정해가는 작업을 해 왔다. 내 것을 자꾸 주장하려하지 말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 제작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 제작진의 의견 차이도 있었을 것 같은데.

당연히 있다. 중국 제작진은 대부분 말도 잘하고 자기 주장도 많은 편이라 한번 토론이 벌어지면 난상 토론이 되기 일쑤였다.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내가 중재를 했다. 대부분 내가 정리하면 따라주더라. 그래도 촬영을 해 보니 눈물나는 장면에서는 함께 운다. 국가를 넘어선 만국 콘텐츠의 힘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 한국 프로그램의 진출이 많아지면서 광전총국의 규제도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다수 진출하고 비슷한 리얼 버라이어티물이 범람하면서 이에 대한 규제안이 내려오곤 한다. 이 또한 중국인들의 정서를 읽고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그들을 뜯어 고치려하지 말고, 규제안을 내게 된 그들의 정서가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리는 게 우선이다.

▲ 반대로 한국에서는 중국 예능에 집중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인력유출'이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나는 '인력유출'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반대로 현재 한국 방송 콘텐츠 시장을 볼 때 '유출'하지 않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는 '한국' '중국'이라는 경계가 아닌 글로벌한 관점에서 방송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 박지성이나 기성용이 해외 진출을 하듯 필요 수요가 있다면 방송PD들도 해외로 나가는 게 당연한다. 실제로 '폭풍효자'는 올해 4월 세계 최대 콘텐츠 마켓인 칸 MIP TV 2016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어느 국가의 콘텐츠가 아니라 글로벌한 경쟁력있는 콘텐츠를 지향해야 한다는 얘기다. ▲ 향후 계획은 어떤가

올 가을쯤 새 프로그램을 하나 더 만들 계획이다. 한국 PD들도 4~5명 정도 더 영입하려고 한다.

▲ 다른 사람들은 은퇴를 앞두고 있을 나이에 중국 진출을 선언한 김PD의 궁극적인 목표가 뭔가

문득문득 마음에 떠오르는 말은 '부끄럽지 말아야겠다'란 문장이다. 올해로 PD 생활 30년을 맞았는데 첫 중국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돼 의미심장하다. 중국과 한국 모두에게 기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내 말을 지키고 싶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