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미쓰와이프'서 코믹과 정극 오가며 열연
하루아침에 애 둘 딸린 아줌마가 돼버린 골드미스 역
송승헌과 찰떡 연기호흡 "담번에 진한 멜로~"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기자] 여배우지만 ‘멋잇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영화 ‘미쓰와이프’(감독 강효진, 제작 영화사 아이비전)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엄정화는 아름다우면서도 당당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까지 갖춘 ‘멋진 사람’이었다.

20년 넘게 대한민국 ‘최고의 엔터테이너’로 자리매김해온 그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신인배우처럼 설렌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많은 영화를 개봉시키고 앨범을 발표했기에 이제 무덤덤한 포커페이스를 지을 법하지만 그의 표정은 영락없는 시험 성적을 기다리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초심을 잃지 않는 이런 순수한 면모가 엄정화가 20년 넘게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하는 경쟁력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미쓰와이프’는 잘 나가는 싱글 변호사 연우(엄정화)가 우연한 사고로 인해, 하루 아침에 남편과 애 둘 딸린 아줌마로 한 달간 대신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유쾌한 인생반전 코미디다. 언론시사 후 호평이 쏟아지며 여름 흥행대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엄정화는 비정한 변호사에서 어느 날 갑자기 애 둘 딸린 엄마가 된 다소 판타지적인 캐릭터를 맡아 코미디와 정극 연기를 오가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특히 안 어울린 것만 같았던 송승헌과의 부부 호흡도 여성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정말 송승헌씨와 내가 부부로 연기를 할 기회가 생길 줄은 몰랐어요. 그 분이 항상 호흡을 맞추신 분들은 가냘프고 청순하잖아요. 전 아시다시피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요. 제안이 간 것은 알았지만 설마 했는데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진짜냐’며 다시 한번 확인했을 정도였어요. 정말 의외였고 상상이 안 갔는데 왠지 더 재미있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정화와 송승헌이 연기하는 연우와 성환은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부부. 어린 나이 사고를 쳐 청소년이 된 딸을 둔 커플이지만 여전히 서로를 뜨겁게 사랑한다. 나이부터 배우로서 색깔까지 쉽게 조합되지 않는 두 사람은 베테랑답게 차진 호흡을 선보이면서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나간다. 엄정화는 배우로서 파격적인 도전에 나섰던 후배 송승헌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승헌씨 본인이 마음을 열어놓고 의욕적으로 연기에 임하니 하나라도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항상 감독님의 의견을 수렴하고 따라가면서도 리허설 때 자신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성환이 연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쓰담쓰담’ 신은 연기하면서도 제가 설레더라고요. 왜 송승헌이 최고의 멜로배우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다음엔 멜로 영화에서 다시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미쓰와이프’는 영화가 공개된 후 ‘엄정화를 위한 맞춤 기획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코믹과 정극을 오가는 연기력뿐만 아니라 극중 설정이 엄정화의 실제 모습을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에 있어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골드미스’인 것과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부분이 왠지 개인사를 떠오르게 한다.

“전 그런 걸 전혀 생각지 못했었어요. 그냥 시나리오가 정말 아기자기하면서 재미있고 다양한 연기를 한 작품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죠. 영화가 공개된 후 그런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정말 비슷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연기가 쉬운 건 절대 아니었어요. 전반부와 후반부 톤이 전혀 달라 미세한 부분 하나까지 다 신경 쓸 수밖에 없어요. 정이 없던 여자가 한 번에 훅 엄마로 바뀌면 안 되니까 강약조절을 해야 했어요.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 다행이에요.”

엄정화가 연기한 연우의 대사들은 단순한 것 같지만 남다른 인생의 의미들이 내포돼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딸이 선배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학교에서 가해자 변호사와 만난 후 혼자서 거울을 보며 분노에 차 “너 어떻게 산 거니”라고 읊조리는 대사는 영화 초반부 변호사 연우가 성폭행범을 변호해주는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깊은 울림을 안긴다. 엄정화에게 대사처럼 “이제까지 잘 살아온 것 같으냐”는 질문을 던지자 잠시 생각에 빠졌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것 같아요. 바보 같이 살아온 면은 분명히 있어요. 그러나 인생이라는 게 언제나 이익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손해 볼 때도 있죠. 제 일이 있었고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서 나름 잘 살아온 것 같아요.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게 저에게 큰 복인 것 같아요. 결혼을 못한 것이 후회된 적은 딱 한번 있어요. 갑상선암 수술을 받을 때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내가 꾸린 가족이 없다는 쓸쓸함은 그때 처음 들더라고요. 여기서 못나오면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어요. 그렇다고 억지로 인연을 맺고 싶지는 않아요. 순리대로 사람이 생기면 하게 되겠죠..(웃음)”

엄정화는 후배 연예인들에게 항상 롤모델이자 멘토 같은 존재다. 20대 때부터 음악과 연기를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을 옥죄어 왔던 편견의 벽을 무너뜨려온 그는 40대 여배우를 향한 선입견을 깨부수면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예전보다 환경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엄정화 같은 40대 여배우에겐 여전히 매일이 투쟁이다.

“장르적으로 많이 다양해지긴 하지만 여배우가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어갈 수록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건 변하지 않았어요.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렇다고 비관하지는 않아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다리는 거죠. 이제까지 제 또래 여배우들 모두가 그랬어요. 그 나이 되면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다 극복해왔어요. 그냥 이 시간에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는 걸 좋은 신호로 보고 미래를 기다리는 거죠. 그게 제가 사는 방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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