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 '손님'서 선무당이자 젊은 과부 미숙 역 열연
류승룡과의 케미를 위해 일부러 살을 찌웠다
여우주연상 수상이후 일로서나 개인적으로 달라진 점 없어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기자] '칸의 여왕' 전도연의 뒤를 이을 대형 여배우의 탄생을 목격하는 느낌이었다. 영화 ‘손님’(감독 김광태, 제작 유비유필름)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천우희는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예술가의 포스가 물씬 풍겨났다.

내놓는 한마디마다 섬세한 감성과 뜨거운 열정이 묻어 있어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렸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한 계단씩 올라가며 장인의 경지에 다가서려 노력하는 자의 내공이 절절히 느껴졌다. 지난해 영화 ‘한공주’로 각종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싹쓸이하며 얻은 ‘유명세’와 인기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했다. 그는 자신을 도구로 삼아 연기를 통해 세상에 빛이 되고 싶은 진정한 ‘배우’였다.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손님’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마을에 들어선 낯선 남자와 그의 아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숨기려 했던 비밀과 쥐들이 기록하는 마을의 기억을 다룬 작품. 천우희는 어느날 갑자기 아들과 함께 이 마을에 들어온 우룡(류승룡)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미숙 역을 맡았다. 비중은 크지 않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천우희는 호불호가 나뉘는 영화에 대한 강렬한 애정부터 털어놓았다.

“만족스러웠어요. 시나리오만 봤을 때 볼 수 없었던 부분들이 컴퓨터그래픽으로 시각화돼 펼쳐지니까 정말 재미있고 신기했어요. 특히 결말 쥐떼 장면은 상상만 하면서 연기를 했는데 실제 두 눈으로 보니까 더 흥미롭더라고요. 결말이 과하다는 분들의 이야기 충분히 이해해요. 그러나 절망에 나락에 빠진 우룡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까 해요.”

천우희가 연기한 미숙은 전쟁 중에 가족을 잃고 홀로 된 젊은 과부. 촌장(이성민)에 의해 무녀의 역할을 강요받은 아픔을 지닌 그는 우룡과 서로 좋은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비극에 한 발짝 다가선다. 수많은 사연을 품은 인물이지만 영화 속에선 그 감정을 풀어낼 공간이 넓지 않는 연기하기 매우 힘든 고난이도 캐릭터다. 천우희는 기대대로 함축적인 연기로 미숙의 감정을 절절히 느껴지게 연기한다.


“미숙은 시나리오상에서 형태만 있을 뿐이지 친절하게 표현돼 있는 부분이 정말 적었어요. 그래서 제 자신이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야 했어요. 전쟁 중에 남편과 아이를 잃은 전사는 정말 짧게 표현돼 있어요. 그래서 제 욕심껏 연기하기에는 한정적이었어요. 눈빛으로 모든 걸 내포해야 하는 연기여서 고민이 많았죠. 거르고 걸러 최대한 심플하게 느낄 수 있게 연기했어요. 수줍고 어수룩하고 인생을 숨죽여 살아온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어요.”

미숙은 30대 초반으로 천우희가 연기한 캐릭터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인물이다. 타고난 동안이어서 이제까지 스물아홉인 자신의 나이보다 10살쯤 어린 여고생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해왔다. 더군다나 자신보다 17살이 많은 류승룡과 러브라인을 이뤄야 했다. 천우희는 인생의 두께가 느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도전의식이 들더라고요. 처음으로 저보다 나이 많은 역할인 데다 젊은 과부이고 선무당이기까지 하니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러나 작품을 포기하기에는 전체적인 독특함이 좋았어요. 류승룡 선배님과도 서로 케미가 맞을까 고민됐었죠. 그래서 목소리 톤을 바꿔 볼까 생각했어요. 그러나 넘 인위적인 느낌이 들 것 같더라고요. 원래 목소리가 가장 늦게 늙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이 든 티를 내기 위해 살을 찌웠어요. 선배님과 러브신 분량이 아쉽다는 반응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나 더 직접적인 감정의 교류가 있었다면 관객들이 보기 더 불편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두 사람 사이의 안타까움이 덜 했겠죠. 딱 적당했어요.”

‘손님’은 지난해 여름 강원도의 깊은 산골에서 촬영됐다. ‘한공주’로 한창 주목받고 주가가 올라가는 시기에 자연 속에서 모든 걸 잊고 연기에 전념했다. 이 당시 촬영장은 평소 존경해온 류승룡 이성민 등 대선배들의 연기를 눈으로 직접 보며 배우는 학습장이었고 주위의 기대와 시선을 내려놓고 자신을 비워가는 힐링의 공간이었다.

“류승룡 선배님은 예상과 달리 엄청 섬세하세요. 제가 혹시 불편한 게 있을까봐 항상 챙겨주셨어요. 이성민 선배님은 요즘 유행하는 ‘츤데레’ 느낌이라고 할까요. 말은 툭툭 내뱉는데 모든 걸 보고 계시더라고요. 그 자상함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았죠. 모두 서로에 대한 배려가 많아서 촬영하면서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요? 정말 산골이어서 촬영이 없으면 할 게 없었어요. 처음엔 와이파이도 안 잡혀 인터넷도 할 수 없었거든요. 아이들은 곤충이나 개구리 잡으러 다녔지만 어른들은 대부분 여기저기 숨어서 낮잠을 잤어요. 여기 가면 누가 자고 있고 저기 가면 또 누가 숨어 자고 있었죠.(웃음)”

천우희는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여배우 중 하나다. ‘뷰티인사이드’가 올 여름 개봉되고 ‘추격자’ ‘황해’를 만든 나홍진 감독의 ‘곡성’의 촬영을 마쳤고 현재 박흥식 감독의 ‘해어화’를 맹촬영 중이다. 매 작품 다른 여배우들이 맡기 꺼릴 힘든 도전의 연속이다. ‘한공주’로 이뤄낸 성과들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없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천우희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이미 해탈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상을 받았다고 해서 달라진 점은 하나도 없어요. 작품을 선택할 때도 이전과 똑같아요. 개인적인 삶도 변한 게 없어요. 그러나 전 그대로인데 사람들의 기대치는 다르더라고요. 그런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다보면 제 자아를 잃어버리고 스스로 갇힌 삶을 살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걸 던져버렸어요. 해탈을 했다고 할까요?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대로 선택하고 최선을 다하다보면 잘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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