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뮤지션의 죽음이 이토록 30, 40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적이 있었을까.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린 직후부터 인터넷에 그를 추모하고 추억하는 글이 폭주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허리인 30, 40대의 삶에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이 알게 모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저마다 개별적이고 고유한 무게를 갖는 죽음. 그런데 왜 그의 죽음이 30, 40대들에게 유독 슬프게 느껴지는 걸까.

신해철은 진작부터 천민자본주의를 혐오했다.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에서 돈이나 출세가 성공이나 행복과 직결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래한 거의 최초의 뮤지션이었다. 1991년 발표한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를 보면 현실 너머에 있는 가치를 죽는 순간까지 좇으려 한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4년 전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신해철은 강한 어조로 출세지향주의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를 비판했다. “20, 30대가 삶의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희망이 없어요. 이 사회가 대학 1학년부터 겁을 잔뜩 줘서 취직 걱정부터 하게 만드니까 젊어서도 음악에서 뭔가 멋진 일이 일어나길 꿈꾸지 않아요. 영국에서 살면서 왜 영국 노동자들은 상류층으로 살려는 욕망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 사람들은 퇴근해서 맥주 마시고 일요일 날 축구하고 노조 나갔다가 공장가면서 이대로 살다 죽을 거라고 말하거든요. 걔네는 상류층이 되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서 천박하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욕망이 없으면 정신이 썩은 놈이라고 하죠. 우리는 지금 천민자본주의 중에서도 가장 쌍스럽고 천박하면서 거기에 겁먹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그걸 인정해야 하는 거죠.”

최근 발언을 보면 삶을 대하는 그의 인식이 더욱 깊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신해철은 종합편성채널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흔히 꿈은 이뤄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지에 대해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해철은 초지일관이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삶을 대하는 측면에서도 ‘현실에 순응하는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자세를 견지하는 데 자신의 인생을 걸다시피 했다. ‘민물장어의 꿈’이라는 노래에서도 이 같은 마음가짐이 엿보인다.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죽는 순간까지도 안주하지 않는 삶을 갈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가 “내가 죽으면 뜰 것이다.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며 애착을 가진 ‘민물장어의 꿈’은 28일 오전 음원차트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발표한 지 15년 만이다.

신해철의 발언이 깊은 울림을 갖는 건 그가 조금도 강한 인물이 아니었던 데다 그 스스로 강하지 않은 걸 부끄러워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독설’ 뒤에는 현실 너머에 있는 그 무언가를 잡지 못하는 데 대한 회한이 자리 잡고 있다.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 내 울고 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나에게 쓰는 편지’ 중)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보다도 가슴을 뛰게 하는 걸 좇으면서 맞닥뜨릴 망설임, 혼란, 고독 등을 젊음이 가져야 하는 일종의 징표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이야말로 30, 40대가 음악을 통해,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을 통해 신해철에게 배운 자세였던 셈이다.

30, 40대들이 한 마음으로 신해철의 죽음을 추모하는 건 비록 한때나마 신해철을 통해 고뇌하는 젊음의 원형을 읽었기 때문이리라. 지금 그들은 신해철의 죽음으로 인해 싱싱했기에 그만큼 아팠던 젊음의 한때가 뚝 끊어져 사라지는 듯한 비애와 쓸쓸함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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